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리석은 여자> La mujer sin cabeza
2008년 감독 루크레시아 마르텔 상영시간 89분 화면포맷 2.35:1 아나모픽 음성포맷 DD 2.0 스페인어 자막 영어 출시사 스트랜드 릴리싱(미국)
화질 ★★★☆ 음질 ★★★ 부록 ★★★
귀족과 부르주아가 드라마와 코미디를 장식하던 시절,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존재인 ‘유한계급’은 손가락질하기에 딱 좋은 대상이었다. 에리히 폰 스트로하임과 에른스트 루비치가 비슷한 시기에 연출한 <어리석은 아낙네들>(1922)과 <혼인 관계>(1924)는 전후 유럽사회의 부패한 상류층의 적나라한 초상으로서, 주로 나태하고 한심한 부인들을 공격하고 비웃는다. <어리석은 아낙네들>은 몬테카를로를 방문한 미국 사절의 부인이 돈을 노린 가짜 러시아 귀족의 꾐에 넘어가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국제적인 난봉꾼의 얄팍한 매력에 정신을 잃은 그녀는 그의 야비한 본성을 읽지 못해 파국을 맞는다. <혼인 관계>에선 남편과의 결혼생활이 지루해진 여자가 친구의 남편을 탐해 비열하게 유혹한다. 행복한 친구에게 악녀는 “바보처럼 굴지 마, 남편들은 다 눈이 멀었거든”이라며 부추기는데, 스트로하임은 그런 여자를 향해 대놓고 ‘어리석다’는 수식어를 붙인다. 앞을 못 보는 남편을 얕보는 그녀에겐 정작 ‘머리가 없다’는 거다.
중산층의 미덕을 찬양하는 영화가 널린 지금, 지배계급을 풍자하거나 비판하는 멋진 영화는 보기 힘들다. 루이스 브뉘엘, 피에르 파올로 파졸리니, 조셉 로지의 빈자리를 메우는 중인 루크레시아 마르텔의 존재가 반가운 건 그래서다. <늪>과 <홀리 걸>의 배경(이자 마르텔이 자란 곳)인 아르헨티나 북부의 살타를 다시 찾은 <어리석은 여자>는 더욱 섬세하고 은밀한 방식으로 중상류층 여자의 ‘화석화’를 파고든다. 친구들과의 회동 뒤 집으로 돌아오던 베로는 한적한 길에서 사고를 낸다. 잠시 어쩔 줄 모르던 그녀는 차를 몰아 그곳을 벗어난다. 이후 베로는 공황 상태에 빠져 사람을 대하거나 일상생활을 하는 데 혼란을 겪는다. 이윽고 남편과 (연인관계인) 사촌에게 사고를 고백하지만, 그들은 치여 죽은 건 개일 거라며 도리어 위로하고, 경찰 또한 인명 피해는 없다고 통보한다. 며칠 뒤, 겨우 평상심을 되찾은 그녀는 인근 장소에서 소년의 시체가 발견됐다는 소식을 듣는다.
같은 소재를 다룬 <자전거를 탄 어느 남자의 죽음>(1955)과 비교해보면 <어리석은 여자>의 주제가 명확하게 드러난다. 전자에서 밀회를 즐기던 남자와 여자는 사고를 당한 남자를 고의로 방치해 죽음을 부른다. 무기력한 지식인과 뻔뻔한 부르주아의 상징인 두 사람은 누군가 목격했을까봐 불안할 뿐 도덕적인 책임을 느끼지 못한다. <어리석은 여자>의 베로는 염색한 금발과 고운 피부, 그리고 우아한 행동으로 인해 주변 사람들과 쉬 구분되곤 한다. ‘불안한 여자의 풍경화’를 의도한 듯 영화의 많은 장면은 베로의 얼굴을 집요하게 붙드는데, 관객은 그녀의 불안한 심리와 함께 그녀와 바깥세상 사이에 쳐진 커튼과 그녀의 소극적인 자세를 목격하게 된다. 언뜻 죄의식에 사로잡혀 괴로운 것처럼 보이는 그녀는 기실 무감각과 무지를 핑계로 슬그머니 죄의 영역에서 이탈하기를 기도한다.
마르텔의 영화에서 인물들은 종종 비를 맞거나 풀장에 뛰어든다. 불현듯이 피부에 닿는 물의 차가움은 감각이 깨어나도록 만들 텐데, 안타깝게도 그들은 자각할 줄 모른다. 병원에 앉아 있던 베로에게 옆의 할머니는 “자지 말아요. 그러다 죽어요”라고 일러둔다. 머리가 이성과 꿈과 감각을 상실했을 때 인간은 죽은 거나 마찬가지란 이야기다. 마르텔은, 의식 자체가 없는 계급이 잠에서 일어나 자신의 죄를 깨닫고 적극적으로 행동하길 원한다. 스트로하임은 유한계급이 현실에서 등을 돌린 채 마시고 놀고 떠드는 곳을 일컫기를 ‘지옥의 파라다이스’라고 했다. 천국과 지옥의 경계는 그리 두껍지 않다. DVD는 마르텔이 ‘UCLA’의 ‘필름 & TV 아카이브’에서 나눈 대화(36분)를 부록으로 제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