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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신기자클럽] 갱스터 에픽 <흑사회>

최근에야 나는 두기봉의 <흑사회>(2005)와 <흑사회2>(2006)를 볼 기회가 있었다. 영화는 고색창연한 홍콩 조직깡패 사회를 보여준다. 조직의 연장자들이 2년에 한번씩 만나 새 회장을 선출한다. 이 과정은 필연적으로 마찰을 일으킬 수밖에 없다. 이 영화들은 지난 십년간의 홍콩영화 중 최고작으로 오래도록 기억될 것이다. 두기봉은 그의 감독 경력에서 많은 갱스터영화를 만들어왔지만 이 두 작품에서는 훨씬 더 큰 무엇인가를 건드리려는 노력을 보여준다.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의 <대부> 같은 갱스터 에픽을 노린 것 같다.

갱스터 에픽은 보통의 갱스터영화와 달리, 피겨스케이팅의 트리플-트리플 점프처럼 특별하다고 볼 수 있다. 섬광처럼 번쩍이며 굉장히 영화적이고 많은 테크닉을 사용해서 완벽하게 뽑아낼 수 있어야 한다. 갱스터 에픽은 근본적으로 권력과 그 주위에 형성된 복잡한 관계성을 다룬다. 많은 캐릭터를 다루면서 갱스터 에픽은 개별 인물들의 성공과 몰락뿐만 아니라 권력 그 자체의 메커니즘을 보여준다. 어떻게 권력이 획득되고 상실되는가, 어떻게 팔리고 탈취되는가 등. 필연적으로 이런 영화들은 사회를 향해 무언가 발언한다. 정치영화도 비슷한 맥락을 갖고 만들어진다(오토 프레밍거의 <워싱턴 정가>가 연상된다). 그러나 갱스터에 대한 영화는 정치인에 대한 영화보다 어떤 면에서든 훨씬 영화적이다. 누아르 미학, 잔혹한 폭력, 갱스터사회를 지배하는 불안정한 규칙(반대로 한 나라의 법은 덜 가변적이다)은 영화적인 잠재성이 높아서 미래에도 갱스터 장르는 계속 살아남으리라 생각할 수 있다.

한국에서 조직 폭력배는 이창동의 <초록물고기>에서 조진규의 <조폭마누라>, 유하의 <비열한 거리> 등 다양한 장르영화에서 익숙한 인물로 등장한 바 있다. 이중 몇몇 영화는 굉장히 뛰어난 작품이지만 아직 한국에서 제대로 된 갱스터 에픽은 나오지 않았다. 에픽의 널리 바라보는 압도적이고 차가운 시선과는 달리 한국 갱스터영화는 유난히 개인적 시선에서 이야기를 풀어왔다. 이 영화들은 한명의 주인공이 위험한 갱스터의 위계 관계라는 미로를 헤쳐나갈 때 관객이 주인공의 운명을 따라가도록 만들어졌다. <흑사회>는 이와 달리 여러 강한 캐릭터를 보여주면서 우리가 누구의 편을 들어야 할지 모르도록 내버려둔다. 영화가 특정 인물과 동일시하는 것을 거부하면서 다음에 어떤 일이 일어날지 예측할 수 없게 만들어간다. 한국 갱스터영화에서 가장 카리스마가 강한 인물이 죽으면 그 영화는 끝난다. 그러나 <흑사회>에서 관객의 주된 관심은 조직 그 자체에 있으므로 영화는 계속된다.

두기봉 감독이 조직 폭력배 사회의 내부를 해부한다고 하면, 한국 감독들은 좀더 멜로드라마적인 본능으로 이야기를 풀어간다. 잔혹한 폭력, 운명적인 배신과 극적인 뒤집기 등이 영화의 결말에서 일정한 비극적 정서를 만들어낸다. <흑사회>와 <비열한 거리>는 겉으로는 비슷해 보이지만 여러 면에서 완전히 반대라고 생각할 수 있다. 이 패턴에서 가장 멀리 떨어져나온 영화가 김지운 감독의 이상하게 내면적으로 성찰적인 영화 <달콤한 인생>이다. 이 영화만이 모든 면에서 <흑사회>에 필적할 만하다. 그러나 이 훌륭한 영화조차 에픽이라 불릴 수는 없다. 한국 감독들은 분명 갱스터 에픽을 만들 수 있는 재능과 감성을 갖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과연 한국 갱스터 에픽을 볼 수 있게 될까?

<흑사회>와 <흑사회2>가 완벽한 영화는 아니지만 한국 감독들은 이 영화를 보면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을 것이다. 그런 면에서 두편의 영화 모두 한국에서 개봉되지 않은 것은 유감이 아닐 수 없다.

번역 이서지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