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영화 사상 가장 급진적이고 선동적인 서사극
알제리 민족해방전선(FNL)의 투쟁사“이름 없는 수 많은 별들이 하늘을 밝힌다”
1954년에서 1962년 사이, 9년간 프랑스 식민통치에 대항한 알제리 민족해방전선(FNL)의 무장독립투쟁과 프랑스군의 정치적 폭력행위 등을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재구성한 영화!
1957년 10월 어느 새벽, 알제리민족해방전선(Font de Lib ration Nationale/FNL) 소속의 나이 든 반군 한 명이 프랑스 부대의 고문을 견디다 못해 마지막 남은 지도자 ‘알리’의 은신처를 누설하고 만다. 은신처를 포위한 프랑스 군은 당장이라도 폭파할 태세이다. 오직 해방을 목표로 투쟁해 온 지도자 알리는 생사의 갈림길에서 상념에 잠긴 채 치열했던 지난 3년을 회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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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엔니오 모리꼬네 마저 반하게 만든 알제리 민중들의 뜨거운 투쟁!more
영화 음악계의 살아있는 전설인 엔니오 모리꼬네가 음악을 맡아 알제리 민중들의 투쟁 의지를 음악적으로 완벽하게 표현해 냈다는 찬사를 받고 있다. 엔니오 모리꼬네는 “이 영화가 정치영화가 아니었다면 음악을 맡지 않았을 것이다”라고 말할 만큼 영화 속에는 알제리 전투의 투쟁의지에 대한 감동을 넘어선 숭고함과 실화의 무게감이 담겨 있다.
2. 세계 영화사에 빛나는 최고의 작품, 국내 최초 필름 공개!
1965년, 제 30회 베니스영화제의 최고작품상인 황금사자상과 국제영화비평가협회상 수상!
1972년, 영국아카데미의 UN상 수상!
영화사 100년, 100편의 영화 추천작 중 한 편!
꼭 봐야 할 영화 100선 중 한 편! 등 제작되어진 1965년 이후로 끊임없이 회자되어온 <알제리 전투>는 단연, 이 시대 최고의 걸작 중 한 편이라고 말할 수 있다.
알제리 민중들의 프랑스 식민통치에 대한 독립투쟁 과정을 사실감 넘치는 다큐멘터리 스타일로 재구성한 <알제리 전투>. 그 동안 탁월한 연출력과 주역 및 단역 배우들의 뛰어난 연기력 때문에 다큐멘터리가 아닌가 착각할 정도라는 평을 받아왔다. 온갖 추측이 난무하며 궁금증을 자아냈던 작품이 국내 최초로 개봉되어 직접 확인할 수 있는 기회를 맞게 된다.
이 영화가 제작되고 전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던 당시, 프랑스 정부는 이 영화의 상영 및 배급을 금지시켰고, 한국 정부 또한 과거 군사정권 하에서 상영이 금지되어 현재까지 국내에 수입되어 필름으로 상영되거나 방영되지 않았다.
3. 역사상 최고의 정치영화!
1954년에서 1962년 사이에 알제리민족해방전선(FNL)이 프랑스 식민통치에 대항했던 실화를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재구성한 영화 <알제리 전투>. 영화의 감독 ‘질로 폰테코르보’와 제작자이자 배우인 ‘야세프 사디’는 실제로 알제리 전투의 일등공신이며 이 영화의 원작 도서의 집필자이다. ‘야세프 사디’는 현재 알제리 국가의 상원의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실존하는 알제리 전투의 지도자 층이 직접 만든 정치영화!
이 영화는 이후, 정치영화의 대표적인 영화감독인 코스타 가브라스 감독의 영화에 많은 영향을 끼치게 된다.
4. 사실감 넘치는 영화, 역사의 현장이 고스란히!
알제리 정부의 지원 아래 만들어진 이 영화는 모두 알제리의 실제 장소에서 촬영되었고, 촬영현장에 동원된 알제리 국민들은 전투의 기억을 되살리며 울부짖었다. 식민주의의 몰락을 염원하던 사람들은 이 영화에 열광했고, 영화의 선언을 과대 해석한 우파 평론가들은 "사적 유물론의 메시지가 당신의 뼈 속 깊숙이 스며들 것"이라며 분통을 터트린 바 있다.
영화를 본 대부분의 사람들이 다큐멘터리가 아닌가 할 정도로 이 영화는 흑백 화면 속에 나타나는 장면들이 마치 TV뉴스 화면을 보는 게 아닌가 착각할 정도로 ‘엑스트라의 표정이 살아 있다’는 말이 이 영화만큼 적절한 경우도 흔치 않다. 실제로 영화 속에 등장하는 수많은 사람들은 알제리 민중들이 과거 프랑스와 투쟁했던 당시 기억을 회상하며 찍은 장면들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대부분 영화에 등장하는 엑스트라들과는 달리 이 영화 속에서는 인물들 개개인의 표정이 뉴스화면 속에 나오는 장면들과 비교해도 손색 없을 만큼 생생하다.
엔니오 모리꼬네의 격정적인 음악에 실려 있는 배우들의 진지함과 농축된 대사는 영화의 차갑고 건조한 기조를 보상해준다.
5. 알제리 대사관과 함께하는 특별사진전!
영화 <알제리 전투>의 개봉소식을 듣고, 먼저 축하인사를 건네온 주한 알제리 대사관에서는 영화의 개봉을 기념하고 축하하는 의미에서 선뜻 대사관의 사진자료들을 제공한다. 알제리 대사관에서 제공하는 알제리의 풍경, 문화 등을 엿볼 수 있는 특별사진전은 10월 둘째 주부터 씨네큐브 극장 로비에서 관객들과 만날 수 있다.
‘리마스터링 버전’의 희귀본 35mm 흑백 필름
<알제리 전투>를 개봉하기 위해 전 세계를 뒤지다!
흔히 봐왔던 영화가 아닌 뭔가 색다른 영화,
의식이 있거나, 혹은 모든 관객 들이 함께 그 의미를 되새기고 기념할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해 보고자 했던 영화수입사의 단순한 아이디어에서 출발한 프로젝트가 오는 10월, <알제리 전투>로 드디어 발돋움 하게 된다.
1965년, 흑백영화로 만들어지고, 최초의 다큐멘터리 형식의 극영화로서 전 세계적으로 그 사실감과 긴장감에 대한 찬사가 끊이지 않았던 화제의 걸작이 국내에 상륙하기까지, 영화수입사는 전 세계를 뒤져 <알제리 전투>의 세일즈 회사를 찾았고, <알제리 전투>의 세일즈 회사는 또 다시 전 세계를 샅샅이 뒤져 오래 전 호주에서 상영되었던 ‘리마스터링 버전’의 35mm 필름을 수급하게 된다.
어렵게 구한 희귀본 단 벌 프린트의 영사 상태는 다행히 국내 관객에게 보여지기에 문제가 없는상태이고, 영문자막이 서비스 된다. 전세계에서 단 한 벌일지도 모르는 영화 <알제리 전투>의 35mm 흑백 희귀본 필름을 한글자막 버전으로 국내에서 최초로 개봉한다.
<알제리 전투>에 황금사자상 수상, 프랑스대표단 수상소식에 ‘발끈’ 출국
1966년 베니스 영화제에서 질로 폰테코르보의 <알제리 전투>(la bataille d’alger)가 황금사자상을 수상하자, 이에 대한 항의 표시로 프랑스 공식대표단이 베니스를 떠났다. 프랑스에 대한 알제리인들의 해방 투쟁을 다룬 영화가 그랑프리를 차지했다는 것이 프랑스인들의 심기를 불편하게 했기 때문이다.
흡사 다큐멘터리처럼 보이는 <알제리 전투>는, 1962년 알제리가 프랑스로부터 해방되기까지의 투쟁을 그린 극영화다. 알제리 정부의 지원 아래 만들어진 이 영화는 모두 알제리의 실제장소에서 촬영됐으며, 전투에 참여했던 알제리 민중이 직접 출연했다. 엔니오 모리코네의 음악은 투쟁의 격정을 한껏 고무시켰다. 하지만 프랑스 정부에 <알제리 전투> 같은 영화는 눈엣가시일 뿐이다. 프랑스 정부는 그동안 알제리에 관한 영화를 엄격하게 검열해왔다. 당연히 <알제리 전투>도 프랑스에서는 상영이 금지됐다. 또 다른 예는 장 뤽 고다르의 <작은 병정>으로, 이 영화는 1960년 상영금지 처분을 받았다 우여곡절 끝에 1963년에 상영이 허가됐다.
알제리만이 아니라 식민지 문제를 다룬 영화는 예외없이 감시의 대상이 되어왔다. 단적인 예로 1952년과 1959년 사이에는 식민지를 다룬 영화 105편의 상영이 금지됐다. 그런 상황에서 1960년 9월, 프랑수아 트뤼포와 알랭 레네를 포함한 예술가들은 성명을 발표해 “알제리 민중에게 가해지는 공격행위에 반대하고 프랑스 민중의 이름으로 억압받는 알제리인을 돕자”고 제안했지만, 정부의 태도를 바꾸기에는 역부족이었다.
/ 영화사신문 28호(1966∼1967) 이유란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