롱아일랜드 교외, 중산층 가족의 위태로운 삶을 그린 <라임라이프>는 리안 감독의 영화 <아이스 스톰>에서 묘사한 위기의 가족과 마치 형제 같은 영화다. 긴장도는 덜하지만 확실히 교외지역에 사는 중산층의 위기를 그린 재활용 영화로 볼 때 손색이 없다.
내성적인 소년 스캇(로리 컬킨)의 가장 큰 고민은 어린 시절부터 알고 지낸 이웃집 친구 아드리아나(에마 로버츠)에 대한 짝사랑을 고백하지 못하는 정도다. 그런데 집안이 그를 사춘기적 감수성에 빠져들게 내버려두지 않는다. 눈치를 보니 아빠 미키(알렉 볼드윈)는 아드리아나의 엄마 멜리사(신시아 닉슨)와 바람을 피우고 있고, 그들 관계로 인해 엄마 브랜다(질 헤네시) 역시 상처받고 있다. 휴가 나온 형 지미(키에라 컬킨)는 이 일로 아버지와 감정의 골이 깊어진다. 라임병에 걸린 아드리아나의 아빠 찰리(티모시 허튼)도 아내의 부정을 눈치챈다.
<라임라이프>에서 가족의 와해를 바라보는 주체는 15살 난 소년 스캇과 소녀 아드리아나다. 어른들이 부적절한 방법으로 중년의 고충을 토로하는 동안, 아이들은 여과없이 그 진창 속에 노출되는 식이다. 아직 순진한 스캇이 어른들의 배신을 충격으로 받아들인다면, 연상의 남자에게 매혹되는 조금 성숙한 소녀 아드리아는 냉소적으로 자신을 감싸안는 방식이다. 어떤 형태건 그들에게 가혹한 방식임에 틀림없다. 영화는 아이들의 얼굴을 자주 클로즈업하는 방식으로 상처난 영혼에 적극적으로 다가간다. 스캇의 긴 속눈썹으로 흘러내리는 클로즈업된 눈물이 전체 심경을 대변하는 것처럼 말이다.
감독 데릭 마티니는 동생 스티븐 마티니와 함께 실제 유년기의 경험을 토대로 <라임라이프>의 극본을 집필했다. 현재를 배경으로 하지만, 영화는 그래서 그들이 유년을 보낸 1970년대 분위기에 더 가깝다. 인물들의 빈티지한 의상에서부터 인디 록 밴드로 활동하는 스티븐 마티니가 참여한 영화음악도 주크박스에서 나올 법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희귀병인 라임병이 영화의 적극적 소재가 되지는 않는다. 오히려 영화에서 쓰이는 용도는 은유에 가깝다. “엉덩이에 난 종기만큼이나 작은 사이즈의 벌레가 너의 삶을 통째로 흔들어놓다니 놀랍지 않냐”라는 영화 속 대사는, 작은 균열로 두 가족에 닥친 통째의 위기를 말해준다. 라임병에 걸려 육체적, 정신적으로 무력해진 채 지하실에 몸을 숨겨버린 찰리는 이들 절망의 시각화다. 영화 속에 자주 등장하는 깜찍한 피겨 모델하우스와 사람이 가짜인 반면, 어두운 지하실이 진짜 현실이 되는 셈이다. 알렉 볼드윈, 신시아 닉슨, 티모시 허튼 등 중견 배우들의 연기를 비롯해 매컬리 컬킨의 동생(로리 컬킨)으로, 줄리아 로버츠의 조카(에마 로버츠)로 유명세를 탄 신예 배우도 제 몫을 톡톡히 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