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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진, 유재명] 연기만 하는 OEM은 이제 그만
김성훈 사진 최성열 2010-08-18

<라스트 에어벤더>의 원작 애니메이션 <아바타: 아앙의 전설>을 만든 김상진, 유재명 감독

왼쪽부터 김상진, 유재명감독

모르고 지나칠 뻔했다. M. 나이트 샤말란 감독이 만든 여름 블록버스터 <라스트 에어벤더>의 원작이 애니메이션 <아바타: 아앙의 전설>(이하 <아바타>)임을 말하려는 게 아니다. <아바타>를 만든 사람이 두명의 한국인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는가. 김상진, 유재명 감독이 바로 그들이다. <아바타>는 물, 불, 흙, 바람 등 네개의 원소로 이루어진 아바타 세상에서 불의 제국이 반란을 일으키면서 시작되는 이야기다. 그때 네 원소를 모두 다룰 줄 아는 주인공 아앙이 100년 만에 잠에서 깨어나 불의 제국에 맞선다. 박진감 넘치는 액션과 탄탄한 스토리, 그리고 개성있는 캐릭터 덕분에 <아바타>는 지난 2004년부터 2007년까지 미국 <니켈로디언>에서 방영되면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덕분에 김상진 감독은 지난 2007년 에미상 수상식에서 애니메이션 부문의 개인 업적상을, 유재명 감독은 같은 해 열린 애니 어워즈에서 감독상을 수상했다. “밝고 유머가 있는 작품을 하고 싶다”는 김상진 감독과 “배우 송강호처럼 어떤 이야기든 자연스럽게 표현하고 싶다”는 유재명 감독을 만났다.

-<아바타>는 어떻게 맡게 된 건가. =유재명 지난 2003년 <아바타>의 각본을 쓴 브라이언 코니츠코와 마이클 단테 디마르티노가 함께할 애니메이션팀을 구하고 있었다. 그때 그들이 내가 연출로 참여한 <원더풀 데이즈>(2003)를 인상적으로 보고 함께하자고 하더라. 대부분 미국 애니메이션 작가들은 픽사나 드림웍스 같은 회사에 들어가 회사 프로젝트를 작업하는데, 이들은 자기 작품을 만들고 싶어 했다. 그래서 파일럿 프로그램을 만들어 미국 어린이전문엔터테인먼트 채널인 <니켈로디언>에 피칭을 했다. 다행히 반응이 좋았고 시즌1인 ‘물’편을 만들게 됐다.

-<아바타> 제작은 하청 형태(OEM: Original Equipment Manufacture), 그러니까 원작자의 요구대로 만들어주는 방식이 아니라고 들었다. =김상진 연기로 비유하면 우리는 배우다. 그동안 감독(원작자)이 지시하는 대로 연기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게 하청 형태다. <아바타>의 경우 브라이언이 써놓은 이야기 안에서 마음껏 그림으로 표현할 수 있었다. 스토리보드도 애니메이터들이 함부로 건드릴 수 없는 영역인데 브라이언에게 (스토리보드의) 수정을 요구하면 모두 들어주더라. 국내 애니메이션 작업에서는 흔치 않은 풍경이었다. 서로를 전적으로 믿어야 가능한 일이다.

-<아바타>는 미국에서 큰 인기를 끌었다. =유재명 지난 2004년 11월, <니켈로디언>에서 매주 일요일 오후에 방영했다. 방영 초기 반응은 ‘그럭저럭’이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7편이 14편으로, 14편이 지금의 3부작(물, 흙, 불)으로 총 61편으로 늘었다. 한국도 그렇지만 미국은 반응이 좋지 않으면 바로 퇴출된다. <아바타>는 61편이나 방송할 정도로 나름 인기를 끌었다. 이후 EBS에서 방영됐다.

-작품의 어떤 면이 미국 어린이들을 사로잡았다고 생각하나. =김상진 미국 애니메이션은 스토리가 이어지지 않고 매편 다른 스토리가 벌어진다. <스폰지밥>이나 <심슨가족> 시리즈처럼 말이다. <아바타>의 경우 이야기가 계속 연결된다. 한편 보면 다음 편이 기다려지고. (웃음) 또, 방영 당시 미국 내에서 동양 문화에 대한 호기심이 많았다. 애초에 의도한 건 아니나 쿵후에 기반한 액션, 스님의 외양을 한 주인공 아앙 등 동양적인 색채가 시대의 흐름에 잘 맞았다. 운이 많이 따른 것 같다.

-파라마운트사로부터 <아바타>의 영화화 제의를 받은 것은 언제인가. =유재명 2007년, 시즌3인 ‘불’편의 중간 분량쯤 방영하고 있을 때였다. 영화화 결정이 확정되자 브라이언과 마이클이 한국에 와서 “영화로 만들자고 할 줄 알았다”며 좋아했던 기억이 난다. 파라마운트사가 <아바타>에 주목한 것은 이야기도 이야기지만 엄청난 수의 원작 팬들이다. 미국은 오리지널리티(창작물)보다 검증된 이야기를 선호한다. 안전하기 때문이다.

-현재 영화 <라스트 에어벤더>의 로튼토마토(영화정보 사이트(http://www.rottentomatoes.com/)로 개봉영화의 신선도를 평가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지수가 높을수록 반응이 좋은 작품이라고 보면 된다) 지수가 8%인 건 알고 있나. =유재명 이 이야기의 감독으로 M. 나이트 샤말란을 선택한 것은 솔직히 말해 큰 실수다. 영화를 본 <아바타>의 팬들은 “원작의 정통성을 이어줬으면 했다”면서 “(영화가)안타깝다, 아쉽다”는 반응이 많았다. 브라이언의 반응 역시 마찬가지였다. 촬영 당시 현장을 지켜본 그는 “의외로 비주얼이 괜찮을 것 같다”고 내게 이메일을 보내왔다. 시사회를 보고 나서는 “전체적인 흐름이 원하는 만큼 나오지 않았다”고 아쉬워했다.

-<아바타>는 물, 흙, 불, 바람, 네 원소에 관한 이야기인데, ‘바람’편 없이 3부작으로 끝났다. =김상진 팬들 사이에서 ‘바람’편을 왜 만들지 않냐고 말들이 많았다. 정확히 <아바타>는 3부작으로 종결됐다. 브라이언의 판단이었다. 현재 하고 있는 작업 역시 브라이언이 각본을 쓴 <코라의 전설>이라는 애니메이션이다. <아바타>의 70년 뒤 이야기다. 아바타 세상 사람들이 전부 죽고 아앙의 아들 코라만 살아남아 모험을 하는 내용이다. 액션은 물론이고 유머, 멜로 등 다양한 장르를 두루 갖춘 12부작이다. <아바타> 때는 미국쪽에서 콘티를 그렸는데, 이번에는 콘티와 메인 캐릭터를 포함해 애니메이션의 전 공정을 우리가 맡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