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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진의 영화 판판판] 레드카드 받았으면 퇴장하는 거 아닙니까
이영진 사진 최성열 2010-06-21

6월17일 영진위 앞에서 열린 항의집회에서 부부젤라가 뜬 까닭

부부젤라가 떴다. 남아공 축구장에선 ‘퇴출’하자는 원성이 높은데 한국에선 인기 아이템이 된 모양이다. 며칠 전부터 야구장의 이색 응원도구로 쓰이더니, 영화인들의 집회에서도 부부젤라가 등장했다. 6월17일 오후 2시 영화진흥위원회 앞에서 열린 ‘조희문 영진위 위원장의 사퇴 촉구와 영화진흥위원회 사수를 위한’ 집회에서다. 이송희일 감독을 비롯해 기다란 부부젤라를 입에 문 영화인들이 몇몇 눈에 띄었다. 70여명의 영화인들이 모여 집회를 연 지 10분쯤 지났을 때, 한국영화인협회 소속의 원로영화인들과 광화문영상미디어센터, 독립영화전용관 시네마루 스탭들이 “영화인화합 외친 지 얼마나 됐냐. 영진위가 니들 거냐?”는 내용의 피켓을 들고 집회 진행을 가로막았다. 양쪽의 설전이 오가는 가운데 한 원로영화인이 이렇게 말했다. “그건 제발 좀 불지 말라고!” 코끼리 소리 내는 줄루족의 나팔, 부부젤라가 사람들의 정신을 혼미하게 만드는 게 사실인가 보다. 정작 이날 집회에 등장한 부부젤라는 국산인데다, 고작해야 대여섯개였다. 게다가 제대로 불 줄 아는 이도 거의 없었다. 그럼에도 어르신들의 신경을 거슬리게 했다면, 부부젤라 그놈, 참으로 대단하다.

하지만 이날 집회에서 부부젤라보다 더 듣기 거북한 나팔 소리가 있었다. 누가 불었는지 궁금해 말고 한번 들어보자. 뭐, 지겹도록 들었던 이야기이긴 하다. “지난 DJ 정권과 노무현 정권 10년 동안 명계남과 문성근이 영진위 지원사업을 다 독식했다고. 우리야 시나리오를 내도 다 예선에서 떨어지고. 그래도 우린 아무 말 안 했어. 이번에도 (아마도 <> 관련 논란) 이창동 감독이 뒤에서 애들 시켜서 그런 거 아냐.” 일부 영화인이 영진위를 장악하고, 영화계를 이념세력화했으며, 지금도 틈만 나면 여론을 배후조종하려 든다는, 군사정권 시절 영화진흥공사(이하 영진공)에서나 가능했을, 이 진부한 시나리오는 지난 10년 동안 토씨 하나 바뀌지 않는 것일까. 단적으로 명계남 대표가, 배우 문성근이, 그리고 이창동 감독이 영진위 지원사업 심사위원들에게 “밸런스 운운”하며 특정 지원작 접수번호를 불러준 적이 있는가. 영진위 불공정 공모에 휘말려 영화인들로부터 손가락질당하거나 법적 소송을 당한 적도 없지 않나. 그런데 왜 원로영화인들은 조희문이 아닌 그들을 영진위의 주적으로 몰아세우는 것일까. 그들은 영진위의 주적이 아니라 지금은 사라지고 없는 영진공의 주적이라고 해야 맞다. 그게 아니라면 지금의 영진위가 영진공으로 회귀했다고 먼저 말해야 한다.

이날 젊은 영화인들의 집회에 끼어든 원로영화인들의 성토와 조언 중에 참신(?)한 게 없었던 건 아니다. 과거 국제영화제와 영상위원회 집행위원장을 맡은 바 있는 원로영화인은 차승재 한국영화제작가협회 회장에게 이렇게 말했다. “이러면 조희문 인생은 끝나는 거야. 여기서 끝나면 어디 가서 명함을 내밀겠어. 강한섭의 전례를 보라고. 성명서 냈으면 됐지 이렇게 소란을 피우는 건 인간적인 도리가 아니라고. 그러면 그럴수록 조희문도 더 오기나서 버틸 거 아니야?” 원로영화인들은 시위한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라고 했다. 조희문 위원장도 알아야 한다. 버틴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다. 영진위는 <> 논란이 또다시 점화하자 6월15일 “제작사나 감독쪽이 아무런 입장을 밝히지 않은 채 억울한 피해자인 것처럼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고 했다. 이에 대해 <>의 제작사인 파인하우스필름은 “영진위의 주장과 달리 트리트먼트가 아닌 신 번호만을 붙이지 않은 시나리오를 제출했다”면서 영진위의 주장을 조목조목 반박했다. 지금 상황에서 영진위가 그닥 새로운 사실 없는 보도자료를 한가롭게 뿌릴 때는 아닌 듯하다. 참고로 영화인들의 집회가 열렸던 이날, 국민권익위원회는 “조희문 영진위 위원장이 부당하게 직권을 남용하고 파렴치한 업무상 배임행위를 자행했다”는 영화인들의 5월28일 신고를 받아들여 조사에 들어갔다. 더 많은 부부젤라가 영진위에 몰려들지 않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