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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ine scope] 이상한 나라의 소녀에게 생긴 일
장영엽 사진 최성열 2010-01-19

한국영화아카데미 제작연구과정 3기, 조성희 감독의 <짐승의 끝> 촬영현장

“소리지르지 마 순영아. 가라면 갈게.” 한 소녀(이민지)의 자취방, 검은 사내(박해일)의 그림자가 어른거린다. 낯선 사람의 출현에 소녀는 비명을 질러보려고도, 누군가에게 연락을 시도해보려고도 하지만 도움은 남자보다 멀리 있다. 그런데 이 남자, 단순한 범죄자라기엔 좀 이상하다. TV를 보며 첼시와 바르셀로나 축구팀에 대해 중얼거리다가, 소녀에게 불현듯 자기를 어떻게 생각하냐며 뜬금없는 질문을 던진다. 이상한 점은 또 있다. 남자는 어떻게 소녀의 이름을 아는 걸까.

새해 벽두를 열기엔 조금 음산하지만 한편으로는 그래서 또 근사한 장면이다. 1월3일 서울 구로구 항동의 그린빌라 커뮤니티 센터에서는 한국영화아카데미 제작연구과정 3기의 일환으로 제작되는 조성희 감독의 <짐승의 끝> 촬영이 한창이었다. 대부분의 촬영이 경기도 화성에서 이뤄지는 터라 서울에서 찍어야 하는 몇몇 장면을 이날 몰아찍기 위해 스탭들은 하루 종일 분주했다. “그래도 이 정도는 약과예요. 화성 갈대밭에서 찍을 땐 어찌나 춥던지 카메라 렌즈가 얼어붙었다니까요.” 현장스틸기사의 말을 듣고보니 스탭들의 표정이 너그러운 이유를, 냉기 서린 방 안에서 반팔과 반바지 차림으로 돌아다니던 여주인공의 얼굴이 밝은 이유를 알겠다.

물리적으로는 좀더 수월한 날일지 몰라도 심리적으로는 결코 편한 날이 아니다. 좁은 방 안에서 촬영 거리를 유지하는 것도 문제고, 빈 건물의 울림 때문에 숨소리 한번 편히 낼 수도 없다. 조성희 감독은 ‘컷’ 사인이 날 때마다 이쪽 저쪽 오가며 상황 정리를 하는 한편, 여주인공의 감정 표현에 신경 쓰는 눈치다. 낮부터 귀동냥으로 엿들은 말들을 종합해보건대 무방비 상태의 아기 같은 모습을 표현해내는 게 관건인 듯하다. “순영이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같은 역할이에요.” 허은경 PD의 귀띔이다. 맞다. 앨리스가 되려면 이상한 상황을 쭉쭉 빨아들일 수 있는 백지 같은 상태여야 할 것이다. 배우 박해일이 맡은 낯선 남자는 우리의 앨리스가 마주치게 되는 이상한 인물 중 하나다. 자세한 설명은 금물이란다.

<짐승의 끝>은 만삭의 임신부가 어머니가 있는 제천으로 여정을 떠나면서 겪는 기이한 일들을 다룬다. 2009년 칸을 비롯해 각종 영화제 상을 휩쓴 조성희 감독의 단편 <남매의 집>과 마찬가지로 주인공을 한계까지 밀어붙이는 작품이라고. 1월 말 촬영을 마치는 이 작품은 올해 안에 관객과 만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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