신수원 감독은 시사회장에서 “볼 만한 가치가 있는 영화”로 <레인보우>를 소개했다며 감독 자신이 그렇게 말한 게 너무 건방져 보이진 않을까 걱정했다. 그러고는 이내 “현실적으로 300만명 정도 들면 되지 않겠느냐”고 배급사 대표에게 말한다며 하하 웃는다. 소심한 것 같다가도 어느 순간에 보면 하염없이 대범하거나 낙천적이다. <레인보우>의 주인공은 확실히 그 자신을 솔직한 모델로 삼은 듯싶다. 영화는 충무로를 돌며 거듭 쓴잔을 마시다가 새로운 기점에 서게 되는 한 영화감독의 이야기다. 하지만 이 영화는 우울하지 않고 쾌활하다. 이 쾌활한 자기 반영의 영화 <레인보우>가 만들어지기까지는 어떤 과정이 있었던 것일까.
-자전적 이야기라고 들었다. =감독 준비를 2005년부터 했다. 한 4년 사이에 작품 두개가 엎어졌다. 첫 번째 시나리오는 2년 반 정도 여러 가지 장르로 계속 고치다가 회사가 잘 안되면서 같이 잘 안됐다. 두 번째는 다른 시나리오인데, 우연히 아는 프로듀서와 만나 계약을 하고 세번 정도 고쳤다. 거기는 아예 일년 정도 시간을 받아놓고 갔다. 그것도 잘 안됐다. 그걸 갖고 나와서 진행해보려 했는데 역시 잘 안됐다. 그래도 내가 워낙 좋아하는 음악영화 장르여서 혼자서 1년 동안 계속 고쳤다. <기타로 오토바이를 타자>라고, 기타 치는 아이가 온라인으로 기타 배틀을 하는 이야기다. 저예산으로 찍어볼까도 생각했는데 자신이 없어서 접었다. 그러다 영화에 ‘레인보우’라는 밴드 이름으로 나오는 ‘토닉’ 친구들을 만났다. 이들의 음악 이야기와 음악영화를 준비하는 나의 이야기를 메이킹 다큐로 묶은 다음, 안 찍은 장면들은 극영화처럼 페이크로 찍어보자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그렇게 생각하고 보니 전체를 극영화로 해도 될 것 같았다. 시나리오를 써서 주변 친구들에게 보여줬더니 재미있다고 하더라. 그 뒤로는 빠르게 진행됐다.
-영화를 하기 위해 교사를 그만두고 영상원에 들어갔다고. =사회 과목을 가르쳤다. 누군가는 그만두지 말고 방학 때에만 영화를 만들면 되지 않겠느냐고 했지만 성격상 한 가지 일만 파야 한다. 선생은 어쩌다 하게 된 거지만 하여간 7년 정도 하고 나니까 회의감이 오더라. 그래도 사직서를 쓰는 날에는 손이 정말 덜덜덜 떨리더라. 옆에 있는 사환이 “제가 대신 써드릴까요” 라고까지 했으니까. 먹고사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 늦기 전에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에서 누군가 주인공을 가리켜 천재라고 말하던데, 그런 소리도 경험인가. (웃음) =그런 건 아니다. (웃음) 특별히 내 영화를 재미있어 하는 팬들은 몇몇 있었다. 영상원의 일반 작품과 좀 다른 느낌이어서 그랬는지, 영화 상영회 끝나고 나는 창피해하고 있는데 와서 좋다고 이야기해주는 친구들이 있었다.
-<레인보우>를 보고 나면 당연하게도 감독의 가족관계가 궁금해진다. =아들 하나, 딸 하나. 아들은 중3, 딸은 고2. 하지만 아들 이야기는 길게 하지 말자. 자기 얘기 하는 거 싫어한다. 남편 얘기? 그건 그래도 괜찮다. 이번 영화, 극장에서 와서 보라고 하니까 “다른 사람들에게는 권해도 나는 가기 싫다”고 하더라. (웃음). 영화에서 남편이 “너 때문에 난 극장 안 간다”는 대사가 나오는데 그건 남편 얘기가 맞다. 아들이 극장 가자고 하면 우리 집에 영화하는 사람 하나 있는 것도 피곤한데 내가 왜 거길 가냐고 한다. (웃음)
-영화 속 대사들이 구체적이고 재미있다. =시나리오를 쓰다 보니 자연스럽게 나온 거다. 영화에서 옆방 감독이 좀 거들먹거리면서 몸 만드는 게 중요해, 그러는데 진짜 내 옆방 감독님은 그런 말 안했다. 다만 어떤 분이 내가 몰래 운동 하는 거 유심히 본 거 아니냐고는 묻더라. (웃음)
-판타지, 음악영화에 대한 관심이 많아 보인다. =음악영화 시나리오만 세개를 써놨다.
-판타지 장면이 나올 때는 개미가 등장한다. =컴퓨터의 커서가 개미처럼 보였고 환상장면에 개미가 등장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열심히 일하는 개미, 라는 생각도 있었고. 내가 그런 적은 없지만 나중에 개미 환상을 봤다는 분은 만난 적이 있다.
-예상과 다르게 유쾌하고 낙관적인 영화다. =그렇게 봐주니 좋다. 상업영화를 공격하겠다는 건 아니었다. 다만 무슨 이야기를 해도 나로선 충무로에 대한 이야기를 피해갈 수 없었다. 창작자들이 소도구가 되는 지점을 말하겠다는 의도는 있었지만, 더 중요한 건 자연스럽게 인물 군상이 보이는 것이었다. 내가 좋아하는 영화도 그런 영화들이다. 이를테면 빌리 와일더. 사회와 정치에 대한 이야기를 최대한 자연스럽고 풍부하게 사람의 이야기로 하는 것이 감독의 의무인 것 같다.
-충무로의 어느 제작자가 이 영화를 본 다음 다시 충무로의 상업영화를 함께하자고 제안한다면. (웃음) =하지 뭐! (웃음) 실패담도 가치가 있다고 본다. 이 영화는 실패담이지만 우울하지 않다. 하지만 억지 희망도 없다. 이 영화에는 거창한 건 아니지만 소박한 보물이 있다. 왜 소풍 가서 보물찾기할 때의 그런 보물들 말이다. 영화를 보고 그런 걸 하나씩 가져가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