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따, 의자 좀 옆으로 갖다붙여 앉아야~.” 막걸리 가게 안으로 몰려드는 사람들 때문에 정신이 사나운 듯 주인 아줌마가 타박한다. 하지만 어쩌랴. 아무리 촘촘히 끼어 앉아도 남는 자리가 없는 것을. 좀더 큰 가게를 빌렸어야 하는 게 아니냐고 서울독립영화제의 김동현 사무국장에게 불평했다. 옛말에 무식하면 조용히 있으라고 했거늘. 김 사무국장은 “여기서 지난 4년 동안 독립영화인의 막걸리 파티가 모두 열렸다”며 한수 가르쳐주신다.
제11회 전주국제영화제가 열린 지난 5월2일, 전주 모처의 한 막걸리 집에서 ‘독립영화인의 막걸리 파티’가 열렸다. 한자리에 모일 기회가 흔치 않은 만큼 김동원 감독을 비롯해 인디플러그의 고영재 대표, 시네마달의 김일권 대표, 청년필름의 김조광수 대표 등 100명 넘는 많은 독립영화인들이 발걸음을 했다. “영화진흥위원회로부터 각종 지원이 끊긴 올해는 고난의 시기”라는 조영각 서울독립영화제 집행위원장은 “독립영화인들이 모두 마음과 힘을 합친다면 자립할 수 있을 것”이라고 비장하게 각오를 밝혔다. 민병록 전주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은 “독립영화가 살아야 한국영화계가 산다. 전주국제영화제도 한국독립영화에 많은 지지를 보내겠다”면서 씨너스 AT9의 정상진 대표와 인디스토리의 곽용수 대표와 함께 즉석에서 술값을 계산하는 훈훈한 풍경을 연출하기도 했다.
‘건배’ 제의를 시작으로 독립영화인들은 그간 나누지 못했던 회포를 맘껏 풀었다. 자리가 없어 자신의 영화(<바람의 노래>)에 출연한 배우 김효서와 함께 맥주 박스에 앉아 막걸리를 마시던 김종관 감독은 “막걸리 파티는 오랜만이지만 올 때마다 고향에 온 듯한 기분이다”고 소감을 밝혔다. 사람이 많은 기회를 노려 호객(?) 행위를 하는 이들도 있었다. 강릉시네마테크의 박광수 사무국장은 손수 제작해온 정동진 독립영화제 엽서를 돌리면서 “8월6일부터 8일까지 열리는 정동진영화제를 꼭 찾아달라”고 하는가 하면, 원승환 한국독립영화협회 배급팀장은 자리를 옮겨가며 “5월4일은 <원 나잇 스탠드> 개봉일”이라고 강조했다. 뒤늦게 자리한 김동원 감독은 “간만에 많은 독립영화인들이 한자리에 모여 보기 좋다”며 “이렇게 힙을 합치면 못할 것도 없다”고 말했다. <레드마리아>의 경순 감독도 “최근에 이렇게 많은 독립영화인들이 모인 자리가 있었는지 싶다. 마음이 든든하다”고 덧붙였다.
발디딜 틈 없는 뜨거운 열기였지만 올해 막걸리 파티는 여느 해와 다소 달랐다. 보통 때 같으면 조영각 집행위원장은 술자리의 흥겨움에 취해 자리가 채 끝나기도 전에 의자나 탁자에 기대어 잠이 들었지만, 이날만큼은 끝까지 남아 함께했던 사람들을 챙겼다. 혹여나 이 풍경, 어쩌면 비상시국 상황인 현재 독립영화계의 분위기를 대변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비공식이라서 더 재밌고 즐겁다니까
조영각 서울독립영화제 집행위원장
-전주 막걸리 파티는 언제부터 시작됐나. =4년 전이었다. 보통 영화제에서 술을 먹다보면 10명, 20명씩 모이잖나. 이렇게 술자리를 하다보니 사람들이 ‘올해는 파티 언제 하냐’며 밀어붙인 거지. 그러면서 장소를 예약해야 하는 상황까지 온 것이다. 게다가 전주는 막걸리 문화고. 막걸리 집 사장님도 미리 전화하셔서 늘 ‘올해는 언제 오냐’고 물으셨다. 이번엔 현수막까지 직접 제작해 동네에 걸 정도로 챙겨주셨다.
-올해는 유독 참석자가 많았던 것 같다. =100명 정도 온 것 같다. 수만 놓고 보면 전에도 이쯤 됐다. 지난해까지는 이 집이 막걸리촌인 삼천동에 있었다. 오가다 들른 사람들이 많았던 거지. 올해는 가게가 한적한 주택가로 이사했다. 여기 온 독립영화인들은 모두 다 오늘 밤은 막걸리 파티에서 즐기겠다고 맘먹고 온 사람들이다.
-막걸리 파티를 공식 행사로 하자는 전주국제영화제의 제안을 거절했다고 들었다. =영화제 공식 행사가 되면 독립영화인들만의 공간이 없어진다. 다른 분들이 오게 되면 파티가 형식적으로 변하게 되는 거지. 공식적인 행사가 있으면 비공식적인 행사도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날짜도 일부러 영화제 공식행사를 피해서 잡으려고 한다. 싫어하시는 분들도 있으니까.
-독립영화계에 있어 올해는 고난의 시기다. 막걸리 파티가 예년과 다른 점이 있나. =독립영화는 항상 힘들어서 큰 차이는 없는 것 같다. 막걸리 파티가 독립영화인들 사이에 큰 힘이 되는 것 같다. 서로 사정을 잘 아니까 격려하게 되고. 또 축하할 일 있을 때 축하도 해주고.
-내년에도 계속 되나. =매년 김동현 사무국장과 ‘올해는 하지말자. 힘들다’고 얘기한다. 올해는 민병록 집행위원장님을 비롯해 여러 대표님들 덕분에 흑자를 봤지만. 어느 순간 막걸리 파티에 맞춰 전주에 내려오는 분들도 있더라. 도와줘서 감사하다. 그러나 내년은 글쎄. 전주를 갈지 안 갈지 모르겠다. 우리가 안 하더라도 다른 독립영화인들이 하겠지. (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