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힛걸 뱀파이어로 돌아오다
렛미인 Let Me In 감독 맷 리브스/출연 클로이 모레츠, 코디 스밋맥피 /개봉 11월18일
조용히 등장했던 한편의 흡혈귀 영화가 이렇게 길고 강한 파장을 일으킬 줄 누가 알았을까. 그리고 또 할리우드의 가장 촉망받는 악동 하나가 이 영화의 리메이크에 관심을 가질 줄 누가 알았을까. 국내에서도 많은 팬을 확보하고 있는 스웨덴의 기이하고 서정적인 흡혈귀 영화 <렛미인>이 <클로버필드>의 감독 맷 리브스의 손에서 마침내 다시 만들어졌다. 부모는 이혼하고 학교에서는 마냥 괴롭힘을 당하고 마음을 나눌 만한 친구도 없는 소년 오웬(코디 스밋맥피). 이 아이의 옆집에 이사 온 조금 이상한 소녀 애비(클로이 모레츠). 오웬에게는 이제 친구 한명이 생겼다. 오웬과 애비 사이에 우정이 싹튼다. 그런데 그즈음 마을에서는 영문 모를 연쇄살인사건이 일어나고 오웬은 애비가 이 사건에 깊이 연루되어 있음을 느낀다.
북구의 <렛미인>이 할리우드의 <렛미인>으로 옮겨지면서 몇 가지 조합들이 재미있어졌다. 21세기적 유희영화 <클로버필드>의 감독 맷 리브스가 연출과 각본을 맡았다는 게 가장 먼저 재미있다. 토마스 알프레드슨의 <렛미인>이 호러영화로서는 드물게 처연한 정서로 마음을 움직였다면 맷 리브스의 <렛미인>은 더 자극적이고 도발적일 가능성이 크다. 한편 맷 리브스는 영화의 배경시기인 1980년대를 어떻게 그릴 것인가 하는 것에도 치중했다고 한다. 냉전 분위기가 팽배했던 그때 한 미국 소년의 마음은 어떻게 어두운 시대의 분위기에 영향받고 있었을지를 고민했다. 주연배우들의 조합도 재미있다. 소년 오웬은 코디 스밋맥피, 소녀 애비는 클로이 모레츠가 맡았다. 코디 스밋맥피는 <더 로드>에서 묵시록적 세계의 끝에서 살아남은 소년을 연기했고 클로이 모레츠는 <킥애스: 영웅의 탄생>에서 당차고 다부진 힛걸을 연기했다. 둘 다 할리우드 아역 샛별들이다. 묵시록 SF의 소년과 마블코믹스의 소녀가 만나 만드는 <렛미인>. 영화는 토론토영화제에서 공개됐다. 평판은 좋다. 앞의 작품을 훼손하지 않았으며 더 뛰어나기까지하다는 평도 보인다. 글 정한석
4. 지상 최대의 섹슈얼 프로젝트
투어 리스트 The Tourist 감독 플로리안 헨켈 폰 도너스마르크/ 출연 조니 뎁, 안젤리나 졸리, 폴 베타니/ 개봉 12월9일
순진한 남자 프랭크(조니 뎁)는 실연의 아픔을 달래기 위해 이탈리아로 여행을 떠난다. 기차 안에서 그에게 적극적으로 다가온 여자 엘리제(안젤리나 졸리)는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아름답고 우아하다. 베니스 호텔의 같은 방에 묵게 된 두 사람은 달 밝은 밤 발코니에서 키스를 나누고, 당연하게도 프랭크는 이 뜻하지 않은 로맨스에 대한 기대로 들뜬다. 하지만 아니나 다를까, 엘리제에게는 또 다른 속셈이 있었다. 그녀의 예전 애인, 14개국에서 지명수배된 악명 높은 갱스터 알렉산더로부터 달아나기 위해 프랭크를 이용한 것. 곧 프랭크는 뭔가 잘못되었다는 걸 깨닫는다. 알렉산더뿐 아니라 알렉산더로부터 거액을 도둑맞은 또 다른 갱스터, 비밀요원 등이 모두 자신을 뒤쫓고 있었던 것이다.
“<투어 리스트>는 지극히 우아하고 교양있는 여인이 그 어느 쪽의 미덕도 갖추지 못한 남자와 사랑에 빠지는 러브스토리다.”(플로리안 헨켈 폰 도너스마르크) <미스터 & 미세스 스미스> 정도가 비근한 예일까. 지구상에 존재하는 가장 섹시한 남녀가 한 영화에서 만났다. 다시 말해 조니 뎁과 안젤리나 졸리가 <투어 리스트>에서 처음으로 호흡을 맞췄다. 이 엄청나게 섹시한 프로젝트가 성사되기까지는 약간의 난관이 존재했다. <고스포드 파크>의 줄리언 페로스, <유주얼 서스펙트>와 <발퀴리>의 크리스토퍼 매쿼리가 협업한 각본은 할리우드에서 내로라하는 빅 네임들이 모두 탐을 내는 프로젝트였다. 맨 처음 라세 할스트롬이 연출을 맡고자 했지만 결국 스케줄 문제로 하차한 뒤 알폰소 쿠아론과 플로리안 헨켈 폰 도너스마르크(<타인의 삶>)가 차례로 끼어들었다. 남녀 주인공으로는 샘 워딩턴과 샤를리즈 테론이 거론되었지만 샘 워딩턴이 감독과의 ‘창조적 견해 차이’로 하차했다. 톰 크루즈가 <나잇 & 데이>와 <투어 리스트>를 두고 최종까지 저울질했던 일화도 유명하다(흥미롭게도 <나잇 & 데이>와 <투어 리스트>는 남녀의 역할이 바뀐, 거의 비슷한 내용으로 보인다). 하지만 끝이 좋으면 다 좋은 법. 최근 행보와는 정반대로 유약하고 머뭇거리며 소심한 남자를 연기하는 조니 뎁, 이제는 스크린에 등장하는 그 순간부터 관객의 시선을 완전히 장악해버리는 안젤리나 졸리의 랑데부에 모두의 이목이 쏠리고 있다. 글 김용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