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섭없는 지원’ 대신 ‘지원없는 간섭’을 일삼고 있는 현 정부의 문화정책에 독립영화가 신음하고 있습니다. ‘앗! 독립영화’는 산업과 정치의 논리로 문화와 공공성을 훼손한 이들에 대한 항의의 목소리를 담을 예정입니다. 영화진흥위원회의 파행 운영으로 독립영화 전용관, 영상미디어센터 등이 사실상 물거품이 된 2010년입니다. 문화와 공공성을 회복하기 위한 ‘독립영화인’들의 노력을 그들만의 싸움으로 넘겨버릴 순 없습니다. ‘앗! 독립영화’는 인디포럼, 미디액트, 독립영화전용관건립추진위원회, 서울독립영화제, 서울아트시네마, 인권영화제 등 문화다양성을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는 독립영화단체들에 대한 응원은 물론이고 더 나아가 ‘독립영화’를 일구기 위해 서울이 아닌 지역에서 애쓰는 독립영화인들을 찾아 자유롭게 대화할 것입니다. ‘앗! 독립영화’는 독립영화 길찾기를 위한 든든한 제언도 언제든지 환영합니다(anti@cine21.com).
‘인디포럼 2010’ 개최를 위한 4월9일 회의에는 이송희일 감독, 양해훈 감독, 김일권 프로듀서, 박홍준 감독, 정지연 감독, 최윤정 사무국장, 잇을 프로그램팀 스탭(왼쪽부터 시계방향) 등이 참여했다.
“최종심사 할 장소가 없는데 어떻게 하죠?” ‘인디포럼 2010’ 사무총괄을 맡고 있는 최윤정씨는 걱정투성이다. “다음주부터는 30명이 넘는 자원봉사자 면접과 교육을 해야 하는데 이 또한 마땅한 공간이 없”다. 최씨는 “지난해에는 참여연대의 도움을 받아 공간을 빌려 썼지만 올해는 새로 장소를 물색해봐야 한다”고 한숨을 쉰다. 이게 다 제 집 없는, ‘더부살이’ 설움이다. 인디포럼은 지난해 봄까지 독립영화 배급사 인디스토리에 세들어 살았다. 밀린 월세는 결국 갚지 못할 빚으로 남았다. 1년이 지난 지금은 또 다른 독립영화 배급사 시네마 달 한켠에 둥지를 틀고 있다. 임대료? 이젠 약속조차 못한다. 그저 배려에 감사할 뿐이다. 시네마 달 대표인 김일권 프로듀서가 인디포럼 작가회의 소속이라는 걸 그나마 다행이라고 여겨야 할지도 모르겠다. 이마저도 아니었다면 “500편에 달하는” 출품작을 받을 접수처조차 없을 뻔했다.
올해도 영진위 지원 없이 5월28일 영화제 개막
공간은 사실 둘째 문제다. 진짜 근심은 영화제를 치를 돈이 없다는 것이다. 4월9일 인디포럼 작가회의의 9차 회의 안건을 보니 온통 ‘돈’, ‘돈’, ‘돈’이다. 이송희일 감독이 회의 첫머리에 “오늘은 손님이 왔으니 돈 이야기는 나중에 하자”고 했지만, 가난한 영화제 속사정은 숨겨도 금세 줄줄이 터져나온다. 각 정당들에 후원을 요청하는 편지를 발송했는지, 규모가 큰 영화제와 기업으로부터 후원금을 얼마나 확보했는지, 상영극장의 대관료는 얼마나 되는지, 인쇄물 디자인은 어떻게 해야 저렴하게 맡길 수 있는지 등등. 회의가 계속되지만 뾰족한 해법은 좀처럼 나오지 않는다. 이같은 상황은 인디포럼 작가회의가 2009년 영화진흥위원회의 단체사업지원에서 이른바 ‘촛불단체’로 규정되어 탈락했을 때부터 예고됐던 바다. 영화제를 치른 다음에야 어이없는 탈락 통보를 들었던 인디포럼 작가회의는 지난해 9월 ‘채무변제파티’를 열어 간신히 “1천만원이 넘는” 빚을 어렵사리 치렀다.
‘독립’과 ‘좌빨’을 동일어로 여기는 영화진흥위원회로부터 미운 털 박힌 탓에 올해 인디포럼은 개최 여부조차 불투명했다. 2000년부터 인디포럼은 1500만원의 영진위 지원금을 바탕으로 영화제를 개최해왔다. ‘인디포럼 2010’ 또한 영진위 단체지원사업을 기대할 수 없다면 진행이 불가능하다는 판단이 대부분이었다. 김일권 프로듀서는 “한해 영화제를 치르려면 대략 3천만원 정도가 들어간다”면서 “작가회의 내부에서도 올해 무리해서 영화제를 치르느니 내년에 준비해서 이어가자는 의견이 나왔다”고 전한다. 하지만 결론은 올해도 ‘GO!’였다. ‘인디포럼 2010’은 5월28일부터 6월4일까지 서울아트시네마에서 40여편의 신작을 포함한 약 60편의 독립영화를 선보일 예정이다. 이송희일 감독은 “작가회의 소속 감독들이 영화제 운영 자금 마련을 위해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 오늘(4월9일) 회의 참석자가 평소보다 적은 것도 그 때문이다”라고 말한다. 빚더미에 오를 것을 알면서도 독립영화감독들은 ‘인디포럼 2010’을 고집하고 있다. 왜, 도대체 왜?
1998년부터 독립영화계 대표 행사로
올해 15회를 맞는 인디포럼은 독립영화제 중 맏형 격이다. 1990년대 중반 생겨났던 작은 영화제 중 10년 이상 ‘버텨낸 건’ 인디포럼이 유일하다. 영화제 시작 때는 ‘독립영화’라는 개념조차 익숙지 않아, 대부분 소형·단편영화로 불렸다. 2000년대 초반까지 인디포럼 프로그래머로 활동한 조영각 서울독립영화제 집행위원장은 “(비주류 영화들의) 상영 기회는 서울단편영화제 정도가 유일했다”면서 “연간 100편 정도가 만들어진다는데 서울단편영화제에서 상영되지 못한 나머지 영화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하는 궁금증과 안타까움이 결국 ‘독립영화 작가그룹전 인디포럼 96’으로 이어졌다고 말한다. ‘아마추어에서 작가까지’라는 슬로건을 내건 ‘인디포럼 96’은 자족적인, 소규모 행사로 출발했지만 열기는 기대 이상으로 뜨거웠다. 젊은영화, 푸른영상, 청년, 필름인, 네모라미, 마루, 애니말 등의 제작 단체뿐만 아니라 임창재, 김용균, 정지우 감독 등이 결합하면서 상영편수만 “50편이 넘었다”.
인디포럼이 명실상부한 ‘독립영화 한마당’이 된 건 1998년부터였다. 1997년까지 심의 거부 등으로 안정적인 상영관을 확보하지 못해 우여곡절을 겪던 인디포럼은 3년째에 들어서면서 ‘독립영화 관객’을 생성하기 시작했고 이러한 분위기는 2001년까지 계속된다. 조영각 서울독립영화제 집행위원장은 “1998년 코아아트홀에서 영화제가 열렸는데 임시 좌석을 만들어야 할 정도로 대박이 터졌다”고 전한다. 인디포럼의 제작지원으로 류승완 감독의 릴레이 무비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2000)가 영화제 매진 기록을 작성한 데 이어 장편으로 개봉해 저예산 독립영화의 가능성을 현실화한 것도 이 무렵이다. 이송희일 감독은 “인디포럼 출품 편수에서 드러나듯이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디지털영화 제작편수가 급증했고, 시네필들의 억눌린 욕구들 또한 늘어난 독립영화들 안에서 어느 정도 해소됐던 것 같다”고 전한다. 영화진흥위원회로부터 독립영화가 지원을 받기 시작한 것도 이때다.
이같은 분위기의 변화는 김일권 프로듀서의 지적처럼, 과거 인디포럼의 슬로건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난다. ‘독립영화여, 독립하라!’(1997), ‘나, 독립영화야!’(1998) 등에서 알 수 있듯, 초기만 해도 인디포럼은 독립영화와 독립영화감독들의 ‘존재증명’을 알리는 데 힘썼다. 하지만 2000년대 들어 인디포럼의 슬로건은 사뭇 다르다. ‘독립영화 재장전’(1999), ‘교감’(2000), ‘영토확장’(2001) 등에서 무엇이 느껴지는가. 인디포럼은 독립영화와 관객과의 도킹 창구가 됐고(참고로 인디포럼 2000의 관객 수는 무려 6천명 수준이다), 이후 수많은 독립영화제의 탄생을 도왔다. 인디포럼에 있어 성취는 그러나, 곧 질곡이기도 했다. 2002년 이후 인디포럼은 여타 영화제(특히 2002년 생겨난 미쟝센단편영화제)들과 차별성을 꾀해야 했다. 이를 위해 ‘독립영화란 무엇인가’라는 정체성에 대한 자문이 뒤따랐다. “상업영화에 진입하기 위한 사전 단계로서의 독립영화”라는 세간의 오해도 불식시켜야 했다.
논쟁은 새로운 길찾기로 이어지고
2002년부터 불붙기 시작한 인디포럼의 지향에 대한 논쟁은 바깥에는 많이 알려지지 않았으나 그 수위와 양상은 격렬했다. 날선 비판들이 오갔으며, 2006년에는 영화제 존폐를 둘러싼 논쟁으로까지 이어졌다. 시대와 긴장 관계를 형성하지 못한 장르 추구 영화들을 독립영화로 부를 수 있느냐는 쪽에서는 인디포럼이 “장르화되어 가는 단편영화들을 배척하면서 실험과 혁신, 그리고 자기반성을 모토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했고, 또 한편에서는 “독립영화를 시장과 완전히 유리된 상상 속의 영역에 가두는” 것이야말로 순진한 착각이라며 그동안 독립영화감독들이 중심이 됐던 인디포럼이 일부 프로그래머들을 위한 ‘굿판’으로 변질됐다는 반론으로 맞섰다. 여기서 중요한 건 논쟁의 사후 판정은 아닐 것이다. 외려 인디포럼이 독립영화 논쟁의 중심 장(場)이었음을 주목해야 한다. 5년 전의 대립각이 갖는 의미는 여전히 유효하며, 그래서 한때 그들만의 싸움이었다고 치부할 수도 없다.
생산적인 논쟁은 길찾기로 이어지는 법이다. 2007년을 기점으로 인디포럼은 일종의 ‘재정비’에 나선다. “독립영화에 대한 자문이 강박적인 족쇄라면 풀어버리는 게 낫다. 실체로서의 독립영화가 무엇인가를 따지는 것보다 가능성으로서의 독립영화를 재구성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윤성호, 양해훈, 김곡, 김선, 남다정, 정재훈 감독 등 20여명의 상임작가들과 함께 지난 3년 동안 인디포럼을 꾸려온 이송희일 감독의 말이다. 작가회의 구성을 감독에만 국한하지 않고 프로듀서, 평론가, 기자 등으로 넓히고, 관객과의 상시적인 만남을 위해 ‘월례비행’이라는 정기 상영회를 개최하고, “영화를 만들고 싶어 안달이 난” 이들을 지원하기 위해 독립영화 제작워크숍을 꾸준히 진행해온 것도 독립영화 환경을 직접 만들어내려는 적극적인 노력의 일환이다. 정답은 누가 주는 것이 아니라 함께 찾는 것이라는 생각은 양해훈 감독도 마찬가지다. “상황이 어렵다고 영화제를 안 할 수는 없다. 인디포럼은 독립영화감독들이 동시대의 고민들을 확인하고, 또 서로에게서 자극받기 위해 만든 축제다. 성격이 다른 영화제에 가서 영화를 보고 토론할 수는 없잖은가.”
“영화제는 우리 것” 감독들의 품앗이는 계속된다
인디포럼이 독립영화의 텃밭을 가꾸기 위해 몇년 동안 새로이 각오를 다지고 분투를 벌였지만, 정작 이를 뒷받침해야 할 영진위는 두손을 놔버렸다. 특히 지난 2년은 훼방을 놨다고 해야 적절할 것이다. ‘독립’이라는 말에 경기를 일으키던 강한섭 전 영진위 위원장은 말만 앞세운 끝에 독립영화의 숙원이었던 ‘다양성영화 복합상영관’ 예산 500억원을 쓰지 못하고 날려버렸다. 뒤이어 등장한 조희문 현 위원장은 “불법 시위를 주최, 주도하거나 적극 참여한 단체”에는 “보조금을 내줄 수 없다”는 단 하나의 기준만을 들고서 단체사업지원, 독립영화 전용관·영상미디어센터 운영자 공모사업에서 비상식적인 심사를 진행했고, 그 결과 영진위는 법적 소송에 연달아 걸려 있다. <워낭소리>를 치적으로 내세우면서도 독립영화를 부정하는, 공공의 안녕을 위한답시고 공공의 적이 되길 주저하지 않는 영진위를 영화계 그 누군들 보이콧하지 않았을까. 국회에서 “기존 독립영화계는 지원에 너무 의지했다. 이제 자생성을 길러야 한다”고 말했던 조희문 위원장과 이제 와서는 모든 것이 ‘오해’라며 법적 소송을 취하해달라고 말하는 영진위의 이율배반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
“당연하다고 느꼈던 지원이 없어져서 처음엔 힘들었는데 뭐, 이제는 외려 잘된 일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고 있다.” 2007년부터 인디포럼 활동을 해온 정재훈 감독은 “에너지란 빛과 어둠이 교차할 때 발생한다”(그가 만든 올해 영화제 웹 트레일러 영상의 주제이기도 하다)면서 인디포럼에 대한 응원의 목소리를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힘든 시기를 이겨낼 수 있을 것이라 믿고 있다. 행정과 예산을 책임질 상시적인 사무국 체제에 대한 필요성을 느끼지만 인디포럼의 원동력은 여전히 감독들의 ‘품앗이’에서 비롯된다는 서로간의 신뢰도 강하다. “영화제 수익 마련을 위해서 강좌 등을 마련하는 게 어떻느냐는 의견이 있었는데 범위나 대상 등을 늘리면 더 좋을 것 같다. 당연히 도울 계획이다.”(오건영 감독) “인디포럼에서 향후 제작지원 프로젝트 성사를 위해 일단 올해는 여러 감독들이 모여 3∼5분의 짧은 영상을 만들어보자는 제안이 나왔다. 이런 경험들은 학교에서는 못 해본 것이기도 하고, 인디포럼에 도움이 될 터이니 꼭 참여해 힘을 보태고 싶다.”(정지연 감독) “올해보다 내년이 더 힘들지 않겠나. 그러니 고민을 더이상 미뤄선 안된다. 그게 우리가 영화제를 기어코 하는 이유다.”(박홍준 감독) 15년 전, 독립영화감독들은 매년 행사를 치를 자신이 없어 ‘OO영화제’ 대신 ‘인디포럼OO’이라는 간판을 달았다. 아직 첫 경험을 치르지 않은 ‘1년차’ 감독들의 강한 의지를 듣고 보니, 인디포럼의 다음 15년도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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