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서워하지 마. 엄마가 어릴 때 이 집 정원에서 소인을 본 적이 있다고 했었어. 그게 너였니?” 구옥(舊屋) 건물 아래쪽에는 대개 배수구 역할을 겸하는 쇠창살이 쳐진 작은 구멍이 있다. 구멍 안에는 뭔가 이 건물이 집으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돌아가게 하는 온갖 시설이 감춰져 있을 테지만, 아이들의 눈에는 비밀의 세계로 들어가는 입구다. 스튜디오 지브리의 신작 애니메이션 <마루 밑 아리에티>는 구멍 안쪽에 인간들의 물건을 몰래 빌려쓰며 살아가는 소인들이 살고 있다고 가정한다. 인간의 눈에 혹시라도 띄게 되면 당장 그 집을 떠나는 게 그들의 철칙. 하지만 14살이 된 소인 소녀 아리에티(미라이 시다)는 저택에 요양 온 인간 소년 쇼우(류노스케 가미키)와 마주치고, 사건이 시작된다.
지난 7월 일본에서 개봉한 이래 박스오피스 1위를 지키고 있는 <마루 밑 아리에티>에서 가장 흥미로운 건 지브리 특유의 어여쁜 그림과 달콤한 감수성이 아니다. <붉은 돼지>의 무정부주의적인 감수성과 <원령공주>의 ‘살아라!’라는 정언명령이 프랜시스 버넷의 동화 <비밀의 화원>(<마루 밑 아리에티>에서 쇼우는 침대에 누워 이 책을 읽고 있다)풍 상냥한 고딕 동화와 어떻게 결합하는가의 화학작용이다. 인간의 풍요로운 물질세계에선 작은 그 무엇 하나가 없어지더라도 크게 문제될 게 없다. 그렇기 때문에 소인들은 물건을 가져가는 행위를 ‘빌린다’라고 표현하고, 이를 알아챈 인간은 ‘작은 도둑들’이라고 부른다. 이 갈등은 마지막에 이르러 어떤 대가도 원하지 않은 채 상대방에게 정말 필요한 것을, 혹은 내게 정말 소중했던 것을 상대방에게 건네는 ‘선물’의 형태로 마무리된다. 그리고 각설탕과 빨래집게로 대표되는 그 ‘선물’은 서로에게 궁극적으로 ‘최선을 다해 살아남는다’라는 희망의 메시지로 남는다. 미야자키 하야오가 직접 연출을 맡지 않았지만, 그의 존재감이 <마루 밑 아리에티> 곳곳에서 느껴지는 신기한 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