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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신기자클럽] <김복남 살인 사건의 전말>은 최고다

오만한 내 비평을 읽는 독자 친구들에게 이 영화를 추천한다

<김복남 살인 사건의 전말>

조금의 오만함도 없이 비평가가 될 수 있을까? 주위 사람보다 조금이라도 내 의견이 뛰어나다는 확신과 일말의 자존심이 없다면 그런 사람이 쓰는 영화평은 지루해지게 마련이다. “<김복남 살인 사건의 전말>은 좋은 영화다. 최소한 내가 받은 인상은 그렇다. 아마 다른 이들은 동의하지 않을지 모르지만, 좋지 않은 점을 찾을 수 없었다”라는 식의 리뷰라면 나는 절대로 읽고 싶지 않을 거다.

영화비평은 자기 확신을 필요로 하며 자기 확신이 없는 비평은 무용지물이다. 확신이 있는 비평가는 동료보다 자신의 주관적 의견이 가치있을 뿐만 아니라 ‘객관적 진실’에도 더 가깝다고 주장한다. 이런 유의 비평을 읽고 있으면 <터미네이터>는 별 세개, <타이타닉>은 별 두개라고 정해놓은 책이 이미 저 위 하늘나라에 있는 듯한 인상을 받는다.

비평가의 관점에서 보자면 이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그러나 영화비평가들의 이런 태도는 영화관람에 관련된 여러 복잡하고 불확정적인 요소들을 감추고 있다. 비평가들은 자신의 평가에 영향을 미치는 지극히 개인적인 기대, 취향과 통찰력을 통해 영화를 본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하지 않을까? 자신의 나이와 연륜이 특정 영화에 대한 반응을 좌우하며, 만약 같은 영화를 20년 뒤에 본다면 다르게 생각하지 않을까? 때로 영화를 보는 날의 컨디션이 어떠냐, 가령 피곤하다든지 평소보다 마음이 급하다든지에 따라 다른 평가가 나올 수도 있다. 또 아주 열렬한 반응을 보이는 관객과 영화를 보면 영화에 대해 다르게 반응하게 될 것이다.

어떤 장르의 영화비평을 쓰느냐에 따라 어떤 비평가들은 이런 요소를 언급하기도 하고 무시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시골에서 자랐기 때문에 <김복남 살인 사건의 전말>이 더 좋게 느껴진다거나 하는 사실을 인정하는 편이 좀더 솔직하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이런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 비평에 별로 도움이 안되기도 한다.

결국 이런 다양한 영화비평들에 특정한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독자의 몫이다. 영화에 대한 객관적 미학이 존재한다면 의견이 정확한 소수의 ‘정통한’ 비평가를 찾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진실을 찾고자 영화평을 뒤져보는 독자들은 고도로 지적인 영화비평가들이 같은 영화에 대해 완전히 대립된 의견을 내놓는 것을 보고 대개 혼란스러워하거나 절망하게 된다. 영화비평가와 독자 사이의 관계는 선생님과 학생의 관계라기보다는 동반자의 관계라고 생각해야 할 것 같다. 영화를 같이 볼 사람을 고르듯, 그들의 의견을 듣고 싶은 비평가를 골라야 할 것이다. 당신이 고른 영화평론가 친구는, 오만한 착각 속에 빠져 다소 비합리적일 수도 있으나 같이 영화를 보기에는 가장 재미있고 최고인 사람들이어야 할 것이다.

아, 그래서 말인데… <김복남 살인 사건의 전말>은 올해 최고의 영화다!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사람은 모두 멍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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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 이서지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