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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축구공이 희망을 선사한다 <킥 오프>
이화정 2010-07-07

허름한 공으로 축구를 하는 네팔 어린이들에게 새 축구공이 배달되는 내용의 광고가 있었다. 포스코가 유니세프와 함께 세계 오지의 어린이들에게 축구공을 나눠주는 행사를 내용으로 한 광고로, 작은 축구공이 가난한 아이들에게 희망을 선사할 수 있다는 가슴 먹먹한 감동을 담고 있었다. 이라크 소도시에서 펼쳐지는 축구 경기. 포스코의 광고 코드를 그대로 간직한 듯한 <킥 오프>는 어쩌면 81분의 감동극이 될 뻔했다. 그러나 기업광고의 말끔한 결론이 준 감동의 카테고리에 이 영화를 우겨넣긴 힘들다. <킥 오프>의 무대가 되는 이라크 북부의 난민 집단 거주지 키르쿠크. 전쟁으로 폐허가 되고, 폭탄테러가 일상이 된 이곳의 상황은 생각보다 더 열악하며, 현실은 더 끔찍한 형태이기 때문이다.

마을에 위치한 파손된 스타디움은 전쟁과 가난을 겪는 마을 사람들의 공동의 장소다. 털털거리는 고물차에 잔뜩 물건을 실어 와 즉석 노점상을 벌이는 곳도, 망가진 골대에 염소를 묶어두고 먹이를 주는 곳도, 가난으로 겪게 되는 억울한 일들을 토로하는 곳도 이곳 스타디움이다. 그들에게 언제 또 폭탄이 터질지 모른다는 위험보다 더 절실하게 와닿는 것은 이곳이 하루하루 생을 부지할 일상의 공간이라는 것이다. 늙은 노모와 지뢰로 한쪽 다리를 잃은 어린 남동생과 함께 이곳에서 살아가는 남자, 현실의 무게 때문에 제대로 사랑고백조차 할 수 없는 아수는 이 영화의 주인공이다. 그리고 위험천만한 일상에 노출된 무수한 이라크인 중 하나다.

암울한 현실 속에서 축구의 역할은 의외로 명확하다. 아수는 축구가 마을 사람들이 환호할 수 있는 유일한 즐거움이라는 걸 안다. 그리고 모두가 참여할 수 있는 축구경기를 기획한다. 쿠르드족, 아랍인, 터키인, 아시리아인들이 모두 모인 축구 경기 날, 경쟁을 앞세우려는 사람들에게 그는 ‘축구는 축구일 뿐’이라고 역설한다. 결국 아수가 기획한 축구경기는 민족간의 분쟁으로 인해 피로 얼룩진 역사를 고스란히 보여주는 상징적인 코드다. 샤우캇 아민 코르키 감독은 <킥 오프>를 마치 논픽션 다큐멘터리처럼 찍었다. 변변한 유명 배우나 화려한 특수효과, 시선을 끌 만한 에피소드 하나 없는 무심한 흑백화면이야말로 그가 보여주고 싶은 이곳의 진짜 현실이었는지 모른다. 테러의 위험에 노출된 현장 여건 때문에 참여하려는 스탭은 거의 전무하고, 출연을 결심한 배우가 촬영 전에 포기하고 달아나는 끔찍한 촬영 조건. 촬영팀은 촬영 도중 테러리스트들의 협박 전화까지 감내해야 했다. 영화를 완성하기까지 제작진이 겪은 비화야말로 영화를 뛰어넘는 이곳의 현실이다. 악몽에 가까운 촬영 조건이었다는 감독의 말이 십분 반영된 걸까. 이 영화는 축구공 하나가 감동을 선사한다는 꿈같은 결론을 선사하지 않는다. 섣부른 희망으로 장식되지 않은 날것의 현실, 덕분에 영화의 울림은 생각보다 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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