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배우 가운데 로버트 칼라일만큼 대책없는 아빠의 대명사도 없을 것이다. 영화 <풀 몬티>에서 연기한 가즈는 무능력한 이혼남이었다. 그는 아들과 전 부인에게 좀더 멋있는 남편이자 아빠가 되고자 옷을 벗었다. 무모한 도전이지만 극중에서 가즈의 아들은 아빠의 도전을 응원했다. 1980년대 남부 웨일스를 배경으로 한 <아이 노우 유 노우>의 아빠는 더 대책없고, 아들은 더 어른스럽다. 11살 소년 제이미(애런 풀러)의 아빠는 여행사 직원을 가장한 영국의 비밀첩보원이다. 여름휴가를 함께 보낸 뒤 아빠 찰리(로버트 칼라일)는 다음 임무만 성공하면 큰돈을 벌어 미국에 가서 살 수 있다고 말한다. 허황된 꿈처럼 보여도 언제나 자상한 아빠의 말은 제이미의 기대를 키운다. 그러던 어느 날, 제이미는 따라오지 말라는 아빠의 간청에도 불구하고 찰리의 임무에 동참한다. 아들이 다칠까 두려운 아빠는 속이 타지만, 아빠를 좋아하는 제이미는 신이 난다. 결국 서로를 사랑하는 부자는 죽이 맞는 파트너로 거듭난다.
<아이 노우 유 노우>는 지난 1999년, 데뷔작 <휴먼 트래픽>으로 주목받은 저스틴 케리건 감독의 두 번째 영화다. <휴먼 트래픽>은 마약과 섹스를 찾아 헤매는 영국 청춘의 단면을 거침없이 묘사해 호평받은 작품이다. 이후 10년간 다큐멘터리와 뮤직비디오 연출을 해온 그는 영화연출 복귀작으로 실제 아버지와의 추억을 선택했다. 추억이란 단어가 중요할 것이다. 첩보극을 배경으로 한 버디무비처럼 보이지만 사실 <아이 노우 유 노우>는 아들에 대한 아버지의 사랑과 그에 대한 아들의 연민을 그린 작품이기 때문이다. 드디어 임무에 성공한 아빠는 곧 누군가 우리에게 돈을 주고 미국으로 데려갈 것이라고 하지만, 모습을 드러내는 이는 아무도 없다. 제이미는 실의에 빠진 아빠를 대신해 직접 음모를 파헤치려 하고, 이때부터 조금씩 자신들을 둘러싸고 있는 이상한 상황을 눈치챈다. 아빠에게 지령을 내리고 있던 본부의 정체, 그리고 아빠가 숨기고 있던 비밀이 밝혀지면서 <아이 노우 유 노우>는 부자의 눈물겨운 멜로드라마로 마무리를 짓는다. 제이미를 연기한 애런 풀러와 로버트 칼라일의 사실적인 연기는 첩보극의 긴장과 멜로드라마의 감정을 나름 충실히 전하고 있지만, 각본의 역할을 생각할 때 첩보극으로 보기는 엉성하고, 눈물을 흘리기는 진부하다. 감독의 전작인 <휴먼 트래픽>의 재기발랄한 매력을 떠올려보면 그의 재치보다도 추억에 대한 향수가 강하게 담긴 듯 보인다. 오히려 장르적인 특징보다 눈에 띄는 건 국영기업의 민영화를 추진했던 대처리즘의 이면을 포착한 시선이다. 그 점에 있어서는 <풀 몬티>나 <브래스드 오프>처럼 영국의 경제적 공황상태를 담아낸 선배영화들 못지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