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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러리스트로 변한 경찰 <무법자>
이영진 2010-03-17

synopsis 강력계 형사인 오정수(감우성)는 살인을 저지르고서도 뻔뻔하게 얼굴을 들고 다니는 용의자를 마주하고 치를 떤다. 그의 분노는 해당 사건의 피해자인 지현(이승민)에 대한 연민으로 변하고, 얼마 뒤 오정수는 지현과 결혼식을 올린다. 그러나 정수와 지현의 달콤한 신혼생활은 오래가지 못한다. 지현은 살인마가 감옥에서 정수에게 보낸 편지를 우연히 발견한 뒤 잊었던 과거의 고통에 시달리고, 결국 정수 곁을 떠난다. 몇년이 흐른 뒤, 오정수는 애타게 찾던 아내와 딸의 주검을 마주하고 복수를 결심한다.

김성종이 쓴 <일곱개의 장미송이>라는 추리소설이 있다. 성폭행당한 아내가 자살하자, 소심하고 유약한 남편이 용의자를 찾아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식으로 복수를 감행한다는 내용이다. 추리소설의 범주에 속해 있으나 <일곱개의 장미송이>는 복수극의 쾌감이 더 크다. 미대 출신인 아내가 그려놓은 몽타주를 바탕으로 범인들을 뒤쫓는 남편은 독자들의 예상을 뛰어넘는 잔인한 피의 복수를 보여준다. 주인공의 직업이 다르긴 하지만 <무법자>는 <일곱개의 장미송이>를 연상케 하는 구석이 있다. 가족을 잃은 오정수에게 법은 멀고 주먹은 가깝다. 법은 도처에서 일어나는 잔인한 폭력을 막지 못한다. 죗값을 치러야 할 이들을 응징하지도 못한다. 죗값에 대한 심판은 오로지 폭력으로만 가능하다. 오정수가 경찰복을 벗고 칼을 든 이유는 그 때문이다.

아내와 딸의 죽음에 대한 복수심만으로, 법을 지키겠다고 맹세한 오정수가 테러리스트로 갑자기 변신하는 건 무리일지 모른다. 첫 시퀀스. 인면수심의 패거리가 여성들을 집단 성폭행한다. 적나라한 폭력 묘사는 눈살을 찌뿌리게 하는 정도를 일찌감치 넘어선다. 숨어살던 아내와 딸이 결국 남편과 아빠를 만나지 못하고 화장실에서 마약쟁이들에게 처참하게 칼에 찔려 죽는 장면도 마찬가지다. 핏빛으로 도배된 스크린은 응시하기조차 어렵게 만든다. 잔혹하기 짝이 없는 ‘묻지마 살인’을 최대한 자세하게 전시함으로써 <무법자>는 오정수의 앙갚음을 대부분 정당화한다. 물론 오정수에게 폭력과 윤리 사이에서 고민할 시간이 전혀 제공되지 않는 건 아니다. 하지만 잠깐이다. <무법자>는 친절한 혹은 간편한 내레이션으로 오정수가 좀더 빠르게 결단을 내리기를 촉구한다.

폭력의 연쇄를 제하고 나면, <무법자>의 드라마는 앙상하다. 죄과를 인정하지 않는 뻔뻔한 자들의 얼굴을 마구 짓이겨주면 된다. 오정수가 누구를 곤죽으로 만들지 관객도 다 알고 있으니, 미스터리 요소를 뒤늦게 양념처럼 끼워넣을 수도 없다. 마지막 경찰과의 대치장면도 세상을 향한 훈계와 설교로 채워진다. 주변 캐릭터들을 전혀 활용하지 못한 건 <무법자>의 패착이다. 오정수에게 호감을 갖고 있는 동료 형사 소영(장신영), 오정수의 친구이자 신부인 성철(최원영)은 어떤 반향도 일으키지 못하고 폭력의 인과관계에서 단순한 수행자에 머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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