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언컨대 현대 중국 최초의 디바 영화 스타가 출현했다. 그러나 놀랍게도 그녀는 중국어권 영화 세계라는 가상의 경계밖에는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그녀는 현재 스물여덟살인 판빙빙이다. 2010년은 단연 판빙빙의 해라 부를 만하다. 중국 내 스타일 리더인 그녀는 6월호 중국판 <에스콰이어> ‘여성을 위한 특별호’의 표지 인물로 등장했다. 표지 이미지에서 그녀는 우주인 체 게바라 인형 같은 모습을 하고 있다. 그녀의 내면을 보여주는 고화질의 디지털 사진들은 1940년대 미국 <에스콰이어>의 유명한 ‘바가 걸’ 핀업 사진을 본뜬 방식으로 그녀를 여자 엘비스, 브루스 리, 슈퍼맨의 모습으로 보여준다. 2009년 8월호 중국 <에스콰이어>에 그녀는 면도 크림을 턱에 바르고 면도기를 손에 든 채 표지에 등장했다. “내 안에는 남자가 있다”는 말과 함께. 이제 그녀는 다시 돌아와 아이콘으로서 최고의 유명세를 과시하고 있다.
판빙빙의 외모는 남성적인 것과는 거리가 멀다. 산둥 북쪽 지역 출신인 그녀는 여배우로는 조금 큰 키인 168cm의 훤칠한 몸매로 지나간 날들의 구식 스타 같은 황홀한 매력이 흘러넘친다. 유럽에서는 누구도 그녀를 알아보지 못했지만 올해 칸영화제의 레드 카펫을 밟기도 했다. 나는 2009년 6월 상하이영화제에서 그녀가 장쯔이와 함께 개막식 입장을 위해 서 있는 모습을 보았다. 우아하고 자신감 넘치는 판빙빙에 비해 장쯔이는 눈이 반짝이는 신인배우 같았다. 메이크업, 드레스 등 각종 치장이 만들어낸 차이로 장쯔이가 영화 스타라면 판빙빙은 디바처럼 보였다.
그녀가 스크린에 데뷔한 지는 십년이 조금 넘었다. 그녀의 데뷔작은 엄청나게 인기있었던 TV시대극 <황제의 딸>(1998)로 조미, 임심여 같은 여배우들과 함께 조역으로 출연했다. 조미는 그 뒤 장쯔이, 주신, 서정뢰, 이빙빙과 함께 중국 최고 여섯명의 젊은 여배우의 반열에 올랐다. 그때만 해도 어느 누구도 그녀가 그 반열에 오르게 될 줄은, 그리고 넘치는 매력으로 그 반열을 이끄는 배우가 되리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 그녀가 영화계에서 빛을 보는 데는 시간이 좀 걸렸다. 그녀는 2004년 펑샤오강의 코미디 드라마 <셀 폰>에서 주인공의 정부로 주목받았지만 그뿐이었다. 그 이듬해 유진위의 터무니없는 코미디 드라마 <정전대성>에 우주인 공주로 나와 일간에는 그녀가 정말 우주인이라는 농담이 돌기도 했다. 한두해가 지나 유덕화와 함께 액션 시대극 <묵공>에 출연하면서 비로소 배우로서 빛을 본다. 그 이후 그녀는 영화, 광고, 스폰서 관련 제작물 등에 고루 출연하면서 주류 영화, 전문적인 영화(논란이 되었던 <로스트 인 베이징>, 올해 칸 경쟁작인 <중경 블루스>)는 물론, 다른 중국 본토 배우들과 달리 홍콩 상업영화(<퓨처 X캅스>)에도 출연한다.
중국에서는 이름이 같은 다른 여배우 이빙빙과 종종 묶여서 비교되곤 하는데, ‘두명의 빙빙’ 사이의 유명세 겨루기에서는 언제나 판빙빙이 우위였다. 그녀를 훌륭한 여배우라 하기는 어렵지만- 그러나 얼마나 많은 디바들이 훌륭한 여배우였던가?- <로스트 인 베이징>과 지난해 만든 시대극 <맥전>을 보면 그녀의 연기가 점점 좋아지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무엇보다 판빙빙이 스크린에 등장하기만 하면 관객의 시선은 그녀에게 고정된다. 한국에서는 별로 알려지지 않은 탓에 지난해 개봉한 한·중 합작영화 <소피의 연애매뉴얼> 한국판 포스터에는 그녀의 이름조차 나와 있지 않다. 그러나 장쯔이의 상대역으로 나오는 모든 장면에서 그녀는 단연 돋보인다.
그녀는 여성, 남성 관객에게 고루 매력이 있는 듯하다. 지난 중국판 <에스콰이어> 6월호에서 여성 독자를 대상으로 한 “만약 한 사무실에서 같이 일해야 한다면 누구와 일하고 싶은가?”라는 질문에 그녀는 1위를 차지했다. 그러나 어느 디바나 그렇듯 그녀는 쉽게 접근할 수 없는 존재다. 다른 스타들과 달리 그녀의 이름은 언론의 가십에 등장하지 않는다. 매니저와 낭만적인 결별을 한 뒤 어떤 남자와도 공개적으로 사귀고 있지 않다. 그녀의 매력은 몇년 안에 소진해버릴 수도 있고, 또 새롭게 변신할 수도 있다. 그렇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 그녀는 새로운 중국에 등장한 새로운 스타일의 디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