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암극장은 타이에서 더빙아닌 오리지널 버전으로 영화를 볼 수 있는 몇 안되는 극장 중 하나였다.
대형 개봉관의 시대는 이미 오래전에 사라졌다. 해외에서도 그러한 추세는 다를 바 없다. 타이의 경우, 방콕 시내 한복판인 시암 광장에 3개의 대형 개봉관이 있었다. 스칼라, 리도, 그리고 시암극장이 그것이다. 우리나라로 치면 과거 종로의 서울극장, 단성사, 피카디리극장이 몰려 있던 종로나 부영, 부산, 국도, 제일극장이 몰려 있던 부산의 남포동과 유사한 곳이다. 그런데, 지난 5월19일 유혈시위사태 도중에 시암극장이 불에 타 완전히 사라졌다. 많은 영화인들과 영화팬들이 이를 슬퍼하고 있다. 시암극장이 타이영화의 상징과도 같은 곳이었기 때문이다. 800석 규모의 시암극장은 1966년에 개관했다. 리도는 1968년, 가장 규모가 큰 1천석 규모의 스칼라는 1969년에 개관했다.
이들 세 극장은 멀티플렉스 시대가 도래하기 전까지 영화팬들의 성지와도 같았다. 각기 성격도 달랐다. 스칼라는 주로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를, 시암은 타이영화를 개봉했다. 올해 칸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자 아핏차퐁 위라세타쿤의 <친애하는 당신> <열대병>도 이곳에서 개봉했다. 리도는 1993년에 리모델링을 해서 3개 스크린의 멀티플렉스로 변모하였다. 90년대 이후 시암 광장 인근에 멀티플렉스들이 들어서기 시작한 뒤, 시암극장의 역할은 변화하였다. 타이에서 외화는 더빙하는 경우가 많은데, 오리지널 버전으로 볼 수 있는 몇 안되는 극장 중 하나가 바로 시암이었다. 최근 타이에 수입된 한국영화가 상영되던 곳도 바로 이곳 시암이었다.
나와 시암극장과의 짧은 인연은 2004년 방콕국제영화제에서 비롯됐다. 영자 신문 <더 네이션>이 운영하던 영화제를 관광청이 인수하여 처음으로 개최한 것이 2003년이었다. 당시 영화제 개막식이 열린 곳은 스칼라극장이었다. 그리고, 이듬해인 2004년 시암극장도 방콕국제영화제 상영관으로 지정돼 영화를 상영했다. 2004년에는 이미 부산의 모든 대형 개봉관이 사라진 뒤여서 시암극장에서 영화를 보면서 감회가 새로웠던 기억이 난다. 당시 극장의 전경 사진을 찍어 두지 않았던 것이 새삼 후회가 된다. 하지만, 사실 이번 방화가 아니었어도 시암극장은 곧 사라질 운명이었다. 시암극장 부지의 소유주인 출라랑콘 대학이 이 일대를 재개발할 계획을 세우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방화로 사라져간 시암극장의 운명이 각별하게 느껴지는 것은 비단 나만의 생각은 아닐 것이다.
그래서인지 지금 타이에서는 많은 영화인들이 여러 언론매체에 사라져간 시암극장에 대한 추억을 이야기하고 있다. 44년의 세월 동안 세대를 이어오며 이곳 시암극장에서 잊지 못할 한순간을 간직한 이가 어디 한둘이랴. 타이의 실력있는 제작사 GTH 대표인 비수트 풀보랄락스는 1976년 타이영화 전성기 시절에 시암극장에서 보았던 뮤지컬 코미디 <와이 온라원>을 2005년 방콕국제영화제 기간 중 같은 극장인 시암극장에서 다시 보았던 감회를 이야기하고 있다. 확실히 일반적으로 대형 개봉관은 멀티플렉스의 작은 영화관과 달리 특별한 공간으로 인식되는 것 같다. 나의 경우, 홍콩시청 대극장이 잊지 못할 공간 중 하나이다. 1968년 초등학교 1학년 시절에 보았던, 엄청나게 슬펐던 영화로 기억되는 영화가 있다. 리칭 주연의 <스잔나>라는 홍콩영화이다. 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암에 걸린 스잔나가 무대에서 마지막 공연을 마치고 죽는다. 당시 한국 관객은 이 장면에서 눈물깨나 흘렸었다. 세월이 지나, 1994년 홍콩영화제를 처음 참가하여 홍콩시청 대극장에서 영화를 보면서 왠지 낯이 익은 인테리어에 고개를 갸우뚱한 적이 있다. 그리고 그곳이 바로 <스잔나>의 마지막 장면을 찍은 곳임을 깨달았을 때의 감회란. 홍콩시청 대극장은 1968년 이래, 내가 처음 홍콩영화제를 참가하고 다시 15년여가 흐른 지금까지도 그때 그 모습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매년, 홍콩영화제에 참가할 때마다 시청 대극장이 원형 그대로 보존되고 있는지 확인하곤 한다. 추억을 확인할 수 있는 공간이 아직 남아 있다는 것도 내게는 조그만 행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