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7 시리즈에 주목하게 만든 냉전의 시대도 지난 지 오랩니다. 그렇다면, 변화하는 시대 007 시리즈의 생명연장 자구책은? 오락에만 치중하지 말고 사회적 이슈에 좀더 접근하자는 게 아닐까요. 이미 마크 포스터가 연출한 22번째 시리즈 <퀸텀 오브 솔러스>가 이 해결책에 날개를 실어주었습니다. <퀸텀 오브 솔러스>는 환경문제를 거론하며, 마크 포스터와 일견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액션을 소화했음에도 전세계 5억8600만달러라는 수익을 거두어, 007 시리즈의 건재함을 과시했으니 말입니다. 그러니 23번째 007의 새로운 수장으로 샘 멘데스를 영입했다고 하더라도 그리 놀랄 일은 아닙니다. 미국 중산층의 허위를 제대로 꼬집은 <아메리칸 뷰티>가 대표작인데다, <로드 투 퍼디션> <자헤드: 그들만의 전쟁>, 그리고 최근작 <레볼루셔너리 로드>에 이르기까지 그의 카메라가 지향하는 것은 언제나 표면에 드러나지 않는 아슬아슬한 긴장, 그 이면의 실체였으니 말입니다. 바로 샘 멘데스의 이 예리한 시각을 007에 녹여내자는 것이 새로워진 007의 복안인 듯싶습니다.
23번째 시리즈는 이안 플레밍의 <007 뉴욕>이 원작으로, <프로스트 vs 닉슨>의 피터 모건과 닐 퍼비스, 로버트 웨이트 등이 공동 집필할 예정입니다. 21번째 <카지노 로얄>부터 활약하는 본드 대니얼 크레이그도 그대로군요. 초반 우려와 반대를 딛고, 크레이그는 이제 본드와 자연스럽게 연결될 정도의 지위를 획득한 듯합니다. 21편부터 M 역을 소화해내는 주디 덴치와 미스터 화이트 역의 제스퍼 크리스텐슨도 그대로 출연합니다. 촬영은 내년 6월 시작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