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영화의 생생한 현재를 온라인으로 만나자! 5월6일(목)부터 6월2일(수)까지 ‘씨네21i 제1회 온라인 일본영화제’가 열린다. 씨네21i가 유통하고 있는 일본영화 가운데 국내 미개봉작을 포함해 특색있는 작품들을 선별해 일본을 대표하는 꽃미남, 꽃미녀들과 만나는 ‘화남화녀와의 만남’, 원작소설이나 만화 또는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작품들을 모은 ‘원작/실화 vs 영화’, 일본영화 특유의 코믹한 감성과 잔잔한 일상을 엿볼 수 있는 ‘이것이 일본영화다’, 마지막으로 일본영화의 강점이기도 한 요리가 소재인 영화들을 한자리에 모은 ‘산해진미의 향연’, 이렇게 4개 섹션으로 나눴다. 행사사이트는 곰tv(www.gomtv.com), K디스크(www.kdisk.com)이며 영화제 상영작 가운데 한편을 유료 다운로드하면 순차적으로 공개할 무료 지정영화 한편을 무료로 제공받을 수 있다.
원작/실화 vs 영화
미개봉작인 <P짱은 내 친구>는 원제가 <돼지가 있는 교실>로 호시 선생(쓰마부키 사토시)이 어느 날 교실에 돼지 한 마리를 데리고 오면서 시작된다. 1990년 TV다큐멘터리로도 방송된 오사카 한 초등학교의 실제 실험적인 수업을 영화화한 작품으로, 수업의 내용은 1년 동안 돼지를 잘 길러서 나중에 다 크면 잡아먹자는 파격적인 체험 수업이다. 교내 화단을 마구 어지럽히는 난폭한 새끼 돼지의 변까지 치우면서 아이들이 붙여준 이름이 바로 ‘P짱’이다. 이상하게 들릴지도 모르겠지만, 돼지와 함께 성장해나가는 아이들의 순수한 동심이 큰 감동을 준다. 하지만 1년 뒤 아이들은 그 돼지를 잡아먹을 것이냐, 아니냐를 두고 치열한 토론을 벌이게 된다. 관람자에 따라서는 2008년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로랑 캉테의 <클래스>와도 바꾸지 않을 매력적인 작품이다.
역시 미개봉작인 <비뚤어질 테다>는 일본의 스타 코미디언이기도 한 시나가와 히로시의 자전적 이야기를 담아 먼저 소설과 만화로 제작된 원작의 영화화다. 감독 스스로 연출까지 맡아 전학과 퇴학, 패싸움 등 불량한 추억까지 생생하게 그리고 있다. 학원 액션물이라기보다는 중학교에서 고등학교까지 이르는, 형형색색 머리를 물들인 불량한 청춘들의 성장을 그리고 있는 귀엽고 코믹한 드라마다. 개봉작 <디트로이트 메탈시티>는 와카스키 기미노리의 동명 만화를 원작으로 삼았으며 그 원작의 표현이 다소 순화된 측면이 있지만, 생동감 넘치는 캐릭터의 매력은 그대로다. 중독성있는 음악들의 향연 속에 음악을 통해 꿈을 찾아가는 성장영화다.
이것이 일본영화다
미개봉작 <인스턴트 늪>(2009)은 <거북이는 의외로 빨리 헤엄친다>(2005)는 물론 <인 더 풀>(2005)을 비롯 TV시리즈 <시효경찰>(2006), <돌아온 시효경찰>(2007) 등 오다기리 조와 함께한 여러 작품을 통해 국내에도 많은 팬을 확보하고 있는 미키 사토시 감독의 신작이다. 아소 구미코가 <시효경찰> 시리즈의 주인공이기도 했으니 그의 팬들로서는 더욱 반가울 듯하다. ‘독특한 주인공이 겪는 특별한 상황’을 그리는 데 일가견이 있는 만큼 <인스턴트 늪> 역시도 망해가는 한 패션지 편집장 하나메(아소 구미코)를 중심에 둔다. 하나메는 잡지사가 망하자 모든 물건을 처분하고 새 삶을 살기로 한다. 그런데 우연히 발견하게 된 한 편지를 통해 전혀 엉뚱한 아저씨가 자신의 친아버지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인스턴트 늪>은 그 친아버지를 찾아 떠난 어딘가 기묘한 여행의 기록이다. 어딘가 묘하고 난해한 미키 사토시 특유의 연출도 흥미롭고, 무엇보다 가세 료의 변신이 파격적이다 못해 충격적이다. 징이 박힌 가죽점퍼를 걸치고 머리를 곧추세운 그를 보고 일부 팬들은 ‘펑크 료’라는 별명을 붙여줬다.
개봉작들인 <요시노 이발관>(2004), <마을에 부는 산들바람>(2007), <도쿄 랑데부>(2008)는 각각 한 작은 해안가 마을, 산과 밭으로 둘러싸인 시골 마을, 재개발 직전의 낡은 아파트 등 빡빡한 도심에서 벗어난 은은한 ‘전원교향곡’같은 작품들이다. 느린 삶과 무소유에 대한 예찬이랄까, 일본영화가 보여주는 또 다른 속도과 삶의 작품들이다.
화남화녀와의 만남
아오이 유우는 예쁘다. 하지만 기존의 청춘스타들이 보여준 정형화된 매력과는 어딘가 다른, 그러니까 그녀에겐 정말 뭔가 특별한 것이 있다. 국내 미개봉작인 <백만엔걸 스즈코>는 그 정체에 한 걸음 다가갈 수 있게 해주는 영화다. 원제가 <백만엔과 고충녀>인 <백만엔걸 스즈코>에서 스즈코(아오이 유우)는 이른바 ‘88만원 세대’다. 그런 상황 속에서 스즈코는 룸메이트와 다투다 전과자가 되고 출소 뒤 100만엔을 모으면 집을 떠나리라 결심한다. 그러면서 자신을 아는 사람들을 피해 산과 바다로 떠돌아다니며 돈을 모은다. 그러다 도착한 한 일본 주변 소도시에서 나카지마(모리야마 미라이)를 만나게 되고 운명처럼 사랑에 빠진다. 이곳저곳을 떠돌며 황당한 상황들을 연달아 겪고, 그렇다고 해서 ‘백수’의 고충을 밀도있게 그리는 것도 아니면서 카메라는 그저 아오이 유우를 쫓는다. 그런데 그것이 단지 아오이 유우라는 존재만으로도 용서가 된다. 아오이 유우의 팬이라면 절대 모른 척할 수 없는 영화다.
역시 국내 미개봉작인 <카멜레온>(2008)은 선 굵은 남성적 영화로 유명한 사카모토 준지 감독의 스타일과 <데스 노트>(2006) 시리즈의 후지와라 다쓰야가 만난 독특한 경우다. 마냥 섬세한 소년 같아 보였던 후지와라 다쓰야가 결혼사기단의 리더이자 우연히 정치권의 음모에 휘말려 복수를 꿈꾸는 무표정의 터프가이 ‘고로’로 출연한다. 선글라스를 쓰고 뾰족뾰족 삐침머리를 길렀으며 수염까지 기른 그의 모습은 영락없이 <올드보이>의 그것이다. 거의 편집없이 보여주는 액션연기와 총격신까지 몸소 소화했으며,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분노에 불타는 눈빛까지 후지와라 다쓰야의 완벽한 성인 신고식이다.
국내 개봉작인 <키사라기 미키짱>(2007)과 <해피 플라이트>(2008)에서 확인할 수 있는 화남화녀는 각각 오구리 슌과 아야세 하루카다. 물론 <키사라기 미키짱>은 <꽃보다 남자>에서 한국으로 치자면 김현중이었던 오구리 슌 외에 <노다메 칸타빌레>의 고이데 게이스케도 있고 화남과는 다소 거리가 먼 <춤추는 대수사선> 유스케 산타마리아, <마미야 형제>의 쓰카지 무가, <도쿄 소나타>의 가가와 데루유키 등이 등장하여 멋진 앙상블 연기를 선보인다. <해피 플라이트>는 얼마 전 일본에서 개봉해 큰 인기를 끌었던 <오파이 발리볼>(가슴배구)에서, 오합지졸 남자 배구부 고문을 맡으면서 ‘우리가 잘하면 선생님의 가슴을 보여달라’는 요구를 승낙하고 마는 선생 미치코로 출연한 아야세 하루카의 톡톡 튀는 매력을 엿볼 수 있는 영화다. 국내 관객에게는 곽재용 감독이 일본에서 만든 <싸이보그 그녀>에 남자친구 지로(고이데 게이스케)를 지켜주는 강한 사이보그이자 발랄한 여자친구, 이를테면 ‘일본판 <엽기적인 그녀>’로 출연한 적 있어 좀더 친숙하게 다가오기도 한다.
산해진미의 향연
미개봉작들인 <행복의 향기>(2008)와 <논짱도시락>(2009)은 각각 중식당과 도시락가게를 무대로 하고 있다. <행복의 향기>에서 백화점 직원 다카코(나카타니 미키)는 언제나 손님들로 북적거리는 소상해반점의 요리사 왕씨(후지 다쓰야)에게 백화점 입점을 제안한다. 하지만 여느 일본 요리만화의 고집 센 요리사들이 그러하듯 왕씨는 다카코의 제안을 거절하고, 이미 왕씨의 요리에 매료된 다카코는 매일처럼 식당에 들른다. 그러던 어느 날, 왕씨가 뇌졸중으로 쓰러져 더이상 요리를 할 수 없는 상황이 되자, 가게를 이어받을 자식도 없는 왕씨를 위해 다카코가 사표를 던지고 찾아온다. 다이내믹하게 묘사되는 다채로운 요리 영상들이 볼 만하며, 아버지와 딸처럼 요리로 하나되는 두 사람의 관계가 따스한 감동을 준다. 그렇게 <역도산>(2004)에서 각각 역도산(설경구)의 후견인인 ‘칸노 회장’과 아내 ‘아야’를 연기했던 후지 타츠야와 나카타니 미키가 스승과 제자로 만났다는 점이 재미를 더한다.
<논짱 도시락>의 씩씩한 젊은 주부 코마키(고니시 마나미)는 백수 남편에게 질려 딸 논짱을 데리고 친정으로 돌아온다. 하지만 친정엄마에게 짐이 되고 싶지 않은 코마키는 일을 찾다찾다 결국 모두가 감탄해 마지않는 도시락 요리 실력을 살려 도시락가게를 열고자 한다. 그저 달리 감상하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는 산해진미와 달리 <논짱 도시락> 역시 <심야식당>처럼 따라 해먹고 싶은 충동을 일으키는 요리 영화다. 쪽파와 계란, 새우 등 각종 볶음밥들을 보고 있노라면 절로 군침이 돈다. 도쿄 변두리를 무대로 일본영화 특유의 소박한 일상과 소소한 재미가 흐뭇한 웃음을 짓게 한다.
지난 2월 개봉한 <남극의 쉐프>는 실제 남극관측 대원으로서 조리를 담당했던 니시무라 준의 유쾌한 에세이 <재미있는 남극요리인>을 영화화했다. 일본 요리영화의 배경에는 전혀 한계가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작품이기도 하다. 평균기온이 영하 50도를 훌쩍 넘는 극한의 남극에서 할 수 있는 요리란 뻔할 것처럼 느껴지는데도, 조리담당 니시무라(사카이 마사토)는 오니기리부터 푸아그라까지 요리하며 고된 작업에 시달리는 대원들의 유일한 낙이 된다. <카모메 식당>(2006)에도 참여했던 푸드 스타일리스트 이이지마 나미가 참여해 더없이 화려한 남극의 성찬을 펼쳐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