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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명나게 내 얘기 함 들어보소
장영엽 사진 백종헌 2010-08-26

젊고 현대적인 뮤지컬로 재탄생하는 <서편제>

뮤지컬 <서편제>

8월14일~11월7일(월 쉼) 두산아트센터 연강홀 연출 이지나 출연 이자람, 차지연, 민은경, 서범석, 홍경수, JK 김동욱, 임태경, 김태훈

*줄거리* 유명 로커로 반평생을 살아온 동호는 노년이 되어 아들 해금과 함께 사랑했던 누이 송화를 찾아 헤맨다. 그는 전남 보성에서 눈이 먼 송화를 만나고, 집을 떠나야만 했던 과거를 회상한다. *관전포인트 : 서양음악과 판소리. 물과 기름의 관계라는 이 두 종류의 음악이 한 뮤지컬 안에서 어떻게 녹아들지가 궁금하다.

“내가 하고 싶은 소리가 있어. 내가 하고 싶은 소리가 있다구!” “그래? 그럼 가. 사람은 지가 하고 싶은 거 하면서 살아야지. 가서 니 소리 찾아!” 뮤지컬 <서편제>의 연습실에 들어서자마자 두 여자가 티격태격하는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한 사람은 몸담던 보금자리를 떠나려 하고, 남은 사람은 원망을 담아 냉기 어린 말을 내뱉는 중이다. 소설이나 영화를 떠올려볼 때, 이건 분명 누이 송화와 그녀의 이복 남동생 동호가 나눌 법한 얘기인데 여배우 두명이 그 역할을 채우고 있으니 어딘가 낯설다. “오늘 동호 역을 맡은 배우분들이 못 오세요. 그래서 송화 역에 더블 캐스팅된 차지연씨가 민은경씨를 도와 대신 동호 대사를 말씀하시는 거고요.”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고 있으려니 <서편제>의 홍보팀장이 재빨리 언질을 준다. 그런데, 그 말을 들으니 더 아리송해졌다. 지금 눈앞에 서 있는 두 여배우가 모두 송화라고? 한쪽은 아담하고 다부지며, 한쪽은 길고 시원시원한 인상이라 도무지 공통점을 찾을 수가 없다. “죽겠어요 아주. 판소리를 하면서 뮤지컬 노래까지 소화할 수 있는 배우는 아주 드물어요. 그렇기 때문에 어떤 이미지적인 캐스팅은 할 수가 없었고요, 둘 다 할 수 있는 배우를 중심으로 캐스팅하니 세명 다 개성이 너무 다른 거예요. 뮤지컬 세편을 만드는 느낌이에요.” 이지나 연출가의 하소연 섞인 설명을 들으니 그제야 이해가 된다. 연습장면으로만 미루어 보아도 뮤지컬 <서편제>의 재미는 극의 핵심 인물인 송화 역의, 판이하게 다른 개성을 가진 세 여배우를 비교하는 데 있는 듯하다. 연출가의 귀띔에 따르면 “이자람씨는 타고난 천재의 느낌, 차지연씨는 소리 때문에 여자이기를 포기한 비극성 짙은 인물의 느낌, 민은경씨는 반항적이면서도 강단있는 예술가의 느낌”으로 송화를 연기한다고 한다. 한 무대에 결코 함께 서지 못할 세명이기에 연습으로나마 두 송화- 차지연, 민은경- 의 개성을 비교 관찰하는 것이 재미있다.

송화 역의 이자람·차지연·민은경, 3인3색

하지만 8월5일의 연습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건 안무다. 어디선가 트레이닝복을 입은 한 무리의 배우들이 나오더니 가볍게 스트레칭을 시작한다. 음악이 나오자 점처럼 흩어져 있던 이들의 목소리와 동작이 하나로 뭉치는 순간이 온다. “소리, 소리, 소리를 들려줘/오금저린 춘향가/울고웃는 심청가/시원하게 적벽가/재미지게 수궁가.” 몸짓과 자리를 바꿔가며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배우들을 보고 있으니 지금의 안무를 완성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시행착오가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안무 선생님의 눈에는 이것 또한 완성이 아니다. “아직까지 순서를 못 외우는 분들이 보이는 것 같은데, 그러면 자리를 바꿀 수밖에 없어요.” 불안한 기색이 얼굴들에 잠시 스치는 것이 보였으나, 지금은 그보다도 당장의 연습이 더 중요하다.

뮤지컬 <서편제>의 연습을 관전하며 느낀 것은, 짐작보다 훨씬 젊고 현대적인 <서편제>를 만나볼 수 있겠다는 기대였다. 이은미의 <애인있어요>, 김범수의 <보고 싶다> 등을 작곡한 윤일상이 참여한 음악들은 당장 O.S.T로 내놓아도 손색이 없을 만큼 현대적이고 깔끔했다. 동호 캐릭터를 아버지와 판소리에 대항해 로커의 길을 걷는 인물로 재창조한 것 또한 이 작품이 뮤지컬임을 고려했을 때 적절한 각색으로 보였다. “2010년의 <서편제>란 참 고리타분하고 지루하다, 낡은 전통의 느낌이 강하다는 말들도 들려오는데, 이 바닥에 버티고 있는 스탭들이 그런 작품을 만들 사람들은 절대 아니거든요. 아마 판소리에 조금의 관심도 없다는 분도, 뮤지컬 자체로 신명나게 보실 수 있을 겁니다.”(이지나) 그 노력의 결과는 8월14일에 확인해볼 수 있다.

아버지 유봉의 장례식 장면을 연습하는 유봉역의 JK김동욱과 송화역의 차지연(왼쪽부터)

특명: 귀를 즐겁게 하라

소설과 영화와의 차이는

“소설이 상상력, 영화가 시각을 자극해줬다면, 뮤지컬은 귀가 중요한 작품이 될 겁니다.” 원체 유명한 소설과 영화와의 차이를 묻자, 이지나 연출가는 이렇게 대답했다. 현장에서 만난 연출가와 배우들이 입을 모아 얘기하는 뮤지컬 <서편제>만의 매력은 ‘음악’이다. 소리꾼이 주인공인 작품인 만큼, 그 소리를 실제로 무대에서 구현한다는 것에 큰 의의가 있다는 얘기다. 그렇기 때문에 <서편제>에서는 그 어떤 뮤지컬보다도 ‘소리꾼’의 역할이 부각될 예정이다. 먼저 송화 역을 맡은 세 여배우는 모두 판소리를 전공했거나 국악을 배운 경력이 있다. 젊은 국악인을 얘기할 때 빠지지 않고 언급되는 이자람은 판소리극 <사천가>로 2010 폴란드 콘탁국제연극제에서 최고 여배우상을 수상했다. 차지연은 고법북으로 인간 문화재에 지정된 박오용을 외할아버지로 둔 국악인 집안 출신이며, 그녀 자신도 국악 타악기를 전공한 경력이 있다. 민은경 역시 판소리를 전공해 창극단에서 활동하던 경력이 있으며 뮤지컬 출연은 처음이다.

그렇다고 국악이 <서편제> 음악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아니다. 전체 30여곡 중 국악의 비중은 10곡 정도. “‘판소리 뮤지컬’이 아니라, 작품의 소재와 주제가 우리 소리일 뿐”이라는 것이 제작진의 당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청준 작가의 원작 속 송화의 소리 모티브는 최대한 작품에 반영될 예정이다. 뮤지컬 음악이 <서편제>의 기본 정서를 형성하면, 그 절정을 송화의 판소리가 메워주는 느낌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