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한 심사와 투명한 운영. 대종상영화제가 항상 내걸었던 캐치프레이즈였으나, 결코 잡지 못했던 두 마리 토끼다. 로비 의혹, 심사 결과에 대한 공정성 시비 등 대종상영화제는 2000년대 이후 거의 매회 비난과 논란이 반복됐다. 관객도 매번 들고일어났다. 정녕 시비를 없앨 대안은 없었던 걸까? 논란이 있을 때마다 지적된 문제점은 대종상영화제를 주최하는 영화인협회가 그들만의 시상식으로 영화제를 운영한다는 것이었다. 심사위원 가운데 대다수가 영화인협회 산하단체 회원들이라는 점이 공정성 시비를 낳았고, 그때마다 다양한 심사위원 구성과 엄정한 심사가 요구됐으며, 특정한 영화단체가 아니라 독립된 운영기구의 필요성이 강조됐다. 몇 차례 쇄신안이 발표됐지만, 크게 달라진 건 없었다.
지난 7월8일, 대종상영화제의 또 다른 쇄신안이 발표됐다. 새로운 조직위원회 구성과 심사 시스템의 개선이 골자다. 조직위원장에 김영수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선임됐고, 박종원 한국예술종합학교 총장, 문희 백상재단 이사장, 안성기 전 영화배우협회 이사장 등 영화계 인사를 비롯해 경제계와 법조계, 언론계 인사들이 조직위원으로 위촉됐다. 대종상영화제쪽은 “이전의 조직위원회가 후원회 성격이었다면 앞으로는 행사운영과 심사제도, 예산편성을 검토하고 승인하는 기구로 자리잡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영화제가 무엇보다 중요하게 강조하는 건 역시 심사 시스템의 변화다. 이전에 자체적으로 구성한 심사위원들을 통해 진행하던 예심을 전문 영화인이 아닌 만 18살 이상 일반인을 대상으로 선정한 50인의 예심 심사위원에게 맡겨 후보작을 선정한다는 계획이다. 심사과정에 미칠 수 있는 영화계 내의 이해관계나 인맥의 영향을 차단하려는 시도로 보인다. 이번 심사시스템의 전반적인 기획은 차승재 전 싸이더스FNH 대표가 맡은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영화인총연합회의 강영우 사무총장은 이번 쇄신안을 “자성의 결과물”이라고 말했다. “그동안 대종상영화제의 심사 결과에 문제가 많았다는 건 우리도 알고 있다. 영화인협회에 소속되어 있는 사람들이 심사를 하다보니 팔이 안으로 굽는 경향이 있던 것 같다. 이번에는 총 11명의 심사위원 가운데 영화인협회 관련단체 회원은 영상기술분야에서 딱 1명만 선정될 예정이다. 그외에는 영화학자, 언론계, 외국 비평가, 문화예술계 등 영협과 어떤 관계도 없는 쪽에서 심사위원을 위촉할 계획이다. 확실히 변했다고 봐도 좋다.”
위상 회복을 위한 안간힘으로 보이지만, 미덥지 않게 보는 시선도 있다. 대종상영화제의 개선안 발표가 이전에도 없었던 게 아니기 때문이다. 지난 2001년, 제38회 대종상영화제는 영화인회의와 영화제를 공동주최하면서 개선의 움직임을 보였으나 결국 또다시 심사과정에서 공정성 논란이 불거졌고 이 때문에 영화인회의쪽 상임집행위원 18명이 전원사퇴하는 일이 벌어졌다. 2004년에도 영화인협회를 중심으로 조직되던 기존 집행위원회와 달리 다양한 영화계 인사가 조직위원으로 참여하는 개선안이 발표됐었다.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이 작품상을 받고, <올드보이>의 박찬욱 감독이 감독상을 수상했던 당시 영화제는 다행히 공정성 회복에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지난해 46회 대종상영화제에서 당시 미개봉작이었던 <하늘과 바다>의 주연배우 장나라가 여우주연상 후보에 오르자 또다시 심사편향 논란이 촉발됐다. 과연 이번에는 거듭날 수 있을지, 의심의 눈초리로 지켜보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과연 대종상영화제는 영화제의 바람처럼 공정한 영화제로 변신할 수 있을 것인가. 한국 관객도 미국의 아카데미영화제 같은 축제를 원한다. 지난해 벌어진 논란이 영화제의 위상을 한계점으로 추락시켰으니, 이번 쇄신안은 마지막 기회나 다름없다. 추락하는 영화제에 더이상 달릴 날개는 없을 듯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