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에 살지 않는 사람들은 나 같은 로마 사람을 시기한다. 좋은 영화도 많이 보고, 감독과의 대화에 직접 참여할 수 있고, 또 우연히 친구들도 만나면서 로마의 여름밤을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이탈리아의 거장 난니 모레티가 개최하는 신인감독 초대전 빔비 벨리(Bimbi Belli)에 온 관객 마리아가 하는 말이다.
로마의 여름밤. 물을 사랑하는 로마 사람들은 로마를 관통하는 테베레 강변에 상점을 차리고 관광객을 불러들인다. 상점을 보러 온 사람과 보고 나가는 사람 사이의 혼잡함에서 두 발자국만 벗어나면 이탈리아영화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조용한 혼돈을 빚는 누오보사케르 영화관이 있다. <조용한 혼돈>에 출연하는 영화감독 난니 모레티는 여름이면 자신의 영화관인 누오보사케르에서 빔비 벨리를 연다. 예쁜 아이들이라는 뜻의 ‘빔비 벨리’는 2002년 난니 모레티가 이탈리아 젊은 감독들의 영화를 초대하는 행사로 시작했다. 올해로 6회를 맞이한 빔비 벨리는 7월12일부터 22일까지 11일 동안 9편의 장편영화와 2편의 다큐멘터리영화를 상영했다. 인기를 모았던 작품들은 로코 파팔레오의 < Basilicata Coast to Coast >, 조반니 피페르노의 < Cimap! Cento Italiani Matti A Pechino >, 클라우디오 노체의 < Good Morning, Aman >, 발레리오 미엘리의 < Dieci Inverni >, 티차 코비와 라이너 프리멜 감독의 < La Pivellina > 등이다.
하루 한편 상영하는 빔비 벨리는 마지막 날 관객으로 구성된 40명의 심사위원이 최우수 남녀 배우, 최우수 작품, 가장 대담한 영화상을 수상한다. 올해 360석 규모의 누오보사케르 야외극장에 모인 관객은 마지막 날 상영된 <초보자>(La Pivellina)에 빔비 벨리 역사상 처음으로 최고 여배우상, 최고 영화상, 최고 대담상을 아낌없이 안겨줬다.
난니 모레티 감독은 빔비 벨리를 개최하는 이유가 “젊은 감독들과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고 관객에게 영화를 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싶어서”라고 말한다. 데뷔작을 상영할 기회도 갖지 못하는 신인들에게 관객을 만날 수 있는 기회를 안겨주고 싶다는 이야기다. 난니 모레티 덕분에 올해도 로마 사람들은 일반 상영관에 걸리지 않은 영화를 축제처럼 즐겼다. 거장이 자신의 이웃들에게 보내는 최고의 선물이 아닐까.
우연인가, 설정인가
난니 모레티, <초보자>의 티차 코비 감독에게 묻다
난니 모레티는 언제나 빔비 벨리에 참여한 감독과 공개 대담을 한다. 난니 모레티는 평범한 질문으로 대담을 시작하지만 감독의 대답에 따라 꼬리에 꼬리를 문 질문이 이어진다. 질문은 허점을 찔러 통쾌하고, 아이처럼 천연덕스럽다. <초보자>는 티차 코비와 라이너 프리멜 감독이 공동으로 만든 다큐멘터리다. 서커스를 직업으로 삼고 살아가는 마을에 어느 날 엄마에게 버려진 아이가 나타나면서 일어나는 일들을 카메라는 그저 조용히 따라간다.
난니 모레티 영화를 만든 계기가 뭔가. →티차 코비 어린 시절, 광장에서 엄마가 화장실을 다녀오는 5분 동안 나는 엄마를 잃은 듯한 두려움에 떨었다. 지금까지 그 감정은 남아 있다. 그걸 영화로 만들어보고 싶었다.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난, 엄마를 잃어버린 아이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새로운 상황과 그에 대처하는 사람들의 다른 시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과정을 보고 싶었다.
난니 모레티 스탭은 몇명이었나. →티차 코비 두명. (관객 폭소)
난니 모레티 잠깐! 중간급 영화를 만드는 데 필요한 사람은 보통 15명에서 20명 정도다. 둘이서 영화를 만들었다는 건 두 감독이 촬영하고 짐 옮기고 조명 설치하고 다 했다는 이야기인데…. →티차 코비 그렇다. 우리는 슈퍼 16mm 카메라로 조명은 거의 쓰지 않고 손과 발을 모두 동원하여 촬영했다.
난니 모레티 영화 속 등장인물들은 전문 배우들인가. →티차 코비 아니다. 우리가 촬영하기를 원하는 사람들이 평소에 사는 모습을 가장 자연스럽게 표현하고 싶었다. 잠깐 나왔던 경찰도 진짜 경찰이다.
난니 모레티 영화를 보며 자신에게 물었다. 이게 우연히 일어난 일인가, 아니면 상황을 설정하고 배우를 동원한 것인가…. 30년 전에는 그 순간 카메라 앞에서 실제로 일어나는 일처럼 보이는 장면을 별로 중요하게 처리하지 않았다. 그런데 요즘, 특히 이 영화에서 그런 장면은 중요한 걸 넘어서 거의 기적처럼 보인다. 영화에서 우연처럼 보인 게 정말 우연인가. →티차 코비 우리는 다큐멘터리를 찍는 사람들이다. 우리가 원하는 건 현실이다. 영화를 찍는 순간 일어나는 모든 일을 중요시한다. 우리가 쓴 20장의 시나리오는 지원금을 요청할 때 외에는 전혀 필요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