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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스린 비글로] 지칠 줄 모르는 액션본능
김도훈 2010-03-04

<허트 로커>의 캐스린 비글로 감독

캐스린 비글로는 오랜만에 역작을, 아니 일생일대의 걸작을 만들었다. 그러나 죄송하게도 제임스 카메론 이야기를 먼저 좀 하고 넘어가야겠다. 캐스린 비글로는 1989년부터 91년까지 제임스 카메론의 두 번째 부인이었다. 그의 첫 번째 부인은 <터미네이터> <에이리언2> 등의 블록버스터를 제작한 80년대의 거물 제작자 게일 앤 허드, 세 번째 부인은 카메론이 창조한 여전사 린다 해밀턴이다. 이쯤되면 카메론이 여전사 혹은 여장부에 끌리는 타입 혹은 현실에서도 리플리와 살고 싶어 하는 남자라고 유추할 수 있겠다. 한편 린다 해밀턴은 이렇게 말했다. “카메론은 결혼을 해서는 안되는 남자다. 그는 결혼생활이라는 것 자체를 이해하지 못한다.” 그래도 카메론과 비글로는 여전히 돈독한 우정을 나누는 친구다. 이혼 5년 뒤에 카메론은 비글로의 <스트레인지 데이즈>의 각본을 쓰고 제작에 참여한 적도 있다. 그러나 카메론은 비글로가 일생의 걸작을 들고 자신의 오스카를 노릴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을 거다. 이번 오스카를 한마디로 말하자면 전남편과 전부인의 결투다. 태평양 건너에서 쏟아져 나오는 오스카 예측 기사들을 구글로 검색해보시라. 심지어 이런 제목의 기사도 있다. 전부인의 역습.

58살이지만 난 죽지 않았어

캐스린 비글로는 드문 여성감독이다. 남자(특히 에고가 좀 심하게 강한 마초)로 가득한 할리우드에도 썩 괜찮은 여성감독들은 있다. 낸시 마이어스와 페니 마셜, 그리고 소피아 코폴라. 비글로는 이들과 다르다. 비글로는 장르영화 감독이다. 그것도 액션영화 감독이다. 그녀는 서부극과 뱀파이어 장르를 마구 엮어낸 <죽음의 키스>(1988)로 데뷔한 이후 제이미 리 커티스를 여전사로 만든 <블루 스틸>(1990)과 (지금도 한국 남자들이 일생일대의 액션영화 중 하나로 손꼽아 마지않는) <폭풍 속으로>(1991)를 만들었다. 그 영화들은 아드레날린을 펌프질하는 액션영화를 여성감독도 너끈히 만들 수 있다는 드문 증거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글로는 끊임없이 자신의 성별을 영화적 능력과 연결하려는 영화계 안팎의 저항에 맞서야 했다. “여성감독에 대한 어떤 저항이 존재한다면 나는 두 이유로 그걸 무시하겠다. 첫째, 내 성별을 바꿀 수는 없다. 둘째, 절대로 영화 만들기를 멈출 생각이 없다. 누가 왜 영화를 만드는가를 따지는 건 당치도 않은 일이다. 사람들은 여자가 영화를 감독하는 것도 가능하다는 사실을 잘 모를 뿐이다. 그건, 가능하다.”

비글로의 경력은 카메론이 참여한 사이버펑크 SF스릴러 <스트레인지 데이즈>의 실패와 1억달러를 들인 잠수함 블록버스터 <K-19>(2002)의 실패로 종말을 맞이하는 듯했다. 두 영화로 지나치게 큰돈을 잃었다. 할리우드의 공공연한 비밀 중 하나는, 여성감독의 실패에 구원은 없다는 거다. 일레인 메이는 워런 비티, 더스틴 호프먼, 이자벨 아자니가 출연한 당대의 블록버스터 <사막 탈출>을 연출했다가 비평과 흥행에서 재난을 맞이한 뒤 영화계에서 종적을 감췄고, <딥 임팩트>의 미미 레더 역시 <아름다운 세상을 위하여>의 실패 이후 TV계로 강등당했다. 그런데 비글로의 실패작들이 그렇게 끔찍했나? 꼭 그렇지는 않다. <K-19>이 할리우드 역사상 최악의 흥행 실패작 중 하나이긴 하지만 감독의 경력을 7년이나 멈춰세울 졸작은 아니었다(그렇다면 <컷스로트 아일랜드>를 만든 레니 할린은 영원히 메가폰을 압수당해야 옳지 않은가). 적어도 비글로는 재미있는 잠수함 영화를 만들었다. 볼프강 페터슨의 <특전 U보트>에 비할 바는 아니겠지만 조너선 모스토의 <U-571>과는 충분히 겨룰 만하지 않은가 말이다. 어쨌거나 <K-19> 이후 7년간 영화를 만들지 못한 비글로가 무명 배우들을 데리고 이라크가 무대인 저예산(제작비 1100만달러) 액션영화를 만든다는 소문이 들렸을 때 진정으로 귀를 기울인 사람은 거의 없었다. 모두가 틀렸다. 캐스린 비글로는 자신의 최대 걸작이자 이라크전을 다룬 가장 훌륭한 상업영화를 만들어냈다.

가장 비글로스러운, 가장 예술적인

<허트 로커>는 이라크 참전 중인 미군 폭탄제거팀의 이야기다. 폭탄제거에서 삶의 의미를 찾는 주인공인 윌리엄 하사(제레미 레너)를 중심으로, 영화는 이라크의 현재와 파병 군인들의 정신상태를 집요하게 파고든다. 그런데 <허트 로커>가 오스카 최우수작품상 후보로 오르리라 예견한 사람은, 적어도 2008년 베니스영화제에서 첫 공개될 당시에는 없었다. 그건 <허트 로커>가 작정하고 이라크전의 치부를 파헤치고 전쟁의 참상을 애도하기 위해 만들어진 영화가 아니라 그저 재미있으라고 만든, 끝내주는 장르영화이기 때문이다. 이 영화를 두고 비글로가 갑자기 심적으로 성숙한 감독이 됐다고 말하는 건 옳지 않다. 비글로는 여전히 비글로다. 그녀는 그냥 아드레날린이 솟구치고 손바닥에서 땀이 샘물처럼 솟아나고 좌심실, 우심실이 박동하는 비글로식 액션영화를 만들었다.

주인공인 윌리엄은 자신의 직업에 회의를 느끼거나 한명의 생명을 구하는 데 목숨을 느끼는 타입도 아니다. 그는 그저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직업이 주는 스릴 자체에 중독된 남자다. 바로 거기서 <허트 로커>는 지금껏 만들어진 다른 이라크전 영화들보다 훨씬 뻔뻔하게 정직해진다. 비글로는 말한다. “솔직히 까고 말해보자. 전쟁의 더러운 비밀 중 하나가 뭔지 아나? 어떤 남자들은 전쟁 자체를 정말로 사랑하고 즐긴다는 거다. 나는 그걸 바라보고 해독하고 싶었다. 21세기 전투의 컨텍스트에서 영웅이 된다는 게 대체 어떤 의미인지를 말이다.” <허트 로커>는 순수한 장르영화가 정말 순수한 경지에 이르면 작가영화가 될 수 있다는 명쾌한 증거처럼 보인다. 마치 두기봉의 영화처럼.

누군가는 물을 거다. 혹시 캐스린 비글로가 너무 늦은 나이에 새로운 전성기를 되찾은 건 아니냐고. 시나리오작가 마크 볼의 증언을 들어보자. “요르단 사막의 촬영현장에는 마초 사내들이 엄청 많았다. 영국 SAS 특수부대 출신도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르단의 사막에서는 모두가 나가떨어졌다. 나는 사막의 언덕을 차로 올라가고 있었다. 미치지 않고서야 걸어 올라갈 생각은 없었다. 자동차로 언덕을 오르는데 길 한쪽에서 스탭 한명이 토하고 있었다. 모든 스탭들이 언덕을 오르며 죽어가고 있었다. 그런데 자동차로 꼭대기에 올라갔더니 비글로가 제일 먼저 도착해 있었다. 걸어서 말이다. 그녀는 모든 마초 사내들을 완전히 제쳤다.” 주연배우 제레미 레너도 증언한다. “나는 젊고 몸도 건강하다. 그런데도 사막에서는 완전히 기력이 떨어졌다. 그런 상황에서 비글로는 낙타에게 사과를 먹이면서 고등학생 소녀처럼 사막을 막 뛰어다녔다.” 캐스린 비글로는 58살이다. 일생일대의 역작을 만들었다. 어쩌면 오스카를 전남편의 손에서 앗아갈지도 모른다. 더 중요한 사실이 하나 있다. 그녀는 여전히 아드레날린을 뿜어내는 액션영화 만들기의 스릴에 중독된 상태다.

<허트 로커>에 이르기까지 감독 캐스린 비글로의 여섯 가지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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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뱀파이어 장르를 현대적으로 뒤범벅한 1987년작 <니어 다크>(Near Dark)를 감독. 초보 감독다운 연출에도 불구하고 컬트적인 인기를 서서히 불려나가기 시작. 비글로는 마침내 할리우드 제작자들의 부름을 받음.

2. 1989년 <어비스>를 찍고 있던 제임스 카메론과 결혼. 제이미 리 커티스 주연의 액션영화 <블루 스틸>(1990)을 감독해 특히 페미니즘 비평가들의 호평을 받아냄. 사진은 젊은 카메론과 비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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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제임스 카메론이 제작자로 참여한 액션영화 <폭풍 속으로>(1991)로 커리어 사상 최대의 성공을 거둠. 그러나 제임스 카메론과는 이혼. 어쨌거나 <폭풍 속으로>는 <허트 로커> 이전까지 캐스린 비글로의 대표작으로 남음.

4. 전남편 제임스 카메론이 시나리오를 쓰고 제작에 참여한 사이버펑크 스릴러 <스트레인지 데이즈>(1995)가 비평과 흥행에서 큰 실패를 거둠. 4200만달러를 들여 800만달러를 벌어들인 이 영화는 카메론이 제작한 영화 중 가장 손실이 큰 영화로 기록됨. 영원히 그럴 가능성도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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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5년 만에 규모가 작은 스릴러영화 <웨이트 오브 워터>(2000)를 감독하며 복귀. 숀 펜과 엘리자베스 헐리가 출연한 영화에서 캐스린 비글로는 여전히 섬세한 감정을 묘사하는 데 큰 소질이 없다는 걸 증명.

6. 1억달러 예산의 잠수함 블록버스터 <K-19>를 2002년에 연출. 박스오피스에서 겨우 3500만달러를 벌어들이며 장렬하게 침몰. 이 영화 이후 비글로가 감독직에 복귀하기까지 무려 7년의 세월이 소요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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