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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전을 뛰어넘는 리메이크 <크레이지>
김도훈 2010-04-07

synopsis 미국의 작은 소도시. 사람들이 미쳐간다. 평범한 노인이 야구장에 총기를 들고 난입했다가 보안관 데이빗(티모시 올리펀트)에게 사살당하는 것을 시작으로 마을 사람들이 광인으로 변해 무차별적 살인을 저지른다. 알고 보니 마을 어귀에 추락한 군수송기에서 치명적인 광기 바이러스가 새어나왔기 때문이다. 정부는 군부대를 투입해 도시를 폐쇄하고 모든 생존자를 수색해서 처단하기 시작한다. 데이빗과 임신한 아내(라다 미첼) 일행은 미치광이들과 군대의 광기를 피해 탈출을 꾀한다.

<크레이지>는 좀비 장르의 거장 조지 A. 로메로 감독의 <분노의 대결투>(The Crazies, 1973)를 리메이크한 작품이다. 그런데 <분노의 대결투>가 로메로의 가장 좋은 영화였던가? 글쎄. 컬트팬이 꽤 있는 영화이긴 하지만 로메로의 대표작으로 거론할 만한 영화는 아니다. 다만 요즘 리메이크하기에는 아주 적절한 영화다. 비밀스런 공권력, 치명적인 바이러스, 새롭게 업그레이드된 좀비 등 여기에는 21세기 호러 트렌드의 모든 것이 들어 있다. 조지 A. 로메로 자신이 직접 리메이크 제작을 진두지휘한 이유도 그 때문일 거다.

문제는 감독 브렉 아이즈너다. 그는 월트 디즈니 전 회장 마이클 아이즈너의 아들이다. 전작이 2005년 개봉한 모험영화 <사하라>라는 게 못 미더운 장르팬도 꽤 있을 거다. 다만 세상의 모든 아들이 아버지를 닮는 건 아니고, 제이슨 라이트먼처럼 아버지의 재능을 뛰어넘는 자식도 종종 있다. 게다가 아이즈너는 데이비드 크로넨버그의 1979년작 <브루드>(Brood)를 리메이크할 예정이다. 디즈니 회장의 아들이기 이전에 호러 장르를 아끼는 감독이란 소리다. 아이즈너의 장르적 감수성은 연속되는 스릴러 시퀀스들을 보면 금방 눈치챌 수 있다. 오래된 이층집, 자동 세차장 등 일상적인 공간을 이용한 영화의 스릴러 시퀀스들은 웨스 크레이븐 같은 장르 대가들에게서 제대로 배운(혹은 훌륭하게 베낀) 티가 난다. <크레이지>는 스릴러 시퀀스들을 연속적으로 밀어붙이며 관객이 손톱을 물어뜯게 만드는 재주로 가득하다.

<크레이지>는 (직접적인 연관은 없지만) 스티븐 킹의 작품을 좋아하는 장르팬들에게도 꽤 재미있을 법한 영화다. 이건 미치광이 좀비들이 등장하는 로메로적 세계이기도 하지만, 미국의 소도시를 배경으로 바이러스와 음모를 엮어내는 스티븐 킹(특히 <셀>과 <스탠드>)적인 세계이기도 하다. 특히 방독면을 쓴 군부대가 마을 사람들을 총살하고 불사르는 장면을 무심하게 원경으로 비추는 장면은 할리우드영화답지 않게, 혹은 아우슈비츠 학살극답게 섬뜩하다. <크레이지>는 클래식에 대한 제대로 된 경배인 동시에 드물게 원전을 뛰어넘는 리메이크다. 프랭크 다라본트의 <미스트>나 (역시 로메로의 고전을 리메이크한) 잭 스나이더의 <새벽의 저주>에도 비견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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