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무로가 언젠가부터 웹툰에 눈독을 들이기 시작했다. 강풀 원작의 <아파트>나 <순정만화>처럼 스타작가의 지명도에 기댄 경우가 초창기였다면 현재 개봉을 기다리고 있는 윤태호 원작의 <이끼>, 한재림 감독에 의해 만들어질 고영훈 원작의 <트레이스> 등은 좀더 너른 스펙트럼으로 한국영화계가 웹툰을 끌어안은 사례다. 물론 TV드라마로 만들어지는 강도하 원작의 <위대한 캣츠비> 등 그것은 비단 영화로 한정되지 않고 방송과 게임으로도 확장되고 있다. 어쩌면 한동안 붐을 이루던 시기를 지나 얼마간 숨을 고르고 있는 형국처럼 느껴진다. ‘웹툰과 영화의 미래’라는 시선에서 만화연구가 김낙호의 글을 싣고 현재 영화화 준비 중인 몇몇 프로젝트의 사례를 소개한다. 그리고 이미 작업 중인 <트레이스>를 비롯해 현재 많은 영화사들의 ‘입질’이 오가는 유명 웹툰의 작가들을 만나 그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재밌다고 무조건 만들면 대략 낭패
웹툰을 영화로 만드는 것의 매력과 함정
영화, 혹은 드라마가 웹툰에 눈독을 들인 것은 웹툰 장르에서 장편 히트작이 탄생한 것과 거의 동시에 시작되었다. 강풀의 <순정만화>와 그 후속작들이 발표되는 대로 연이어 영화화 계약이 맺어졌고, 강도하의 <위대한 캣츠비>가 드라마로 이어졌다. 원래 일간지 연재에서 시작했지만 웹으로 연재 공간을 옮긴 허영만의 <식객> 역시 온라인으로 옮겨온 이후에도 계속 인기를 모아 영화화가 이루어졌다. 그런데 이제는 붐이 몇년 지속되면서 그간 성공작과 실패작들이 나온 만큼 웹툰의 영화화가 단지 화제작이라고 해서 맹목적으로 달려들 법한 일시적 유행코드가 아니라 좀더 차분하게 견주어보고 장단점을 따져볼 만한 무언가가 되었음을 깨달을 시기가 되었다. 과연 웹툰의 무엇이 영화에 매력적으로 작용할 수 있으며, 무엇이 영화화 과정에서 난점으로 작용하여 결국 괴작으로 귀결되는가. 사실은 괴작도 일정 정도 만들어지는 것이 악취미적 즐거움을 위해 즐거운 일이기는 하지만, 이왕이면 성공적인 웹툰 원작 영화를 위해 생각해볼 만한 몇 가지 요소를 살펴보고자 한다.
스토리보드와 닮은 스크롤 연출
비단 웹툰이라는 하부양식이 아니라도, 만화 일반이 영화화에 대해 지니는 가장 흔히 거론되는 장점은 서사가 시각적으로 전개된다는 것이다. 구체적인 장면들이 직접 눈앞에서 펼쳐지는 것은 물론, 칸은 컷으로 글은 대사로 마치 당장이라도 영상화할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을 준다. 특히 현재 대다수 한국 작가들의 장편 웹툰은 양영순의 <1001(천일야화)> 이래로 칸 단위로 세로 스크롤하는 연출방식이 보편적인데, 종이페이지 만화에서 갈고닦은 칸 연출의 재미가 줄어든 대신 개별 장면의 뚜렷함이 더욱 강조되어 있다. 그런데 이런 식의 제시방법은 영화 사전제작과정에서 제작하는 스토리보드와 무척 닮아 있다. 칸 사이의 상상력과 시선의 이동을 이용하는 칸 연출은 영화로 이식하기 힘든 부분이고 만화의 영화화에서 서사의 질감을 어색하게 만들어놓는 일등공신이지만, 그런 방식의 웹툰이라면 좀더 수월하다. 만화로서는 아쉬운 부분이나 영화로서는 더 매력적으로 느낄 법하다.
나아가 최근의 웹툰 가운데 특히 포털 사이트 연재를 거치는 작품들은 분량 조절의 장점이 있다. 종이만화잡지의 경우 작품의 연재 지속과 중단이 작품 내적 전개논리보다는 인기 여부에 따라서 결정되곤 하여 종종 이야기의 호흡이 이상해지는 경우가 적지 않고, 대형 인기작은 인기 때문에 서사가 망가질 정도까지 줄거리를 억지로 늘리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현재 관행에서 포털 사이트 연재작들은 특정 횟수 또는 기간을 정하여 계약을 하고 있고, 덕분에 좀더 서사의 전체 얼개를 미리 정하고 들어갈 수 있다. 에피소드물은 별반 차이가 나지 않지만, 장편 서사물은 몇회에 어디까지 이야기를 전개할지 사전기획하는 것의 차이가 크다. 특히 2009년의 <에이스 하이> <악연> 등 에피소드식이 아닌 개그물의 경우 장기 연재와 자기 반복으로 망가지지 않은 것이 바로 제때에 완결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TV드라마만큼 제작비가 많이 지출되지 않아 인기에 따른 조기종영 같은 불운한 상황도 아직은 눈에 들어올 만큼 발생하지 않고 있다.
독자들에 의한 스타작가의 탄생
하지만 모든 것을 떠나 현재 웹툰에 영화계가 눈독을 들여야 할 만한 가장 큰 이유는, 웹툰에 대중서사물 창작 역량이 잔뜩 모이고 있기 때문이다. 비교적 저비용으로 혼자 만들 수 있는 시각서사물이라는 요소는 원래 만화 전반의 매력으로 꼽히던 것인데, 웹툰이 주류화되자 더욱 강력해졌다. 장비는 더욱 저렴해졌고, 동업자와 독자들의 평가를 받고 업자에게 발탁되는 공간은 더욱 넓고 활발해졌다. 특히 독자들에게 평가받을 수 있는 공간의 증가는 기존 미학의 기준이나 편집자의 안목으로는 예측하지 못했을 새로운 방식의 스타들을 종종 탄생시키곤 한다. 디시인사이드 카툰 연재 갤러리 특유의 거침없는 게시판 피드백 문화와 재미에 대한 편견없는 집착이 만나서 만들어진 속칭 ‘병맛만화’가 대표적인 사례다. 단순히 저급한 만화가 아니라, 헐렁한 그림과 부조리한 전개 그리고 종종 온갖 기존의 대중문화 코드를 우겨넣음으로써 오로지 유머를 추구하는 방식으로, 영화로 치자면 마치 1980, 90년대 할리우드의 저예산 악취미 영화들을 연상시킨다. 그리고 그쪽을 통해서 피터 잭슨과 샘 레이미 같은 재기발랄한 이들이 등장했듯, ‘병맛만화’ 역시 이말년, 마사토끼 등 더 많은 가능성이 엿보이는 재능있는 작가들이 인기를 모으고 있다. 게다가 커뮤니티와 포털의 솜씨자랑 게시판을 통해서 지명도를 얻은 작가와 작품을 포털 사이트의 만화연재란에서 발탁하는 유기적 흐름 역시 이제는 완전히 정착단계에 이르렀다. 나아가 90년대에 명성을 쌓은 중견 만화작가들 역시 종이잡지의 위축과 함께 속속들이 웹툰으로 장르를 옮기고 있는데, 윤태호의 <이끼>, 이충호의 <이스크라> 같은 선 굵은 작품에서부터 황미나의 <보톡스> 등 순정만화까지 광범위하다. 주류화된 문화적 위치에 걸맞은 수익성이 부족하다는 약점만 제외하자면 웹툰은 현재 창작의 활기가 가장 활발하게 모여들고 있는 대중문화 분야라고 봐도 무방하다. 영화화를 위한 원작 재료 역시 무궁무진한 것은 당연한 일인데 그중에서도 SF와 판타지 분야(<나이트런> <브이> 등)는 이미 독보적이며, 갈수록 일상 드라마(<패밀리맨> 등)쪽도 부각되고 있다.
미디어 이식의 난점에 빠진 실패작들
하지만 이야기의 분량을 대략 들어맞도록 조절할 수 있고 장면들이 이미 그려져 있다고 해서, 웹툰을 영화의 밑그림 취급하는 것은 괴작의 지름길이다. 미디어 이식의 난점을 과소평가하는 함정에 빠지면 지나치게 독자적 노선을 새롭게 만들다가 원작의 매력까지도 버리거나, 만화적 연출을 살리겠다면서 오히려 어정쩡한 작품이 만들어진다. 우선 첫 번째 문제는 만화의 연출이 보기보다 간단하게 이식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만화는 순간적 그림체 변화(예: 갑자기 작고 귀여워진 캐릭터로 유머효과)를 통해서 극적 긴장의 완급을 조절하는 연출이 많은데, 실사영상에서 그것을 따라하겠다며 단순히 과장된 표정을 짓는다면 수습 불가능이다.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만화의 칸 연출은 그 자체로 분절의 리듬감을 담아내는데 영화의 스토리보드는 처음부터 연결된 영상을 전제하기에 비슷한 모습의 악보라고 할지라도 마치 랩과 가곡 같은 차이가 있다는 점이다. 그런 차이를 미리 인식하고 다시 설계하지 않으면 시적인 칸 연출 리듬감이 날아가고 단지 연애담 줄거리만 남은 강풀 원작의 영화 <순정만화>의 실수를 반복하게 될 것이다.
나아가, 특히 웹툰이기 때문에 작품의 열기에 일조한 온라인 소통방식의 효과 역시 영화로 옮길 수 있을 리 만무하다. 한국에서 수많은 TV드라마 주인공들의 생사를 엇갈리게 하는 시청자 전화보다 몇배는 더 강력하게, 웹툰 독자들은 실시간으로 작품에 반응한다. 반응의 배경에는 여러 가지 당대 코드들이 있어서, ‘루리웹’이라는 게임 애호 커뮤니티를 모르고는 한 젊은 여대생의 자아성찰담 <하얀 늑대> 시리즈가 올해 큰 화제를 모은 것을 온전히 이해하기 힘들다. 하지만 동시에 화제를 만들고 키우는 힘은 막강해서, 그런 것을 온전히 이해하지 않고도 대세가 되어 다들 즐기는 것 역시 문제가 없다. 그리고 종종 작가들은 그런 반응을 다시 작품에 반영하고, 그런 관계 속에서 에피소드 방식 작품들은 물론이고 장편 스토리만화 역시 영향을 받는다. 영화로 만들면서 그런 동력이 작용했던 과정을 등한시하고 작품 자체만 바라보면, 당연히 같은 반응을 이끌어낼 수 없다.
혹은 좀더 실무적인 차원에서 생각할 한계들은, 웹툰으로 인기를 끌었다는 것은 그만큼 많은 이들에게 이미 작품의 매력이 특정한 방식으로 뇌리에 자리잡고 있다는 점이다. 웹툰 독자층과 영화가 목표로 하는 관객층이 겹칠 때 굳이 영화로 그 이야기를 다시 봐야 하는 이유를 만들어주지 못하면 곤란하다. 소설 원작의 경우 자신의 머릿속에 있던 상상을 영상으로 옮긴 모습을 보는 것 자체가 새로운 매력이지만, 만화의 경우는 상대적으로 간단한 공략점이 없다. 반면 새로움을 보여준다는 것이 강박이 되거나 혹은 그저 영화인으로서의 자존심이 발동하여, 원작의 매력 포인트를 전부 무시하고 너무 느슨하게 가져오다가 망하기는 더욱 쉽다. 단순히 반전 스릴러물의 결말 누출 같은 차원이 아니다. 일상적 아파트 공간의 소원한 이웃 관계가 매력인 강풀의 웹툰 <아파트>에서 단지 아파트 귀신사건이라는 소재만 남기면 애매한 영화 <아파트>가 되듯 말이다. 혹은 강도하의 <위대한 캣츠비>에서 주인공들의 풍부한 표정, 이야기를 함축한 배경화면, 일상적이면서도 허망한 순간들을 편집해 넣는 칸 연출 등을 빼고 줄거리만 이식해서 드라마를 만든다면 그다지 견고하지 않은 단순한 치정극밖에 남지 않는다.
웹툰을 문화향유 과정으로 이해해야
이런 문제들을 처음부터 제거하기 위해 ‘원 소스 멀티 유즈’, 즉 같은 이야기를 만화와 여러 다른 매체로 펼칠 것을 아예 같이 기획하는 경우도 있는데, 아직 웹툰이 그런 포맷에 적합한 역할을 한 경우는 드물다. <인플루언스> <SETI> 등 광고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영상물과 연계한 시도들이 최근 여러 건 등장하고 있지만, 웹툰이나 영상으로서의 재미보다는 매체 결합의 신기함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다. 또 미국 드라마 <히어로즈>처럼 같은 이야기의 다매체화보다는 하나의 세계관에서 긴밀하게 서로를 보충하여 함께 감상하면 더 재미있도록 하는 접근이 더 전망이 있겠지만, 아직 국내에는 꼽을 만한 사례가 부족한 형편이다.
결국 성공적인 웹툰 원작 영화를 만들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웹툰을 하나의 문화향유 과정으로서 바로 아는 것부터 시작한다. 인기를 끌었다는 사실보다는 어떤 맥락 속에서 인기를 끈 것인지 분석하는 것이 중요하고, 장면이 잘 뽑혀 나왔다는 사실보다는 그 장면들이 영화로 이식될 때 같은 느낌을 줄 수 있을지 판단하는 것이 중요하고, 줄거리가 재미있다는 사실보다는 그 줄거리가 정말 줄거리 자체로서 재미있는 것이며 다시 히트시킬 수 있을 것인가 생각해야 한다. 그럴 준비가 되어 있다면, 뭇 관객과 독자들에게 트라우마로 남게 된 영화판 <다세포 소녀>의 악몽마저도 나름대로 발전을 위한 디딤돌이었다고 기억되게 만들 정말로 멋진 작품들이 나올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