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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랑말랑한 감상주의로 포장된 이주노동자들의 현실 <방가? 방가!>
김도훈 2010-09-29

<달은 어디에 떠 있는가>(1993)의 일본은 낯설었다. 필리핀, 한국인, 이란인이 뒤엉켜 살아가는 1990년대 초반의 일본은 모든 노동력을 자체적으로 공급하던 한국의 관점에서는 대단히 흥미로운 공간이었다. 그로부터 20년 가까이 흘렀다. 한국은 20년 전 일본처럼 동남아시아와 중앙아시아 국가에서 노동력을 수입하는 다민족 국가가 됐다. 많은 독립 다큐멘타리들을 제외하자면, 본격적으로 영화계가 이주노동자 문제를 다루기 시작한 건 신동일 감독의 <반두비>(2009)부터다. 육상효 감독은 <방가?방가!>에서 이주노동자 문제를 아예 충무로 코미디의 소재로 빌려온다. 어딘가 아슬아슬한 시도다.

주인공 방태식(김인권)은 공장, 막노동, 커피숍 아르바이트 등을 전전하며 살아온 백수다. 고향에서 함께 상경해 노래방을 운영하는 친구 용철(김정태)의 조언에 따라 태식은 평소 동남아라는 별명으로 불릴 만큼 이국적인 자신의 외모를 이용해 중앙아시아 부탄 출신 노동자 ‘방가’로 가장한 뒤 의자 생산 공장에 취직한다. 태식은 공장에서 알 반장(칸), 찰리(피터 홀밴), 마이클(팔비스), 라자(나자루딘) 등의 외국인 노동자들을 만나고, 베트남 출신의 애 딸린 미녀 장미(신현빈)에게 연정을 느끼게 된다. 어떻게든 잘살아보겠다며 국적을 속이고 일하는 태식과 달리 용철은 재빨리 노래방을 팔아서 권리금을 싸들고 고향에 금의환향할 생각으로만 가득하다. 이를 모르는 태식은 친구의 노래방을 돕기 위해 ‘외국인 노래자랑’을 내세워 공장 직원들을 매일 노래방으로 데려온다. 그러던 어느 날 용철은 태식의 주민등록증을 위조 문서로 착각한 노동자들이 자신들도 가짜 주민등록증과 여권을 만들어달라고 하자, 그들에게서 받은 돈을 챙겨서 도망치자고 태식에게 제의한다.

<아이언 팜>과 <달마야, 서울가자>를 연출한 육상효 감독은 착한 코미디를 만드는 감독이다. 특히 전작 <달마야, 서울가자>는 진정으로 악한 캐릭터들이 하나도 없는 코미디였다. 육상효 감독은 인간에 대한 믿음을 캐릭터에 대한 믿음으로 그대로 옮겨놓는 듯하다. <달마야, 서울가자>의 스님과 조폭은 결국 선한 방식으로 하나가 되고, <방가? 방가!>의 태식과 이주노동자들도 마찬가지다. 이 영화에는 이주노동자를 다루는 영화에서 우리가 쉽게 예상할 법한 악당이 존재하지 않는다. 거의 유일한 악당인 공장 사장마저 (베트남 여성 노동자의 엉덩이를 슬며시 만지는 몹쓸 짓만 제외하다면) 스패너를 들고 노동자들을 두들겨 패는 짓은 절대로 하지 않는다. 심지어 그는 왜 외국인만 주말 근무를 시키냐고 항의하는 이주노동자들에게 족구로 문제를 해결하자고 제의하기까지 한다.

이같은 <방가? 방가!>의 선함은 양면적이다. 진짜 현실의 문제를 살짝 비껴서는 영화의 어조는 이주노동자라는 소재에 관객이 짓눌리지 않게 하려는 감독의 배려일 것이다. 육상효 감독은 “이주노동자의 사회적 상황이나 경제적 상황을 생각하지 말고 그들도 우리와 비슷한 친근한 사람이라는 생각을 하고 코미디영화로 봐주었으면 좋겠다”고 말한 바 있다. 하지만 이주노동자들의 현실을 말랑말랑한 감상주의로 포장함으로써 영화의 극적인 카타르시스는 도리없이 희석된다. 좀더 좋은 해결방식이 있었을 테지만 영화는 인간 선의의 찬양으로 성급하게 마무리되는 듯하다.

<방가? 방가!>는 육상효 감독의 재능이 좋은 내러티브 영화가 아니라 캐릭터 영화라는 걸 다시 한번 보여준다. 그가 선택한 배우들의 연기와 캐릭터는 이 감상적인 코미디를 이끌어가는 진짜 원동력이다. <해운대>와 통신업체 광고를 통해 코미디 감각을 다져온 김인권은 홀로 영화 한편을 끌어나가기에 충분한 공력을 갖춘 배우다. 김인권의 친구 용철 역을 맡은 김정태는 이 영화의 진정한 신 스틸러(Scene Stealer)라 할 만하다. 올해 <마음이2>, 드라마 <나쁜 남자> 등에 출연한 바 있는 김정태는 트로트의 리듬을 몸으로 구현하는 듯한 특유의 연기를 통해 등장하는 장면마다 포복절도할 슬랩스틱을 만들어낸다.

외국인 배우들의 연기도 부드럽다. ‘알 반장’ 역을 맡은 칸은 2009년 KBS 전국노래자랑 음성군 편에서 외국인 사상 처음으로 최우수상을 받은 경력이 있는 비전문 배우다. 라자 역을 맡은 나자루딘은 육상효 감독의 강의를 듣던 대학생이고, 찰리역의 피터 홀밴은 <이태원 살인사건> <무법자>에 출연한 바 있는 배우다. 마이클 역의 팔비스는 한국에서 모델 활동을 준비 중인 배우다. 육상효 감독이 이들의 가능성을 완전히 뽑아낸 것 같지는 않다. 다만 외국인 배우들이 철장에 갇혀서 오랫동안 연습해온 편승엽의 <찬찬찬>을 부르는 장면은 잘 재단된 할리우드영화의 클라이맥스를 연상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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