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했다?
박재범이 변했다고 생각했다. “이런저런 일 때문에 신문에 너무 많이 나와서” 잔뜩 웅크리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사실 그렇지 않겠는가. 한국 비하 발언 논란으로 도망치듯 미국으로 떠났고, 몸담고 있던 아이돌그룹 2PM에서도 영구 탈퇴했으니 예전처럼 환하게 웃을 수만은 없었을 거다. “짧은 시간에 너무 많은 일들이 일어났어요.” 그리고 올해 6월, 박재범은 한국으로 돌아왔다. “한국에서 활동해야겠다는 결심은 안 했어요. 팬들이 절 많이 보고 싶어 했고, 저 역시 팬들이 보고 싶어서 유튜브에 춤과 노래 동영상을 계속 올린 거예요. 또 친구들이랑 영화 찍을 수 있는 좋은 기회가 생겨서 한국에 온 거고요. 이렇게 인터뷰를 많이 하게 될 줄도 몰랐어요.” 박재범은 두달 남짓 동안 의류 브랜드 모델로 발탁돼 사진을 찍었고, 다른 가수의 음반에도 참여했고, <믿어줄래> <베스티> 등 자신의 신곡도 발표했고, 장애인체육홍보대사에도 위촉됐고, 영화까지 찍었다. 새 소속사와 계약도 맺었다. “어떻게 보면 바보 같지만, 흘러가는 대로 가는 거예요.”
지난해 9월, 가족이 살고 있는 미국으로 돌아간 뒤 언론에 지속적으로 노출된 그의 모습은 솔직히 안쓰러웠다. 그러나 예전보다 조금 덜 웃고, 조금 더 위축된 것 같다는 말에 그는 “별로 변하지 않았다”고 답했다. “예전엔 버라이어티 쇼에 많이 나왔는데 최근엔 TV출연을 많이 안 해서 그런 걸 거예요. 기침이 계속 나긴 하지만 컨디션도 적당해요. 딱히 좋지도 않고 그렇게 나쁘지도 않아요.” 박재범은 영화 <하이프네이션 3D> 촬영과 그가 직접 부른 <하이프네이션 3D> O.S.T <Demon> 뮤직비디오 촬영을 마무리 짓고, 인터뷰 이틀 뒤 미국으로 떠났다. “밤샘 촬영에 예전보다 체력이 좀 달리는 것을 느꼈지만 영화 마무리는 잘했어요.” 그는 자신의 첫 영화에 어느 정도 만족해하는 눈치였다. 아니, 무사히 마무리 지을 수 있었다는 데 만족해하는 눈치였다. 아쉽게도 <하이프네이션 3D>은 내년 여름 개봉한다. 그의 연기는 1년을 기다려야 확인할 수 있다.
아직도 춤추는 소년
<하이프네이션 3D>은 한·미 합작 3D 댄스영화다. 박재범이 맡은 역은 다크니스. 다크니스는 한국의 비보이팀 카오스 크루의 리더이자 어린 나이에 부모님을 잃고 갱단 보스인 새미 카타(캐리 히로유키 다카와) 손에서 자란 인물이다. “영화 찍을 땐 제가 두 시간 다 나올 것 같았어요. 그런데 실제 출연 분량은 많지 않을 것 같아요. 촬영은 2주일 정도 했어요.” 큰 배역은 아니라고 해도 영화 출연을 결정하는 데는 적잖은 고민이 있었을 거다. “처음엔 안 하려고 했어요. 미국에서 같이 활동하는 비보이팀 AOM과 함께 찍으면 찍겠다고 해서 출연하게 된 거예요. 게다가 춤영화잖아요. <스텝 업> 같은 영화 보면서 춤영화 찍으면 재밌겠다는 생각 했었거든요.”
다크니스는 악역이다. 그는 연기 자체가 쉽지 않은 것도 있었지만 악역이라 캐릭터에 몰입하기가 더 어려웠다고 한다. “‘여기선 이렇게 연기하면 되겠네’ 싶은데 연기하고 나서 모니터 보면 생각대로 연기가 잘 안 나왔어요. 또 ‘난 다크니스다, 난 진짜 나쁘고 못된 사람이다, AOM도 진짜 싫다’(AOM은 영화에서 그와 대결해야 하는 상대편 비보이팀으로 출연한다)고 생각하려 했는데, 그런 감정에 푹 빠지기가 힘들었어요.” 그러나 코미디 연기라면 잘할 수 있을 것 같다고 한다. “어릴 때부터 웃긴 시트콤만 봤어요. 진짜 웃기게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의 유연한 몸과 변화무쌍한 얼굴을 보고 있으면 코미디 연기도 꽤 잘 어울릴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박재범은 무표정한 표정을 짓고 있다가 일순간 아기처럼 환하게 웃곤 했는데, 그 표정 변화가 참 신기했다. 표정이 변할 때마다 주변의 분위기까지 확 바뀌었다. 그 표정, 그 마스크- 잘생겼다와 귀엽다라는 단어로는 표현할 수 없는 마스크는 배우로서 큰 장점이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사랑을 퍼주는 남자
박재범은 어찌 보면 자체 발광하는 스타 같고, 어찌 보면 한없이 평범한 청년 같다. “전 아직도 제가 연예인이라고, 톱이라고 생각 안 해요.” 그가 2PM 활동을 접고 미국에서 생활할 때 타이어 가게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던 것이 그에게는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그는 또 “(미국에 있으면서) 난 이제 뭐할까, 내 미래에 대해 생각을 많이 했어요. 그런데 걱정은 안 했어요. 솔직히 가수 못한다고 죽는 거 아니잖아요. 꿈이 좌절됐다고 생각하지 않았어요. 원래 꿈도 가수가 아니었어요. 랩이랑 춤은 그냥 재밌어서 하는 거예요.” 어렸을 때의 꿈은 동물을 연구하는 거라고 했다. 그러다 춤추고 랩하는 걸 알게 된 어머니가 오디션을 보는 게 어떻겠느냐고 했다. 고등학생 때 그는 한국으로 건너왔다. 한국에 오면서 처음엔 ‘성공’에 대한 욕심도 가졌다. “성공해서 부모님이나 친구들을 도와주고 싶었어요. 그런 생각으로 한국에 왔어요. 지금은 부모님도 저를 자랑스러워하시고, 친구들 데리고 함께 다닐 수 있어서 좋아요.”
박재범은 인터뷰를 할 때마다 부모님 얘기와 친구들, 팬들 얘기를 자주 입에 담았다. 사랑하는 사람들 마음을 아프게 해 죄송하고, 그 사랑에 보답하겠다는 얘기들. “저는 정이 깊어요. 정 들면 정 떼기가 힘들어요. 그래서 한번 친해지면 그 관계가 오래 가요. 모르겠어요, 왜 그런지. 그냥 내 주위 사람들에게 잘하고 싶고, 도와주고 싶어요.” 박재범은 낯을 많이 가리지만 소통을 가로막는 벽이 무너지면 아낌없이 사랑을 퍼주는 타입이다. 사랑받는 데 익숙한 사람은 사랑을 주는 데도 아낌이 없다. 가수로, 배우로, 여러 모습으로 그는 그 사랑에 보답할 거다. 특별한 계획 없이, 흘러가는 대로 가볼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