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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순] 여자들이여, 이제 배를 당당히 보이자
장영엽 사진 오계옥 2010-04-23

제12회 서울국제여성영화제 상영작 <레드마리아>의 경순 감독

경순 감독의 영화는 늘 ‘쇼크’를 몰고 온다. 그 쇼크의 대상은 우리가 철석같이 믿고 있던 어떤 것이다. 2001년엔 애국심(<애국자 게임>)이, 2003년엔 법(<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이, 2006년엔 가족(<쇼킹 패밀리>)이 그녀에게 함락당했다. 이번 타깃은 여성의 몸과 노동이다. 지난 3년 동안 한국, 일본, 필리핀의 여성들- 가사노동자, 성노동자, 비정규직 노동자, 위안부 출신 할머니 등- 의 일과 사회적 지위를 살펴온 경순 감독은 그 내용을 담은 신작 다큐멘터리 <레드마리아>로 여성을 억압해온 자본주의의 허상을 폭로한다. 여기엔 성매매 여성을 ‘성노동자’로 바꾸어 부르거나, 위안부 출신 노인들을 그녀들과 같은 선상에 놓고 비교를 시도하는 움직임이 엿보인다. 제12회 서울국제여성영화제의 다큐멘터리 옥랑문화상 부문 상영작으로 선정된 이 작품에 대해 경순 감독에게 직접 물었다.

-4월11일 저녁 열린 <레드마리아>의 월드 프리미어 시사회에 갔다. ‘관객과의 대화’ 시간의 절반을 스탭과 배우 소개하는 데 할애하던데. =그래서 권은선 수석프로그래머에게 좀 혼났다. (웃음) 예정에 없었던 행동인데 막상 올라가보니 소개해주고 싶은 사람이 너무 많더라. 이 작품 만들면서 도와준 분들도 고맙고, 우리 스탭들이 정말 자랑스러웠기 때문에. 이야기는 어제(4월12일) 열렸던 국제 워크숍에서 더 많이 했다.

-또 ‘레드’다. 대표로 있는 제작사의 이름도 ‘빨간 눈사람’이고, 지인들은 당신을 ‘빨간 경순’이라 부른다고 들었다. =사실 <레드마리아>란 이름은 내가 즐겨 쓰는 ‘레드’와는 아무런 연관이 없다. 이번에 해외 촬영을 나가보니 외국 사람들이 ‘경순’이란 발음을 잘 못하더라. 그래서 닉네임을 다음 작품에선 뭐라고 정할지 생각하다가 불현듯 ‘레드마리아’는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또 과거에 ‘블랙마리아’라는 단어는 많이 들어봤잖나. ‘레드마리아’ 하면 어딘가 좀 생소한데, 내가 영화에 담고 싶어하는 여성상을 반영한 이름인 것 같다. 기존의 마리아가 아닌, 새로운 여성의 모습을 발견하고 싶다는 의미에서 그런 제목을 붙였다.

-영화를 만들게 된 동기가 궁금하다. =2006년에 <쇼킹 패밀리>를 배급하며 처음 일본에 갔다. 그때 일본 관객과 대화를 나눌 기회가 있었는데 그분들의 말을 들으며 ‘언론에 가짜가 많이 나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일본이 사회도 안정되고 경제가 굉장히 발전한 나라지만 그건 국가와 기업이 챙기는 거고, 그 속의 국민은 최선을 다해 자기 역할만 하다보니 뭔가를 바꾸고 발언해야 하는 상황이 왔을 때 너무 힘들어하더라. 이게 한국만의 문제가 아니구나 싶었다. 그래서 가부장적 특성으로 묶여 있는 아시아의 다른 나라 문제도 함께 봐야겠다, 그럼 어떻게 시작해야 할까, 이 고민이 우선이었다.

-<레드마리아> 인터넷 카페(cafe.daum.net/redmaria3)의 제작일지에선 ‘성(性)노동자’ 친구 얘기를 하며 다른 동기도 언급했었는데. =내 몸을 부끄러워한다는 건, 엄밀히 말하면 과정은 다르지만 결과는 똑같은 거다. 위안부 할머니나 성노동자나 자신의 몸이 더럽혀졌다고 생각한다. 나는 여성 스스로 이렇게 생각하는 시각을 좀 달리 보면 어떨까 싶었다. 자신의 몸을 눈여겨보고 자랑스럽게 복원시키는 작업이 앞으로의 새로운 여성운동을 위해서라도 필요하다고 봤다.

-첫 장면과 마지막 장면에서 여성들의 배를 찍은 사진을 보여주는 것도 몸을 자랑스럽게 복원하는 과정의 일환인가. =그렇다. 배는 여자임을 알리는 중요한 포인트다. 출산, 임신, 양육이 모두 배에서 비롯된다. 그래서 나는 여성들의 배를 자랑스러워하고 싶고, 남들에게 당당하게 보여주고 싶었다.

-하지만 등장인물들에게 배를 보여달라고 설득하는 과정이 쉽지만은 않았을 것 같다. =그렇다. 한국, 일본, 필리핀 3국의 여성 모두 부끄러워하더라. 심지어 김소연 기륭전자분회장도 ‘그것만은 안된다’며 촬영을 거부했다. 그래서 내가 김소연씨한테 그랬다. “야, 너 진보적인 거 아냐. 배도 안 보여주면서. (웃음)” 개방적이면 좋은 거고 아니면 나쁜 건 아니지만, 평소 감췄던 몸의 일부를 드러내는 데에 있어서 부끄러워하는 감정은 모두 마찬가지였다. 결국 내가 배를 다 드러내놓고, 옷도 벗고 하면서(웃음) 자연스럽게 촬영할 수 있었지만.

-굳이 한국, 일본, 필리핀이라는 국가를 촬영 대상으로 선택한 이유가 있나. =자본주의가 발전한 나라에서는 과연 여성의 지위도 그만큼 발전했나 하는 의문이 들었다. 그래서 일부러 경제적 차이가 나는 국가를 선택했다.

-여성의 지위를 지켜내기 위해 사회에 맞서 싸우는 방법에서 세 나라의 스타일이 어떻게 다르던가. =일단 한국은 집단이 확실히 강하다. 기업별로 노동조합이 형성되어 있기 때문에 동지애가 있고, 추진력이 빠르고, 에너지가 넘친다. 한국에 장기투쟁하는 사업장들이 많은 것도 싸움을 함께 이끌어나가기 때문이다. 반면 일본은 노조에 개인이 가입하는 방식이 많다. 찾아가도 노조쪽에서 여성노동자의 고충에 대해 콧방귀도 안 뀐다고 하더라. 다른 경우도 보니 주로 개인이 재판을 통해 해결하는 방식이고. 그래서 일본은 한국의 투쟁방식을 굉장히 부러워한다. 필리핀은 아예 노조가 없다. 당장 먹고살기 힘든 사람들이 많은 입장이라 그런 활동이 어렵다. 하지만 재밌는 건 투쟁의 경험이 많기 때문에 지역별 커뮤니티가 잘되어 있다는 거다. 주민끼리는 여러 가지 생산적인 고민들을 공유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일본, 필리핀 등 다른 나라 사람들을 촬영하면서 가장 어려웠던 점은 뭐였나. 문화적 차이? 의사소통? =말이 가장 힘들었다. 내가 그들의 대화를 하나도 못 알아들었다는 사실을 말해야겠다. 방송 다큐멘터리야 인터뷰할 사람이나 콘티가 완벽히 준비된 상태로 현지에 가지만, 독립영화의 경우 그럴 여력이 안된다. 필리핀의 타갈로그어는 아예 통역해줄 사람이 없었고, 만약 있다고 해도 갑자기 쏟아져나오는 그들의 말을 바로바로 통역해줄 수는 없었을 것이다. 또 촬영 분량이 너무 많아서 밤에 숙소에 돌아와 녹화 분량을 보며 번역하기에도 시간이 벅찼다. 사실은 영화가 완성된 지금까지도 번역이 다 안 끝났다. (옷음)

-그럼 대체 어떤 기준으로 촬영을 진행한 건가. =기본적으로 누구를 찍어야 한다는 설정은 있었지만, 어떤 장면을 찍느냐는 순간적으로 선택했다. 나는 그들의 눈빛을 보고 판단했다. 저 사람이 뭔가 심각한 얘기를 하는 것 같다, 저 사람은 뭔가 반문을 하고 있을 거야. 그저 얼굴 표정을 보고 쫓아가는 거지. 그래서 아쉬운 부분은 갑자기 (사람들을) 따라가느라고 카메라가 흔들리는 장면이 많았다는 거다.

-편집된 장면들을 보면 마치 다 알고 찍은 듯한 느낌이 나던데. (웃음) 벌써 제작한 다큐멘터리영화가 여섯편이다. 이제 촬영의 접근 방식이나 새로운 사람들을 대하는 면에 있어서 어떤 노하우가 생겼을 법도 한데. =이건 노하우라기보다는 특징인데, 내가 좀 공사 구분이 없다. 빨간 눈사람의 최하동하 공동대표가 만날 나한테 그랬다. “아니, 사람이 뭐 이렇게 공과 사가 구분이 없어?” (웃음) 동하는 또 꼼꼼하잖아. 나는 많이 덜렁거리는 편이고. 그런데 그게 사람들을 만날 때는 개인적으로 도움이 되는 것 같다. 나는 항상 누군가를 만난다고 하면 기대하고 들떠 있기 때문에 사람을 만나는 게 부담스럽지 않은 듯하다. 노하우라고 하면…. 치고 빠질 때를 알게 됐다는 거? (웃음) 다큐멘터리를 만들다보면 어쩔 수 없이 출연진과의 문제가 생긴다. 다가가는 데 시간이 걸린다든지, 기술적인 문제가 생긴다든지. 화내지 말아야 할 타이밍과 기다리는 타이밍 조절이 경험상 더 익숙해진 건 있다.

-영화를 찍는 3년 동안 해외 체류가 많았을 텐데, <쇼킹 패밀리>에 출연했던 딸 수림양은 엄마의 부재에 대해 뭐라고 하지 않던가. =사실 <레드마리아>를 찍을 때 수림이를 아예 필리핀에 데리고 갔다. 본인은 가기 싫어했다. 얘는 한국 친구들과 헤어지기도 싫고, 어디서 필리핀 위험하다는 소리를 들어와서 안 가겠다고 하다가 결국 내가 화내고 협박해서 데리고 갔다. 그런데 얘가 또 막상 어디에 가면 적응을 잘하는 타입이라, 금세 적응을 하더라. 참, 2주 전에 필리핀에서 고등학교 졸업하고 한국에 왔다. 흥미롭게도 <레드마리아>가 마무리되는 시점에 딸도 학교가 끝났다.

-어떻게 보면 <레드마리아>가 수림양의 인생도 바꿔놓은 건데, 이번 상영회를 보고 딸의 반응은 어땠나. =영화 시작 전에 와서 전단지도 나눠주고, 스탭들도 도와주고 했는데 막상 영화는 자기 취향이 아닌가 보더라. (웃음) 수림이랑 나는 취향이 다르다. 여전히 수림이는 보아와 소녀시대를 좋아하고, 영화도 일반 극장에서 보는 상업영화를 좋아한다. 하지만 서로 그런 점에 대해 간섭을 안 하기 때문에…. (웃음)

-‘여성과 노동’이란 영화의 주제를 인용하자면, 본인은 지금 여성영화인으로서 노동하고 있다. 한국에서 독립영화 다큐멘터리 감독으로 살아간다는 건 어떤가. =아, 어렵구나. 다음 영화 만들 때는 더 힘들어지겠구나. 그런 생각이 든다. <레드마리아>는 정말 어렵게 찍었다. 친구 집에서 합숙하며 스탭들 모으고, 인디스토리 사무실을 두달 동안 빌리고, 서울영상위원회에서 카메라를 제공받고 필리핀 촬영도 도움받고. 일본을 촬영할 때는 아예 방법이 없어서 영화를 후원하는 제작위원을 꾸려서 도움을 받았고. 국내 촬영할 때는 여성영화제의 옥랑문화상 지원을 받았고. 한마디로 말하자면 ‘저기서 뭐 받으면 이거 갚을게’ 식으로 완성된 영화다. 한 기자가 <레드마리아>는 언제 개봉하냐고 물어보던데, 내가 이거 개봉 되겠냐고 그랬다. 최근 독립영화 전용관도 줄어들고 있고, 이런 사회적 변화들이 일하는 환경에 큰 영향을 미치는 듯하다.

-늘 영화로 사회적 편견과 싸워왔다. 다음 투쟁 대상은 뭔가. =막연한 생각엔 비슷한 공간에 살았던 다른 시대 사람들의 이야기를 하고 싶다. 그런데 일단은 내 몸과 화해하는 시간을 가지려 한다. (웃음) 영화 제작기간이 길어지다보니 몸 안에서 투쟁이 일어나고 있다. <레드마리아>의 사운드나 내용도 한번 더 깔끔하게 손봐야 할 듯하다. 그러다보면 몇달이 후딱 지나가지 않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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