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ynopsis 타이 주재 니혼신문기자 난부(에구치 요스케)는 일본 아이가 조만간 타이에서 불법 장기이식수술을 받는다는 정보를 접하고 취재를 시작한다. 충격적인 것은 심장 제공자가 살아 있는 아이라는 사실이다. 그러니까 살아 있는 아이를 살해한 다음 그 심장을 일본 아이에게 이식한다는 뜻이다. 한편 방콕 사회복지센터에 자원봉사자로 찾아온 케이코(미야자키 아오이) 역시 타이 아이들이 처한 비참한 현실 앞에서 고민한다. 난부는 프리랜서 사진작가 요다(쓰마부키 사토시)를 끌어들여 끔찍한 장기매매의 현장을 포착하려 한다.
재일동포 작가 양석일의 소설을 읽어온(혹은 그의 작품이 영화화된 <피와 뼈> <달은 어디에 떠 있는가>를 본) 관객이라면 대략 짐작할 수 있다. 이 작가가 들여다보는 현대 일본의 텅 빈 공동이 얼마나 끔찍하고 가차없는지. 그는 전후 일본을 뒤덮은 광기가 어떻게 시스템화되는지, 그것이 개인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며 시공간을 넘어 어떻게 연쇄적으로 대물림하는지를 누구보다 정확하게 응시할 줄 아는 괴물 같은 작가다. 그리고 <어둠의 아이들>에 이르러선 일본에서 벗어나 타이로까지 그 시야를 넓힌다. 그는 아시아 내에서 먹고 먹히며 서로 이용하는 탐욕의 무시무시한 연쇄고리를 픽션의 이름을 빌려 돌출시킨다. 그의 작품을 영화화한 사카모토 준지의 <어둠의 아이들> 역시 작가의 명성에 눌리지 않은 채, 관객에게 아부하거나 위로를 건네려 하지 않는다. 적어도 영화 <어둠의 아이들>은 두려움과 혐오감과 자학을 떨쳐낸 채 스스로의 치부를 응시한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그래서 충격적이다.
영화 속 끔찍한 상황, ‘살아 있는 아이’를 죽여 그 장기를 판다는 불법은 타이 내 아동인신매매, 소아성학대, 마약 등을 아우르는 거대 조직이 주관한다. 여기에는 부패한 경찰과 그 연쇄고리에서 성장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또 다른 역할을 자임하며 과거를 반성하지 않는 현지인들이 얽혀 있다. 그리고 일본인을 비롯하여 제1세계에 속하는 각종 서양인들은 이 상황을 거리낌없이 즐긴다. 스스로의 욕망이나 권리에 가장 큰 가치를 두는 종류의 인간들은 그만큼 타인의 욕망이나 권리에 대해선 무관심하다. 영화 속에서 성적 학대를 당하는 아이들만을 최악의 비주얼로 꼽으면 안된다. 이를테면 시골 곳곳에서 팔려온 아이들을 한데 인솔하는 과정에서, 마치 엄마와 놀러나온 것처럼 보이는 광경이 연출된다. 여성 심부름꾼들이 아이들을 감싸안고 승합차쪽으로 가까이 가면, 조직원이 여성들에게 슬그머니 돈을 쥐어준다. 그 순간의 절망감은 어마어마하다. 모든 단계에는 돈이 필요하다. 모든 가치는 그렇게 돈으로 환산된다. 영화 한편으로 세상이 바뀔 순 없더라도, <어둠의 아이들>을 보는 관객이 시장경제의 최악의 진화 형태를 인식하게 된다면 그것이야말로 영화가 해낼 수 있는 사회적 책무의 소중한 성취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