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성균관 스캔들>의 구용하(송중기)를 보고 있으면 마냥 즐겁다. 심각한 인물들 사이에서 흐느적흐느적 웃음을 흘리고 다니는 모습에서 일단 풀어지고, 언제 봐도 메이크업을 한 듯한 뽀얀 얼굴에서 또 한번 풀어진다. 시전 상인에게 가게 세놓는 부잣집 아들, 요즘으로 치자면 재벌 2세쯤 될 것이다. 술과 여자가 있는 곳, 혹은 ‘세상에서 제일 재밌는 게 싸움 구경’이라며 어디선가 누군가에 무슨 일이 생기면 언제든 나타나 “나 구용하야~”라며 기분 좋은 ‘깨방정’을 떤다. 이선준(믹키유천)이 엄격한 교육을 받은 전형적인 명문가 자제의 모습이고, 문재신(유아인)이 비슷한 성장과정을 거치면서 오히려 그 극단에 서게 된 반항적 캐릭터라면, 그는 정치나 학문 그 어디에도 관심없는 것 같은 한량이다. 말하자면 <성균관 스캔들>의 답답한 세상사 속에서 유일하게 숨통을 틔워주는 인물이다. 그는 늘 심각한 얼굴의 동료들에게 “자네들의 그 딱딱한 머리에서 얼마나 훌륭한 정책이 나올 것 같나”라면서 어깨를 툭툭 치며 술을 권한다. 그를 보고 있으면 딱 한마디가 떠오른다. 아, 정말 탐나는도다.
<성균관 스캔들>에서 저 멋진 세 남자 외에 남장여자 김윤식(박민영)을 더하면, 보기만 해도 오줌을 잘금잘금 지린다는 조선시대 버전 ‘F4'인 ‘잘금 4인방’이 된다. 당파로 갈라진 기성세대와의 갈등과 그에 대한 저항, 그리고 그 속에서 어렴풋이 고개를 드는 로맨스가 <성균관 스캔들>의 핵심이라면 구용하는 관찰자처럼 한 발짝 거리를 두고 있다. 그래서 언제나 그들의 이야기를 훔쳐보고 의심하고 고개를 갸우뚱하면서 신을 마무리하는 표정은 대부분 그의 몫이다. 말하자면 이선준과 문재신이 다소 뻔하고 전형적인 역할이라면, 구용하는 제 역할을 수행하지 못할 때 인물이나 사건과 유리되어 너무나 뜬구름 잡는 캐릭터가 될 수도 있다는 얘기다.
알 듯 모를 듯한 구용하의 매력
송중기는 여러 인물 사이에서 무게중심을 잘 잡아야 하는, 어떻게 보면 배우 입장에서는 인물 중 가장 위험부담이 큰 구용하 캐릭터를 너무나 훌륭하고 매력적으로 소화하고 있다. “속을 알 듯 말 듯하고 어디에도 치우치지 않는 모습이 구용하의 가장 큰 매력”이라는 송중기는 그를 표현하기 위해 많은 영화 속 인물들을 떠올렸다. “<캐리비안의 해적>에서 잭 스패로우(조니 뎁)의 흐느적거리는 걸음걸이를 가져왔고, <동방불패>에서 천하태평인 영호충(이연걸)의 모습도 흉내내봤어요. 우리 영화 중에서는 <전우치>에서 강동원 선배의 능글맞은 캐릭터를 참고했고요”라는 게 그의 얘기다. 드라마 분위기상 여러 퀴어영화들을 보기도 했다.
송중기가 작품을 대하는 태도, 구용하를 연기하기 위해 준비한 과정을 듣고 있자니 무엇보다 참 성실한 배우라는 생각이 들었다. 캐릭터에 대한 분석은 명확했고 그를 소화하기 위한 준비는 철두철미했다. 어쩌면 이른바 ‘꽃미남 배우’에 대해 자연스레 가질 수 있는 여러 선입견을 깨줬다고나 할까. 그것은 사실 그가 올해 봄 쓴 책 <피부미남 프로젝트>를 보면서도 확실히 느꼈다. 그저 스타의 이름을 빌린 뷰티 서적이겠거니 했지만 그 속은 정말 꼼꼼하고 알찼다. “화보로 때우는 책을 내긴 싫었어요. 실제 도움이 될 만한 제 경험담이나 사용후기 같은 걸 공들여서 빽빽하게 채우고 싶었거든요”라며 뭐든지 ‘대충’ 하는 걸 정말 싫어한다고 했다. 그런 성격은 배우 송중기일 때 더욱 강해진다.
어느새 떨어진 ‘얼짱’이라는 타이틀
영화로는 <쌍화점>(2008)의 호위무사 중 한명으로 데뷔해 <오감도>(2009)의 마지막 에피소드에서 신세경과 커플을 이뤘고, <이태원 살인사건>(2009) 이후 돌아가신 아버지가 선물한 개 마음이와의 우정을 그린 <마음이2>(2010)에서는 사연 많지만 유쾌한 표정을 잃지 않는 멋진 아들이자 마음이의 친구로 첫 주연을 연기했다. 아직 영화배우로서의 확실한 인장을 남겼다고 하기엔 미흡할지 몰라도 최근 그의 성장세를 보고 있노라면, 분명 그가 더 멋진 모습으로 다시 나타나리라는 기대를 안고 표지 모델로 내세우기에 부족함이 없어 보인다. 무엇보다 현재 10회까지 방송된 <성균관 스캔들>에서는 그의 비중이 늘어나며 더욱더 흥미를 더하고 있다. 인물 사이에서 딱히 어디에도 끼지 않던 그가 ‘저 친구들과 놀면 재밌겠군’ 하는 생각으로 잘금 4인방으로서의 본격적인 맹활약을 예고하고 있기 때문이다. “버라이어티 프로그램 <런닝맨>을 촬영하면서 만나는 (유)재석이 형이나 다들 나보고 ‘도대체 그 드라마에서 네가 하는 일이 뭐냐?’ 그러셨는데(웃음) 그런 종잡을 수 없는 캐릭터가 구용하의 매력”이라며 “이제 4인방과 힘을 합쳐 풀어내는 장면들이 더 많아 재밌어질 거다. 그리고 지금까지 구용하의 가족관계나 개인적인 얘기는 살짝 드러나는 정도였는데 그런 것도 앞으로 흥미롭게 보여질 것”이라고 말한다.
한때 송중기를 표현하는 말은 ‘성대 얼짱’이었다. 자신의 입으로는 한번도 얘기하지 않은 그 이름으로 주목받은 것은 사실이지만 ‘그랬었나?’ 싶을 정도로 이제 완전히 생경한 표현이 됐다. 이른바 ‘얼짱’ 출신 연예인 중 그런 수식어를 여전히 떼지 못한 친구들이 많은 걸 보면 그는 이제 확실히 다른 차원의 배우가 되긴 했다. 바꿔 말해 그를 향한 기대가 높다는 것이다. 그럴 때 그는 고전영화들을 보면서 마음을 다잡는다. 원래 영화를 좋아했지만 이 일을 하면서 더 영화가 좋아졌다. “<대부>나 <무간도>도 좋아하지만 <러브 어페어>나 <러브 액츄얼리>, 그리고 <화양연화> 같은 영화도 좋죠. 얼핏 서로 달라 보이는 영화들이지만 가족이나 연인에 대한 사랑은 그 자체로 닮아 있어요. 묘하게 흥분되고 설레는 감정의 영화들이랄까. 내가 하는 작품들도 사람들에게 그런 설렘을 줬으면 좋겠어요”라는 게 그의 얘기다.
쉴새없는 스케줄을 위한 자동차극장
요즘엔 차로 이동하는 중에도 늘 영화를 본다. 본인의 얘기를 빌리자면 그냥 푹 빠져 산다. <대부>를 보고서 <스카페이스>를 알게 됐고, <러브 어페어>가 리메이크라는 걸 안 뒤 레오 매커리 감독이 만들고 직접 스스로 리메이크까지 했던 이전 1939년과 1957년 작품도 찾아볼 생각이다. <동방불패>의 이연걸을 좋아하니 주말에는 또 서극의 <황비홍>까지 볼 예정이란다. 그래서 늘 신나는 <뮤직뱅크> 같은 음악 프로그램이나 각종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에다 <성균관 스캔들>의 지방 촬영으로 쉴새없이 왔다갔다하면서, 요즘 개인적인 ‘피부미남 프로젝트’가 살짝 위협받고 있긴 하지만 더없이 행복한 시간들이다. 진정 배우의 맛을 알아가는 시간이랄까. 지켜보자, 송중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