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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공간을 유목하는 길 위의 인간 <경>

홀연, 영화를 보다 당신은 길 위에 있게 된다. 그 길 위에서 만나는 정경에 대해 아름답다는 말 외에 다른 어떤 말을 할 수 있을까. 엄마를 잃은 자매가 있다. 동생은 집을 떠나 남해로 갔고, 언니는 동생을 찾아 길 위를 떠돈다. 실직 청년은 남강휴게소에 머물며 만물상 아저씨와 함께 지낸다. 지역신문사 기자는 늘 카메라에 세상을 담는다. 찰랑거리는 은빛 물결이 굽이 도는 남강휴게소는 이들에게 정주의 공간이 아닌 유목을 위한 잠시 동안의 결절점일 뿐이다. 영화 <>은 뷰파인더 위에 자신의 눈을 싣고 광대한 아시아로 열린 이미지 공간을 유목하는 길 위의 인간을 다룬 영화다. 따라서 줄거리가 중요치 않으며, 이들의 여정 자체가 줄거리이자 상상의 지도가 된다.

영화에 등장하는 청춘들은 언제나 휴대폰과 자동차와 노트북을 갖고 있으며, 이동성 기기란 이들 육신의 확장이다. 로딩하고 주유하고 충전하며 접속한다. 이것이 이들의 삶의 실존을 좌우하는 기본적인 행위다. 육신을 길 위에 개방하고, 시선을 카메라의 뷰파인더에 장착하고, 정신을 웹상의 창(window) 속에 방기한다. 여자의 이름은 정경, 경계, 거울이라는 의미의 경(景, 境, 鏡)이고 남자의 이름은 윈도를 뜻하는 창(窓)이며 아시아 하이웨이를 타고 만주와 몽골로 가려는 다른 여자의 이름은 온아(on-我, 온라인상의 참된 나)다.

현실에서는 궁핍과 실업과 차별과 결여 속에 살아가는 청춘들이 뷰파인더 속에서 초월의 방식을 발견한다. 이들은 모두 영화 <>의 영어 제목인 ‘뷰파인더’(Viewfinder)들, 즉 정경의 탐색자들이다. 남자 창은 윈도를 통해 윈도 윤리와 철학의 세계에 몰두하고, 여자 김박은 카메라의 뷰파인더로 아시아 하이웨이의 이미지를 모은다. 온아의 상상력은 저 멀고 광활한 아시아의 힘에 뿌리내리고 있다. 가령 이런 시선이 있다. 밤의 고속도로를 우아한 리듬으로 느리게 질주하는 장면. 인터넷 접속의 찰나적인 속도감과 대조되는 물리적 시공간을 향유하는 매혹적인 접속과 유영의 순간. 영화 <>은 다큐멘터리와 단편영화를 선보였던 여성영화인이자 영화비평가,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교수인 김정(김소영)의 첫 번째 장편극영화로 인터넷 시대의 신인류이자, 이동성 기기를 신체화한 사이보그이며, 영혼과 육체의 해방을 갈구하는 구도자들을 선보인다. 현실과 가상, 현재와 과거의 이미지들이 켜켜이 중첩되다 이윽고 영화의 후반부에 식민지 여배우의 얼굴이 떠오르는 순간 영화는 납득된다기보다 전적으로 흡수된다. 난해한 상징들을 해석하려 애쓰지 않아도 좋다. 영화 <>은 이해하는 영화라기보다 경험하는 영화다. 숫파니파타! 인식을 믿지 않고 직관을 믿을 때, 영화적 각성은 오래 기다리지 않아도 매 순간 찾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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