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놉시스 인기배우 우주현이 자살한 뒤, 그녀의 출연작에서 조감독으로 일했던 로맨스 조는 영화를 그만두기로 결심하고 낙향한다. 자살을 생각하고 내려간 고향에서 그는 일본에 있는 엄마를 그리워하는 소년과 마주치고, 소년의 엄마가 자신의 첫사랑 초희였음을 알게 된다. 한편 새 시나리오를 완성하기 위해 시골에 온 유명인사 이 감독은 심심해서 부른 다방 레지로부터 로맨스 조의 평범하지 않은 로맨스의 여정과 결말에 대해 듣게 된다. 이 감독은 로맨스 조의 실화를 영화로 만들겠다고 욕심내지만, 이야기는 그의 뜻대로 풀리지 않는다.
-<로맨스 조>를 어떻게 시작하게 됐나. =어느 날 카페에 앉아 작업하는데 글이 막혀 괴로워하고 있던 도중 다른 손님들을 물끄러미 쳐다봤다. 다들 무슨 할 얘기가 그리 많은지 쉬지 않고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그러다가 새삼스럽게 깨달았다. 우리한테는 이야기가 필요하구나. 정보든 소문이든, 지적인 부분이든 끊임없이 이야기가 필요하다. 그래서 상황은 다를지언정 등장하는 모든 인물이 각기 이야기를 만들어내고 요구하는 이야기를 구상하게 됐다.
-어찌 보면 단순한 스토리지만, 몇겹으로 이어지는 액자식 구성이 독특한 영화적 힘을 만들어낸다. =M. C. 에셔의 <그리는 손> 같은 뉘앙스의 이야기를 쓰고 싶었다. 서로가 서로를 그리고 있지만 밖에서 보면 두손 자체도 그림이다. 그런 식의 이야기를 짜다보니 액자식 구성으로 가게 됐다.
-장르도 하나로 정의내리기 힘들다. 여러 가지 분위기가 섞여 있다. =쓰기 시작할 때는 코미디였다. 몇개의 액자들이 겹치면서 멜로드라마처럼 보일 수도 있겠지만, 기본적으론 코미디로 보였으면 좋겠다.
-배우가 상당히 많이 필요하다. 전체적으로 일정한 톤을 유지하는 것이 관건일 것 같다. =연기 지도에 대해서는 그런 생각을 하고 있다. 내가 이야기 전체를 명확하게 꿰고 있다면 자연스럽게 할 얘기들이 나올 것이다. 사실 디렉팅을 어떻게 해야 하느냐에 대해 오랫동안 혼란스러웠다. 보통 제일 자주 나오는 말들이 ‘자연스럽게, 편하게 하세요’ 식의 뜬구름 잡는 디렉팅이다. 지금의 결론은, 형용사는 최대한 배제하고 직접적인 동사를 잘 사용하자는 것이다.
-홍상수 감독의 최근작을 4편이나 함께한 입장에서 그로부터의 영향을 묻지 않을 수 없다. =감독님 연출부들이 그런 고민을 많이 한다. 내 작업을 할 때 ‘홍상수 아류 아냐?’라는 말을 들으면 어떡하나, 하고. 내가 홍 감독님 작품을 4편을 연달아 작업했을 때도 주변에서 이해하기 힘들다는 시선이 많았다. 하지만 오랜 시간 그 현장에서 일하면서, 오히려 나한테 맞는 부분을 서서히 보게 됐고 좋은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생각한다.
-구체적으로 어떤 좋은 영향일까. =영화를 만들고 대하는 자세가 제일 중요했던 것 같다. 그런 태도가 내게 정말 큰 힘이 된다. 다른 현장에선 시스템에 대한 갈증이 컸다. 수많은 파트와 수많은 인력이 모여 있을 때 되게 소모적인 부분들이 자꾸 눈에 보였다. 홍 감독님 영화에는 그런 게 전혀 없다. 영화 하나만 놓고 달려갈 수 있다. 이를테면 배우 오디션 부분에서도, 난 오디션 진행할 때가 제일 힘들었다. 내가 연기를 전공한 사람도 아닌데, 저 경력 많은 배우들을 앞에 놓고 오디션을 보는 방식 자체에 죄책감이 들었달까. 그런데 홍 감독님이 배우들과 작업하는 방식을 보면서 저렇게 만나는 게 맞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글쓰는 부분에서도 그렇다. 시나리오가 따로 없이 트리트먼트를 놓고 작업하시는데, 그게 대사만 정확하게 확정되지 않았다 뿐이지 신 구분부터 시작하여 나머지 상황 설명은 정확하게 다 들어가 있다. 그렇기 때문에 현장 변화에 잘 대처할 수 있고 영화적으로 대사만 바꾸는 게 가능해진다. 나 역시 영화 작업할 때 트리트먼트부터 아주 구체적으로 잘 써야겠다고 다짐했다.
-입봉을 준비하는 입장에서 현재 한국영화계 상황을 어떻게 체감했나. =시나리오를 들고 여러 군데 영화사를 다녔다. 기준 자체가 돈에 맞춰져서, 시야가 그만큼 좁아졌다는 느낌이 든다. 상업영화가 나쁘다는 게 아니다. ‘이야기는 재밌는데 돈이 안돼’라고 말이 나오는 순간 아무것도 진행이 안된다. 가장 답답한 건 투자사나 제작사가 그렇게 나오다보니 시나리오 쓰는 사람들도 거기 맞춰서 자기의 생각이 없는 장르영화를 재생산하는 소모적인 시간을 보낸다는 점이다. 그래도 난 운이 좋은 편이다. 홍 감독님과 작업하면서, 큰 예산이 아니라도 어떻게든 의지가 있다면 스스로 방법을 찾을 수 있다는 확신을 배웠다. 최악의 경우 100만원이든 200만원이든 내가 재밌게 찍을 수 있는 걸 찍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사실 이번 ‘씨네21 신인감독 발굴 프로젝트 2010’에서 지원하는 제작비 자체도 극히 적은 액수긴 한데. =조건이 안 좋을수록 내가 더 치열하게 고민한다면 창의적인 게 더 나올 수 있다. 지금 상황에선 크게 걱정을 하지 않는다. 좋은 장비, 좋은 배우 다 쓰면 더 좋겠지만 그럼 내가 게을러질 수 있을 것 같다. 내가 만족할 수 있는 좋은 이야기를 쓴다면, 그걸 알아봐주는 관객도 반드시 있을 거라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