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ynopsis 꽃집 주인인 제네비브(니아 바르달로스)에게 사랑은 즐겁기만 한 것이다. 어떤 남자든 5번의 데이트로 관계를 정리하는 그녀에게 밀고 당기기의 스트레스나 이별의 상처 따위가 있을 리 없기 때문이다. 어느 날 그녀는 동네에 스페인 식당을 개업한 그레그(존 코벳)와 새로운 데이트를 시작한다. 연애를 할 때마다 번번이 차였던 그에게도 상처받을 일 없는 제네비브와의 만남은 꽤 합리적인 데이트다. 문제는 만남이 거듭될수록 서로에게 빠진 이들이 결국 데이트의 룰을 어기고 싶어지는 데에서 비롯된다. 하지만 여전히 상처를 두려워하는 두 남녀 중에 먼저 룰을 깨려고 나서는 사람이 없다는 게 더 큰 문제다.
어디선가 많이 본 커플이라면 제대로 본 거다. 영화 <나의 그리스식 웨딩>에서 결혼식을 올렸던 두 배우, 니아 바르달로스와 존 코벳이 다시 만났다. 문화적 차이로 해프닝을 겪었던 이들이 이번에는 사랑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갈등을 빚는다. 사랑에 빠질수록 상처는 크다고 믿는 제네비브는 언제나 먼저 남자를 차버렸다(사실 도망쳤다). 그레그 또한 상처받는 게 싫어서 언제나 거리를 둔 사랑을 해온 남자다. 밸런타인데이를 혐오하는 사람들이 실상 남들보다 밸런타인데이에 대한 애착이 크게 마련인 것처럼 이들 또한 사랑에 있어서 본심과 행동이 다른 미성숙한 어른들이다. 5번의 데이트는 그들이 찾은 가장 안전한 사랑의 방식이다.
제목에서부터 밸런타인데이용 데이트영화임을 선언한 <헤이트 발렌타인데이>는 딱 데이트영화만큼만 보기 좋은 영화다. 5번의 데이트 동안 서로의 공통점과 다른 점을 찾고, 그 차이를 인정하고, 키스를 나누는 모습에 거부감이 들 리는 없다. 5번만 만나기로 했던 두 남녀가 6번째 이후의 데이트를 꿈꾸리라는 것 또한 로맨틱코미디다운 수순이고, 결국 상처받지 않으려 정해둔 룰이 그들의 발목을 잡는다는 것 역시 이 장르가 즐겨 파는 함정일 것이다. 두 남녀를 기어이 맺어주려는 주변 친구들의 오지랖에 가까운 소동도 당연히 빠질 수 없다. 하지만 공식에 충실한 나머지 디테일한 감정변화를 소홀히 대한 건 아쉬운 점이다. 자존심 때문에 먼저 고백하지 못했던 이들이 드디어 행동을 결심할 때도 영화는 성급히 다음 단계로 나아가려고만 할 뿐이다. 게다가 두 남녀가 데이트의 룰을 가지고 벌이는 공방으로만 에피소드를 채워놓은 것도 각본과 연출까지 맡은 니아 바르달로스의 게으름이 엿보이는 부분이다. 밸런타인데이가 행복한 이들이나 두려운 이들이나 공감이 클 이야기겠지만, 이 방면의 고수들이 먼저 떠오르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의 각본을 쓰고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를 연출한 노라 에프런이 대표적으로 떠오르는 이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