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질 경찰: 기항지, 뉴올리언스> Bad Lieutenant: Port of Call, New Orleans(블루레이)
2009년 / 베르너 헤어초크 / 122분 1.85:1 아나모픽 / Dolby TrueHD 5.1, DD 2.0 영어 자막 / 퍼스트 룩 스튜디오(미국)
< 화질 ★★★★ 음질 ★★★★ 부록 ★★★ >
아벨 페라라의 1992년 작품 <악질 경찰>의 엔딩에서 주인공 형사는 수녀를 강간한 두 소년을 남행 고속버스에 태워 보낸다. 그리고 돌아오는 길에 총을 맞고 죽는다. 베르너 헤어초크의 <악질 경찰: 기항지, 뉴올리언스>에는, 두 소년이 도착한 미국 남부의 어딘가에 있음직한 또 다른 나쁜 경찰이 등장한다. 헤어초크의 <악질 경찰>은 페라라의 <악질 경찰>의 공식 리메이크가 아니며, 헤어초크는 페라라의 영화를 보지 않았다고 주장하지만, 에드워드 R. 프레스먼이 17년의 차이를 두고 제작에 참여한 두 영화의 밀접한 관계를 부정하기란 힘들다.
선배 뉴욕 형사와 마찬가지로, 뉴올리언스의 테렌스 맥도나는 법을 수행해야 하는 존재이면서도 마약쟁이이고, 도박중독자이고, 도둑이고, 거짓말쟁이다. 유럽 예술영화를 대표하는 헤어초크가 할리우드에서 장르영화를 만든 사연이 궁금할 법하다. 근래엔 인간에 관심이 없다는 양 세상의 끝과 자연을 찾아 카메라를 들이대기에 바쁜 그였기 때문이다. <다크 나이트>를 본 어느 날, 어두운 시대의 도래를 직감한 그는 필름누아르를 만들기에 좋은 시기라고 판단했고, TV형사물 작가인 윌리엄 M. 핀클스타인의 각본에 공감하기에 이르렀다고 한다. <악질 경찰>의 도입부는 맥도나가 괴상한 상황에 진입하게 되는 과정을 단순명료하게 소개한다. 뉴올리언스가 허리케인 ‘카트리나’의 여파에 시달리던 때, 맥도나는 물에 빠져 죽을 위기에 처한 죄수를 구해준다. 공로를 인정받아 경사에서 부서장으로 승진한 것까진 좋았으나 그는 평생 지고 다닐 요통을 얻었고, 고통을 줄이려고 약물에 의존하다 마약중독에 빠지고 만다.
극사실성과 초현실성, 잔혹한 비극과 블랙코미디 사이를 넘나드는 <악질 경찰>은 데이비드 린치와 코언 형제의 조우처럼 보이며(헤어초크가 같은 해에 연출한 <내 아들아, 무슨 짓을 한 거니>의 제작자가 린치이고, 니콜라스 케이지는 <아리조나 유괴사건>과 <광란의 사랑> 시절의 황홀한 연기로 돌아갔다), 영화의 블랙유머는 가히 <포인트 블랭크>의 그것에 견줄 만하다. <악의 손길>을 의식했는지 헤어초크는 ‘악의 행복’에 관한 영화라고 말했는데, 악의 수렁에서 허덕이는 반면 이해 불가능한 사명감에 불타는데다 수사에 천부적 재능을 타고난 맥도나는 판단하기 어려운 인물이다. 급기야 엄청난 운까지 굴러들어와 해피엔딩까지 누릴 즈음, 관객이 어떤 표정으로 그를 대할지 난감하다. 마약과 술에 찌들어 살던 맥도나의 가족은 새롭게 태어나고, 아담한 집을 구하고, 새 생명을 맞이하고, 거듭되는 승진에 기뻐한다. 그의 자질과 운을 과연 행복이라 부를 수 있을까.
30여년 전, 헤어초크는 <스트로첵>을 통해 미국에서 산다는 것의 악몽을 이미 탐구한 바 있다. 극중, 기계에 갇혀 있다 사람들이 돈을 넣으면 춤을 추고 북을 치고 경보를 울리는 닭, 오리, 토끼는 정신과 자유를 잃은 채 기능에만 충실한 인간의 초상이다. 그 장면의 배경음악 <롱 로스트 존>이 <악질 경찰>에 다시 나오는 건 우연이 아니다. 노래에 맞춰 죽은 자가 덧없이 춤을 추고, 이번엔 금붕어와 악어와 이구아나가 소개된다. 구부정한 자세와 일그러진 표정의 맥도나가 우스꽝스럽고 괴상한 얼굴의 파충류같이 미끄러지듯 통과하는 뉴올리언스의 지옥은, 헤어초크가 종종 언급해온 ‘목적지 정신병원’과 진배없다. 영혼을 잃은 자들이 웃으면서 부유하는 곳, 그곳이 정신병원이 아니면 무엇이겠나. 결말에서 맥도나는 물고기도 꿈을 꾸는지 묻는데, 그의 질문은 틀렸다. ‘물고기는 어떤 꿈을 꿀까’가 정확한 질문이고, 답은 바로 ‘멍청한 꿈’이다. 미국판 블루레이는 헤어초크의 아내 레나가 찍은 스틸모음집, 예고편, 메이킹필름을 부록으로 제공한다. 현장에서 슬레이트를 직접 치면서 뛰어다니는, 차분하고 점잖은 모습의 헤어초크는 의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