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회 서울국제가족영상축제에서 국제경쟁부문 대상을 차지한 <핸즈 업>의 로맹 구필은 68세대를 다룬 자전적인 82년작 다큐멘터리 <서른살의 죽음>으로 황금카메라상을 수상했던 실력파 감독이다. 장 뤽 고다르와 로만 폴란스키 등 거장의 영화에 스탭으로 참여했을 뿐만 아니라 아르노 데스플래생을 비롯한 프랑스 유명 감독이 아끼는 배우이기도 한 그의 이번 한국 방문은 해피엔딩으로 마무리됐다. 로랑 캉테의 <클래스>에서도 다뤄졌던 불법이민 문제는 이 영화에서 열살 남짓 소년 소녀들의 성장통을 통해 좀더 감성적인 방식으로 그려진다.
-<핸즈 업>을 어떻게 구상하게 되었나. =내 영화의 스탭으로 참여했던 한 여성의 실화에서 시작됐다. 그녀가 입양한 베트남 아이가 하루는 학교에서 돌아와 자신에게 질문을 던졌다고 한다. 그 아이의 학교 친구 중 흑인 아이와 방글라데시 출신 아이가 불법이민자라 불시에 추방당해 갑자기 학교에서 사라졌는데, 그걸 이해할 수 없었던 아이는 엄마에게 자기 차례는 언제냐고 물었다는 거다. 아이의 엄마는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몰라 당황했다고 한다. 그 이야기를 듣고 너무 어이가 없었고 지하철을 타고 돌아오면서 과연 내 아이가 그런 질문을 했다면 어떤 이야기해줄 수 있을까를 생각했다. <핸즈 업>은 이러한 불합리한 상황을 어떻게 하면 최대한 아이들에게 이해시킬 수 있을지를 고민하며 만든, 아이들을 위한 영화다.
-주연이 대부분 아이들이다. 어떤 방식으로 연기를 지도했나. =아이들은 본능적으로 연기를 한다. 상상의 영역이 크기 때문이다. 촬영장에 데려다놓으면 아이들은 주변 사물들에 자연스럽게 상상을 덧붙여 논다. 문제는 이런 자연스러운 연기를 어떻게 영화로 끌어들이는가다. 아이를 데리고 영화를 찍는 것 자체가 어렵진 않지만 우리 영화처럼 아이들이 여러 명인 경우, 그들을 한번에 집중시키기가 어려운 게 사실이다.
-인물들이 미래 시점에서 과거를 회상하는 방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런 방식을 택한 이유는 무엇인가. =지금 벌어지고 있는 모든 일이 미래에는 상당히 어리석고 우스꽝스러워 보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있었다. 일종의 희망적 비전이라고나 할까. 영화에서 주인공이 과거를 회상하면서 대통령이 누구였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도 현재 이런 일이 프랑스에서 벌어지도록 놔두는 사르코지에 대한 일종의 농담이다. (웃음)
-프랑스에서 불법이민 문제는 꽤 큰 이슈라고 알고 있다. 로랑 캉테의 <클래스>에도 중국인 학생 가정의 불법이민 문제가 등장한다. 불법이민 문제는 특히 가족과 어린이에게 큰 영향을 끼치는 것 같다. = 불법이민 문제는 어린 아이를 키우는 부모에게 미치는 영향이 더욱 크다. 하지만 부모는 몰라도 아이들은 학교의 울타리에서 배우고 자랄 수 있는 기회를 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프랑스는 여러 국가에서 온 다양한 아이들이 자라서 만들어진 나라다. 아이들은 어떤 방식으로든 차별받아서는 안된다. 아이들은 출신으로 서로를 구분하지 않는다. 단지 친구냐 아니냐가 중요할 뿐이다. 그런 아이들이 커가면서 어른들의 시선에 따라 온갖 편견을 배운다. 나는 순수한 어린이의 눈으로 이 문제를 풀어가야 한다고 믿는다.
-폴란스키, 고다르, 샹탈 애커만을 비롯한 거장들의 작업에 참여했는데. =로만 폴란스키와는 <테스>에서 작업했는데, 그는 생각을 이미지로 옮기는 데 강력한 재능을 가지고 있다. 이건 고다르와 정반대 방식인데, 고다르의 영화 <할 수 있는 자가 구하라>에서 약 1년 동안 아트 디렉터로 일하면서 모든 것을 의심하고 실험하려는 그의 태도가 정말 인상적이었다. 고다르는 항상 정해진 모든 것에 의문을 품고, 어떤 이야기를 하더라도 항상 다른 표현 방식들을 찾아내려 했다. 요컨대 처음에 하려고 했던 이야기와 어떻게 다르게 갈 것인가, 거기서 어떤 다른 이야기를 끌어낼 수 있을 것인가에 집중하는 것이다. 기존의 관습이나 지식을 다 깨고 나와야 하는 작업이라 정말 어려웠지만, 그만큼 영화가 생각보다 굉장히 자유로운 매체라는 걸 그를 통해 깨닫게 되었다.
-한국영화들을 본 적이 있나? 혹시 좋아하는 감독이나 영화가 있다면. =오래전 영화제에서 임권택 감독의 <취화선>을 보고 매우 감탄했던 기억이 있다. 그런 거장이 여전히 건재하기 때문에 한국영화가 끊임없이 흥미로운 작품을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현재의 한국영화들은 80, 90년대 홍콩영화들을 떠올리게 만드는 굉장히 창의적인 에너지가 넘치고 있다. 최근에는 파리 극장가에서 개봉한 <추격자>를 인상 깊게 봤다.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의 어두운 기운이 넘치는, 매우 재능있는 감독이라고 생각한다.
-이후 준비 중인 작업이 있나. =아직 시나리오는 나오지 않았지만 마찬가지로 아이가 주인공인 영화가 될 것 같다. <핸즈 업>의 주인공보다 훨씬 더 운이 없는(웃음) 소년에 관한 이야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