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여름 <하하하>를 찍고 얼마 여유를 두지 않고 단 4명의 스탭과 함께 13회차 촬영으로 <옥희의 영화>를 만들었다. 원래 가벼운 행장으로 영화를 찍는 스타일이긴 하지만 이번은 특수한 경우로 보인다. =<하하하>의 마무리도 끝나지 않았고 학생들을 가르치는 학기 중간이었다. 몸은 많이 피곤했고 투자도 구할 수 없는 상황이었고 약속된 배우도 없었다. 보통 같으면 전혀 영화를 찍을 형편이 아닌데, 어느 날 갑자기 장편이냐 단편이냐는 둘째치고 완성 못해도 좋으니 뭔가 찍고 싶더라. 이렇게 모든 조건이 좋지 않은 상황에서 영화를 찍으면 무엇이 나올지 보려는 마음이 있었다.
-최악의 환경에서도 영화를 만들 수 있다면 이후로는 훨씬 자유로워질 거라는 생각을 한 건가. =어떤 상황이 되어도 찍을 수 있다는 자기 확인의 의미도 물론 있었지만 그건 부수적이고, 모든 조건이 적대적일 때 내 안에서 뭐가 나올지 궁금한 마음이 제일 컸다.
-배우와 스탭에게 완성 못할 수도 있다는 이야기도 했나. (웃음) =그런 말은 안 했지. (웃음) 거짓말 한 건 아니고 밀고 나갈 의지는 있었으니까. 준비가 없어도 너무 없으니 도중에 막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은 했다. 이선균씨에겐 미안하지만 일주일에 이틀만 시간을 내줄 수 있느냐고 물었고 고맙게도 영화에 대해 아무 정보없이 허락해주었다.
-4편으로 구성된 <옥희의 영화>의 작명법은 수록 단편 중 한편의 제목을 전체 제목으로 삼는 단편소설집의 그것 같다. 초기에는 이 영화의 가제가 <사친>(思親)이라고 알려지기도 했는데. =‘사친’(思親)은 이 영화와는 관계가 없고, 다만 내가 영화를 찍는 어떤 태도를 가리키는 말이다. 허구적인 사고의 틀에서 자유로워지는 제일 적극적인 방법이 내게 가까운 것들을 갖고 생각하는 거라고 믿는다. 나나 생활, 주변의 작은 일들을 통해 바라볼 때 ‘틀’의 허구성이 보이지 않나. <옥희의 영화>는 깊이 생각해 정한 제목은 아니고 그저 다른 제목이 내키지 않았다. 각편의 제목은 첫신 찍는 아침에 정해지기도 하고 당일 촬영분 편집을 하면서 떠오르기도 했다.
이선균에서 시작해 정유미, 문성근까지
-<옥희의 영화>를 구성하는 네 단락은 독립된 단편도 아니고 그렇다고 옴니버스의 에피소드도 아니다. 뭐라 부르면 적절하다고 생각하나. ‘편’? ‘부’? =‘부’는 너무 한 덩어리로 전체가 모이는 느낌이고, ‘편’이 좋겠다. 어느 정도 독립성도 느껴지고.
-<옥희의 영화>를 보고나면 2-3-4-1편 또는 1-2-3-4편 순서로 찍은 것 같지만 실은 1-2-4-3 순서로 찍었다. 1편을 찍은 뒤 2편 그리고 4편의 필요성을 느낀 과정과 최종적으로 3편이 있어야 완결된다고 판단한 경로를 순서대로 설명해달라. =우선 이선균씨와 하기로 정하고 촬영 이틀 전에 영화의 대강을 두세장에 썼다. 좌충우돌하는 한 남자의 겨울날 하루의 이야기 정도의 틀을 생각했다. 찍으면서 그 장면들이 늘어지면 영화 한편이 되지 않을까 했는데 편집해보니 27분 정도밖에 안됐다. 뭘 더하라는 뜻 같았다. 여기 정유미씨가 더해지면서 <첩첩산중>의 구도를 소진시켜보자는 생각이 떠올라 1편에 나와준 문성근씨를 다시 섭외했다. 그것이 2편 ‘키스왕’이 됐다. 2편의 중간쯤까지 갔을 때 장편까지 가볼까 생각이 들었다. 1, 2편에서 문성근씨가 연기하는 송 교수가 완전히 다르고 2편에서 옥희(정유미)와 송의 관계가 암시되니까 그것을 더 풀어줘야 할 것 같아 4편을 만들었다. 그리고 몇분부터 장편으로 간주되냐고 주변에 물어보니 80분이라고 하더라. 1, 2, 4편을 편집하니 80분이 안됐다. 그래도 긴 중편으로 남긴 채 더 건드리지 않았을 수도 있었다. 꼭 중편이나 장편이 돼야 한다는 압박은 어느 쪽도 없었다. 많은 돈을 들이지도 않았고 배우들도 양해해줄 터였다. 그런데 마침 103년 만의 폭설이 내렸고 3편이 바로 떠올랐다. 아침에 일어나 3편 대본을 쓰다가 송 교수가 나와야 한다는 판단이 들어 문성근씨에게 전화를 했다. 안 받더라. 연락을 기다리며 계속 썼다. 40분 뒤 전화가 왔고 나와달라고 해서 그날 오후에 바로 3편을 찍었다. (웃음) 1편이 6회차, 2편이 4회차를 찍었고 3편이 하루에, 4편은 2회차 촬영했다.
-각편이 시작할 때마다 엘가의 <위풍당당 행진곡>과 함께 출연자 크레딧을 꼬박꼬박 넣었다. 일부러 마디를 노출시킨 거다. 이렇게 중간에 경계를 그어도 하나의 장편으로 설 수 있는지 보겠다는 의도로 느껴지기도 한다. =마디마다 넉넉하게 쉬고 싶었다. 죽은 시간이 될까봐 걱정도 했고, 제스처로 보일 수도 있겠지만 각편이 다른 영화임을 표시하고 하나의 영화가 시작되는 형식을 약식으로라도 주고 싶었다. 배우들의 이름도 반복해 보여주고 싶었다. 세 주연배우의 크레딧 순서는 각편에서의 비중에 따라 편마다 다르게 배치했다. 학교 연구실 테이블에 출연진 이름을 쓴 A4 용지를 놓고 <위풍당당 행진곡>을 틀어놓고 그 음악을 들으면서 소형 디지털카메라를 움직여 내가 찍었다.
-유독 4편의 크레딧만 문성근, 정유미, 이선균의 이름을 한번 비춘 다음 다시 이선균, 정유미, 문성근 이름을 반복해 보여주던데. =편집하고 보니 장편이 되기에 약간 시간이 모자라서 그랬다. (좌중 웃음)
-각편의 시작과 끝에 두 가지 편곡의 엘가의 <위풍당당 행진곡>을 썼다. <극장전>의 <라데츠키 행진곡>이나 <밤과낮>의 <베토벤 교향곡 7번>처럼 전형적인 곡을 가져다 쓴 경우다. 황량하고 일상적인 영화의 앞에서 “당신이 볼 이 모습이 진짜 장엄한 거다”라고 선언하는 기분도 든다. =<옥희의 영화>를 만드는 초기에 그 음악에 꽂혔다. 원래 좋아하던 곡을 오랜만에 들었는데 더욱 좋았다. 이 영화를 준비하는 동안 듣고 있던 음악이고 그 곡이 내게 준 만족감과 쾌감이 있으니 영화(를 만드는 나의 상태)와 이 음악은 당연히 연결돼 있다고 본다.
구조, 그리고 리듬의 조율, 간결화
-홍상수 감독의 영화는 차이와 반복으로 구성된 세계를 매번 달리 설계한 구조를 통해 드러내왔다. <옥희의 영화> 설계의 핵심은 인물들의 동일성이 유지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배우들은 자신의 인물을 동일인이라고 여기고 연기했나. =인물의 내면, 각편의 관계를 설명한 적은 없다. 나도 마지막으로 ‘폭설후’를 쓸 즈음에야 구조를 알았다. 배우들도 추측은 했겠지만 어떤 영화인지 몰랐을 거다. 내가 해준 거라고는 2편과 3편에서 문성근씨의 옷차림을 조금 다르게 주문한다거나 하는 정도의 연출이었다. 대사를 보고 “동일인이 아닐 수 있겠다” 짐작했을 수는 있지만. 대사 톤이 잘못됐다면 개입했겠지만 그런 경우가 없었다.
-1편 ‘주문을 외울 날’부터 영화를 따라가기로 하자. 영화를 여는 첫 대사가 무려 “떼다보목지질케나봉바”다. (웃음) 그리고 이어 아내가 남편을 엉뚱한 남자의 이름으로 잘못 부른다. 1편의 도입부를 찍을 무렵엔 이 영화가 인물의 동일성을 회의하는 이야기가 될 거라는 계획도 서 있지 않았을 텐데 절묘하게 영화 전체와 어울리는 대사다. =(웃음) 남진구(이선균)는 자기 주문을 만들어놓고 사는 남자고 아마 하루를 잘 지내보자는 뜻으로 그걸 왼 거다. 이름을 잘못 부르는 대사는 계산하고 쓴 건 아닌데, 한 영화를 만드는 동안 정해진 대상과 계절과 조건이 있으니 내가 무엇을 떠올리든 그 원 안에서 벗어나지 않는 것 같다. 물론 뒤에 찍는 내용이 이미 찍어놓은 것의 영향을 받기도 한다. 전에도 먼저 찍은 것이 우연히 뒤쪽 내용과 맞아떨어지곤 했다.
-1편에서 영화과 강사인 진구는 “인위를 통해 진심을 전해야 해”라고 가르친다. 홍상수식으로 말하자면 인위는 ‘구조’인가. =구조, 그리고 리듬의 조율, 간결화 등등 타인에게 진심을 전하기 위해 의존해야 하는 인위적 틀이 오만 가지 있다. 중간에 틀이 있어야 진심이 전달되지 100% 날것으로 그냥 말하면 도리어 타인에게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도 있고 진부함에 질려 귀를 막을 수도 있고 장광설에 질리거나 엄격하지 못한 자기 연민이 꼴보기 싫어 도망쳐버릴 수도 있다.
-2편 ‘키스왕’의 도입부는 명백히 1편이 <극장전>의 전반부처럼 영화 속의 영화였는지도 모른다는 암시를 준다. 그러나 끝까지 확증은 제공되지 않는다.이처럼 네편의 상호 관계를 암시하는 동시에 지워버리는 괴상한 ‘고리’들이 있다. 예컨대 1편의 진구의 집이 2편에서 옥희의 집인데, 진구는 옥희의 집을 잘 모르는 것처럼 보인다. 1, 2편과 3편에서 송 교수는 같은 인물 같은데 다른 지위와 성격을 가진 교수이기도 하다. 즉 이 영화는 네 단편 사이에 복잡한 관계를 만든다기보다 어떤 관계도 불가능하도록 피하는 데 목표를 두고 있다는 인상이다. =<옥희의 영화>를 구성하는 네편의 관계를 깔끔히 정리할 수는 없을 거다. 토막인 동시에 독립적이다. 다만 세 인물의 관계가 주는 정서는 일관되게 간다. 내 전작들은 관객에 의해 구조적으로 다시 꿰맞추어지는 영화들이었다. 이번에는 그렇게 하고 싶지 않다는 반발이 있었고 그게 주는 쾌감이 있다고 생각했다. 정서만 일관되고 관계는 비논리적으로 겹쳐지게 하면 인물들이 확장되는 느낌이랄까. A라는 사람이 B 같기도 하고, 충분히 구체적인 인물이지만 고유한 단일 정체성은 갖고 있지 않은 인간이 보인다. 세 사람 모두가 섞여서 만든 뿌연 그림이 인간들 전체로 확장되는 것 같은. 그럼으로써 한 인물의 일면은 구체적인데 영화 전체를 의식하며 그를 바라보면 옆에 있는 인물과 섞여 있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지 않나 생각했다.
-어떻게 보면 일종의 1인다역이다. 보통 영화에서 1인다역이라면 한 배우가 변신해 전혀 다른 인물을 표현하는 연기인데 <옥희의 영화>는 그냥 한 인물을 연기해도 그것이 다른 상황과 앙상블 안에 있으면 다른 인간으로 보임을 거꾸로 증명한다. ‘키스왕’의 ‘교수-그와 사귀는 여자 제자-제자의 남자친구’라는 구도는 <첩첩산중>과 같고 배우도 동일하다. 문성근, 정유미, 이선균의 조합에서 어떤 기운을 보나. =서로 기댄 세개의 막대기 같다. A의 머리는 B의 등에 기대고 B의 머리는 또 C의 어깨에 기대고 하는 식으로 편하게 있는 기운이 포착된다. 하지만 그렇다고 <옥희의 영화>가 <첩첩산중>의 미래라든지 백그라운드 스토리인 건 아니다. 정서도 진구와 옥희의 분위기는 <첩첩산중>의 그것보다 건조하다.
-2편에서 벤치에 놓인 우유팩을 보며 진구가 그것이 그 자리에 있는 이유를 알면 우주의 모든 비밀을 알 수 있다고 생각하는 장면이 나온다. <해변의 여인>에서 중래(김승우)가 언급했던, 모든 우연을 연결하는 선을 연상시킨다. =젊은 친구의 사고유희다. 극소한 부분도 거기에 위치함으로써 그를 중심으로 보면 세상 모든 것의 위치가 달라진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수많은 관념틀과 전체를 쳐다보는 데에 지친 젊은이가 선(禪)을 하듯 눈앞의 작은 것만 제대로 보면 연결된 모든 걸 파악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거다.
-3편 ‘폭설 후’는 휴강한 교실에서 진구와 옥희와 송 교수가 일문일답을 하는 장면이 나온다. 제대로 답이 안된 채로 다음 질문으로 계속 넘어가는 이 장면은 낙지를 토하는 장면과 함께 초현실적인 느낌을 불어넣는다. =지난겨울 103년 만의 폭설이 왔고 촬영날 아침에 시나리오를 쓰면서 ‘폭설 후’라는 제목을 정했다. 텅 빈 교실에서 선생이 학생들이 오는 모습을 내려다보는 장면이 떠올랐다. 그 다음엔 셋이서 뭘 할 것인가. 교수가 학교를 그만둘 마음이니 개인적이거든 근본적인 거든 잘 안 물어봤던 질문을 뭐든 맘대로 물어보라고 할 것 같았다. 그러고는 겨울 골목에서 혼자 걷다 상투적인 뭔가를 토하는 이미지가 떠올랐다.
-4편 ‘옥희의 영화’에서는 송 교수와 진구의 이름을 부르지 않고 ‘나이든 남자’, ‘젊은 남자’로 지칭한다. =일단 옥희가 불특정 다수에게 보여주려고 이 영화를 찍었다는 전제가 있으니 그렇게 하는 것이 자기 이야기를 영화로 만든 사람으로서 부담이 없을 것 같았다. 억지로 가짜 이름을 짓는 것보다 거짓말을 안 하는 방법이기도 하다. 또 그렇게 부름으로써 개인의 정체성이 세 인물 테두리 바깥으로도 퍼지고 섞이는 느낌을 주고 싶었다.
-<옥희의 영화> 포스터는 옥희와 진구의 흑백사진 귀퉁이에 홍 감독이 펜으로 그린 송 교수의 얼굴이 들어간 디자인이다. =4편을 아차산에서 촬영하는데 한 어른이 지나가다 배우들 사진을 한장 찍어도 되냐고 물었다. 새로 산 카메라로 풍경을 찍어보려고 산행을 왔는데, 자제분이 좋아하는 이선균씨를 알아보고 만났다는 증거를 남기려고 사진을 찍으신 거다. 그런데 이분이 알고보니 내가 일하는 건대에서 정년퇴임한 교수님이셨다. 나중에 연구실로 배우들과 나를 위해 뽑은 사진 세장을 갖고 오셨다. 내 몫의 사진을 벽에 붙여두고 물끄러미 보다가 장난치듯 무심코 거기 빠진 문성근씨를 그려놓고 ‘옥희의 영화’라고 썼는데 그것이 포스터가 됐다. (웃음)
절감(節減), 절감(切感)
-4편 말미에는 감독인 옥희의 내레이션이 있다. “배우 해주실 분은 최대한 원래 모델이 된 분과 비슷한 인상의 분을 선택했습니다. 그 비슷함이란 한계 때문에 제가 원래 보고 싶었던 붙여놓은 두 그림의 효과를 절감시킬 것 같습니다.” 이것은 둘로 이해된다. 비슷해봤자 같은 것은 아니기 때문에 효과가 절감(節減)됐다는, 즉 영화매체의 한계에 관한 말 같기도 한 반면, 동일하지는 않고 비슷하기 때문에 형상화의 효과를 절감(切感)할 수 있었다는 표현 같기도 하다. =실제로도 두 번째로 이해하는 사람이 있고 나 역시 이상한 어감 때문에 그렇게 쓴 면도 있다. 어쨌든 옥희가 의도한 건 첫 번째다. 영화를 통해 두 그림을 나란히 붙여놓음으로써 자신이 기억하는 것 이상을 보고 깨닫고 싶었는데, 즉물적 느낌이란 진짜를 붙여놓아야만 알 수 있기 때문에 결국 부족했다는 뜻이다. 이 내레이션으로 인해 세 인물은 갑자기 다 배우가 되어버린다.
-다음 영화는 전북 부안에서 찍는다고 들었다. =겨울에 찍을 듯하다. 원래 <옥희의 영화>를 만들면서 다음 영화는 반팔 입고 8월에 찍으면 정말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옥희의 영화>가 9월에 개봉하면서 어려워졌다. 막상 올 8월이 너무 덥고 비도 많이 와 잘됐다고 생각하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