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홍콩영화 팬이라기보다는 할리우드 키드였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생각보다 많은 영화와 장소들을 알고 있다는 사실에 놀랐다. 80년대와 90년대를 십대, 이십대로 통과한 인간의 숙명이 아닐까.이 책을 쓴 사람은 <씨네21>의 주성철 기자다. 홍콩영화 전문가로는 한국 최고이고, 그런 이유로 그 누구보다 홍콩을 출장으로, 여행으로 자주 찾는다. 글보다 얼굴로 인기를 긁어모으고 있다는 점은 홍콩영화 배우 같다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왜 저자 사진을 싣지 않았는지 원통하다). 홍콩에 갈 때마다 “(그 영화 속) 거기가 어디였나요”라고 묻고 싶었던 모든 질문에 대한 답이 이 책에 실려 있다. 어떤 장소를 보며 “아, 그 영화 뭐였지?”하며 답답해해본 적 있는 사람이라면, 이 책을 보면서 오랜 친구를 만난 듯한 기분 좋은 놀람을 느낄지도 모르겠다. 개인적으로 가장 사연 깊었던 장소는, <홍콩에 두 번째 가게 된다면>이 ‘이곳에 서면 모두가 영화 속 주인공이 된다’며 운을 뗀 미드 레벨 에스컬레이터 주변이다. 상투적이라고 놀릴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중경삼림>으로 스무살을 맞았었다. 홍콩에 가서 가장 열심히 찾아다닌 골목이었고, 어느 앵글에서 보면 그때 그 두근거림을 경험할 수 있을까 고민했던 곳이었다. 이 책을 보니 <다크 나이트>에서 크리스천 베일과 모건 프리먼이 이야기를 나누던 곳이 이곳이라고. 놀랍게도 <AD2000>에서 추격신에 등장하는 곳도 이곳이었고, <화양연화>에서 장만옥의 의상을 담당했던 양청화의 드레스 부티크도 이 근처에 있다고 한다! 아니, 이걸 미리 알았으면 좋았잖아. 어쩐지 억울한 마음이 든다. 이 책을 읽은 이상 또다시 가야 하게 되어버렸다.
그러니까, 이 책의 제목은 이렇게 바꾸어야 한다. 후보1. 홍콩에 두 번째 갈 돈이 있다면. 후보2. 홍콩에 두 번째 갈 수 있다면. 후보3. 오빠, 나 홍콩!(쿨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