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의 힘은 때때로 예상치 못한 곳에서 발휘된다. 1954년에서 1962년까지, 프랑스의 식민통치에 대항한 알제리민족해방전선(FNL)의 무장독립투쟁을 다룬 1965년작 <알제리 전투>는 그 내용만큼이나 파란만장한 역사를 보유하고 있다. 60년대 프랑스에서 당연히 상영금지됐고, 미국에선 베트남전에 반대하는 급진적 학생들의 필수 교육 교재로 사용됐다. 아르헨티나 군정부는 악명 높은 ESMA 고문센터 군인들에게 이 영화를 보여주며 ‘새로운 전쟁’(즉, 고문)을 치를 준비를 시키곤 했다. 아이러니의 절정은 2003년 미국에서 일어났다. 이라크 침공 직후 미국 국방부에선 사내 직원들을 대상으로 <알제리 전투> 상영회를 열었다. 60년대 알제리와 2000년대 이라크를 비교하고, 테러리스트와 적대적인 시민을 대상으로 어떻게 싸워 이길 것인가를 논의하는 자리였다고 한다.
영국 <가디언>은 <알제리 전투>의 또 다른 ‘쓰임새’에 대해 흥미로운 소식을 전했다. 지난 6월19일 새벽(한국시각)에 열린 영국 대 알제리 월드컵 경기를 앞두고, 알제리 대표팀은 <알제리 전투>를 단체 관람했다고 한다. 이번 상영회는 6월13일 슬로베니아와 경기에서 1 대 0으로 패한 알제리 선수들을 새롭게 독려하기 위해 마련되었다고. 현재 영국 포츠머스FC 소속으로 뛰고 있는 알제리 미드필더 하산 옙다는 “<알제리 전투>를 이번에 처음 봤다. 무척 감동받았고, 우리가 모두 하나라는 느낌을 일깨우기 위해 꼭 필요한 경험이었다”라는 소감을 전했다. 아쉽게도 영국과의 경기에서 알제리는 0 대 0 무승부를 기록했지만, 그날 경기로 인해 영국 대표팀은 ‘최악의 졸전’이라는 비난에 시달렸고 실망한 팬들에게 야유를 보냈던 웨인 루니는 집중포화를 맞기도 했다. 비록 알제리 대표팀은 2010년 월드컵 16강 진출에 실패했지만, 팀의 정신무장에 <알제리 전투>가 지대한 공을 세운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