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모 시사주간지와 인터뷰를 했다. 기획기사 아이템으로, ‘여자의 성공’에 대해서 입체적으로 조망하는 꼭지였다. 쑥스러운 스튜디오 촬영도 하고, 장시간의 인터뷰도 했다.
각설하고, 기사를 읽는 순간 잠시 화가 났다. 결정적인 ‘오자’ 때문이었다. 내가 과거에 쓴 그야말로 알량한 영화광고 카피 중에 ‘잘까 말까 끌까 할까’라는 문장이 있는데, 여기저기 매체에 얼굴을 내밀 때마다 나에 대한 소개와 함께 종종 언급되는 낯뜨거운 카피이기도 하다. 어쨌든 그 시사주간지는 ‘잘까 말까 끌까 할까’를 ‘잘까 말까 끌까 말까’로 오기하는 실수를 했다.
나는 개인적으로 오자나 오보에 필요 이상으로 치를 떠는 스타일이다. 우리 직원 중에 ‘오자의 여왕’이라고 별명을 붙인 사람이 있는데 그녀의 마케팅 기획서나 보도자료를 읽을 때마다 언제나, 오자를 지적하지만 언제나 오자투성이의 페이퍼를 내밀곤 한다. 나는 그녀가 내가 없는 사이, 관계기관에 공문을 띄울 때나 협찬제안서 등을 보낼 때 ‘명필름’을 ‘맹필름’이라고 해서 보내지 않을까 걱정이다.
며칠 전 모 종합일간지의 영화 관련 기사엔 <씨네21>에서 오랫동안 만화를 그리는 ‘정훈이’씨를 ‘정훈희’라고 오기했다. ‘<버스, 정류장> 컨셉북’에 대한 기사로 필진을 소개하는 내용이었는데, 나는 그 기자와 통화하면서 설마 정훈이씨를 틀릴 줄은 꿈에도 생각 못했다.
지난해, <씨네21>과의 인터뷰 기사 중 틀린 정보 하나. <섬>이 베니스국제영화제 경쟁부문에 두 번째로 진출했단다. <섬>은 세 번째고, 두 번째는 장선우 감독의 <거짓말>이다. 30번째도 아니고 3번째인데, 좀더 주의를 기울였으면 틀리지 않았을 내용이다. 이런 일들은 무수히 많다.
나는, 인터뷰이의 입장에서, 인터뷰어가 혹 오기하는 실수를 범하지 않을까, 녹음기는 잘 돌아가고 있는지, 취재노트에 잘못 쓰는 건 아닌지 노심초사해진다. 얼마 전엔, 어느 기자와 마주 앉아서 취재노트 한 부분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앤’이 아니고 ‘엔’인데요, 라며 주책을 부렸다. ‘오자’나 ‘오보’에 대해 당신 너무 ‘오버’야, 라고 욕해도 할 수 없다. 정확한 ‘사실’(fact)의 전달이 인터뷰어의 1차적 자격요건이라고 생각한다.
포커스가 내내 맞지 않는 영화에서 아무리 현란한 카메라워크를 발휘한들, 앞뒤 연결동작이 맞지 않는 엉성한 콘티뉴이티로 아무리 대단한 주제를 얘기한들, 정확한 시장조사조차 되어 있지 않은 마케팅 기획서에서 마케팅 목표와 전략이 어떻다고 떠들어봤자, 분명한 연결신인데 전날 밤 술을 진탕 퍼마셔 팅팅 부은 얼굴로 현장에 나와 캐릭터가 어떻고 연기의 진정성이 어떻고를 심오하게 얘기해봤자 그게 다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전망이 어떻고, 현상이 어떻고에 대한 거창한 비전과 분석을 떠나서 자신이, 자신의 위치에서 지켜내야 할 ‘사소한 임무’에 목숨을 거는 소심한(!) 사람들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잘못된 띄어쓰기, 틀린 철자법으로 종종 채워진 내 원고를 손봐주신 편집기자님, 이 지면을 빌려 인사드립니다. 죄송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