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때문에 바티칸이 골머리를 앓는 건 이제 새롭지도 않다. <다빈치 코드>와 속편 <천사와 악마>가 블록버스터급으로 ‘신성모독’을 한 데 이어, 이번엔 여교황의 루머가 속을 썩이고 있다. 독일 감독 손케 보르트만이 연출하고 조한나 워카렉이 출연한 <여교황 조안>은 9세기 여교황이 실제로 존재한다는 루머를 토대로 만들어진 영화다. 영화의 근간이 된 도나 울포크 크로스의 동명 소설에서 저자는 조안이 역사적으로 실재한다는 증거를 내놓고 있다. 영화는 당시 남성에게 억눌려 살던 평범한 여성과 달리 해박한 지식과 배움으로 인해, 전직 교황의 묵인 아래 남자로 변장하고 살아간 조안의 이야기를 극적으로 그리고 있다. 영화는 특히 조안의 애정관계를 조명하고 교황 재임 기간 중 아기를 출산하면서 성난 군중에 의해 찢겨 죽은 비극적 일화를 첨가한다.
여교황 조안의 이야기는 로만 가톨릭 교회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역사학자들도 부정해온 루머지만 조안의 파란만장한 스토리는 1천년을 넘나들며 회자되어왔다. 화제성을 입증하듯, 지난 6월4일 이탈리아에서 개봉한 <여교황 조안>은 블록버스터 <섹스 앤 더 시티2>와 <로빈후드>와 어깨를 나란히 하며 박스오피스 10위권 안에 드는 좋은 성적을 거두었다. 그러나 이탈리아 주교회 발행지인 <아베니레>는 <여교황 조안>을 ‘불쾌한 거짓말’이라며 ‘지극히 편협한 시각’이라고 비난했다. 아직 <다빈치 코드>와 <천사와 악마> 개봉 당시 영화를 공격했던 바티칸 유력지 <오세르바토레 로마노>는 공식 입장을 밝히지 않은 상태다. 조안의 존재를 부정하는 이들은 교황성직 수임식의 한 과정인 ‘의자 시험’(교황으로 선출된 사람은 변기 중간이 뚫린 변좌에 앉아 자신의 생식기를 확인시켜주는 과정을 통과해야 한다)이 있었다는 점 등을 들며, 그녀의 스토리가 전설에 불과함을 설파하고 있다.
여교황 조안의 이야기는 이미 1972년, 영국에서 마이클 앤더슨 감독이 연출하고 잉마르 베리만의 뮤즈인 리브 울만이 연기한 동명의 영화로 발표된 적이 있다. 보르트만 감독의 영화는 1972년 버전의 영화에서 묘사하지 않았던 조안의 스토리를 더 디테일하게 묘사한 작품이다. 독일에서 프리미어 상영됐고, 올해 안에 영국 개봉도 계획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