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에게>는 ‘영화, 한국을 만나다’ 프로젝트의 네 번째 작품이다. 이미 서울, 춘천, 인천을 배경으로 한 윤태용의 <서울>, 전계수의 <뭘 또 그렇게까지>, 문승욱의 <시티 오브 크레인>이 개봉했다. <그녀에게>의 무대는 부산이다. 부산은 독창적인 풍광과 도시적 정체성에도 불구하고 한국영화에서는 ‘경상도 사나이 장르’의 노스탤지어적인 무대로만 소비되어왔다. 부산이 열렬히 충무로에 로케이션을 지원하고도 남는 장사는 해본 적 없단 소리다. <그녀에게>는 프로젝트의 목적에 맞게 부산이라는 도시의 풍광을 열심히 담아낸다. DSLR 인기 출사지는 다 나온다.
그런데 김성호(<거울 속으로>) 감독은 부산이라는 도시를 근사한 병풍 이상의 주요한 장치로 극 속에 끌어올 생각은 없었던 것 같다. 사실 <그녀에게>는 무대가 어디라도 별 상관이 없어 보인다. 영화감독 인수(이우성)는 부산에서 혜련(한주영)이란 여자를 우연히 만난다. 그녀는 인수에게 자신의 과거 이야기를 들려주고, 인수는 20년 만에 딸을 찾아 부산으로 내려온 사진작가(조성하)의 이야기를 시나리오로 쓴다. 영화가 진행되면서 두 이야기는 하나인 듯 겹친다. 말하자면 데이비드 린치의 악몽에 감화된 젊은 영화광의 오마주 같은 영화인데, 종종 부산의 야산을 배경으로 아핏차퐁 위라세타쿤 흉내도 낸다.
전반적으로 <그녀에게>는 (억지로 명명해보자면) 홍대-팬시-아트영화라 부를 만한 장르에 속해 있다. 이를테면 이런 거다. 여주인공은 인기 출사지인 감천동의 인도 스타일 인테리어를 해놓은 쪽방에 살며 홍대 여자 뮤지션 스타일로 옷을 입고 오토바이를 몰고 다닌다. 홀로 떼놓으면 좀 멋있을 것도 같은 여주인공에게 (요즘 홍대 아티스트들이 몰려든다는) 연희동 출신의 머리 길고 내성적이고 비썩 마른 영화감독 캐릭터를 짝지워놓으니 이런 클리셰가 또 없다. 그나저나 요즘 한국 예술영화는 ‘홍대 여신’ 스타일의 여자들에게 오토바이를 달리게 만드는 게 취미인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