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대의 연쇄살인범 랜트가 죽는다. 그는 이 소설에서 마이클 잭슨만큼이나 유명한 존재다. 광견병을 성병으로 속여 수천(혹은 수만)명에게 전염시킨 그는 살아생전 ‘걸어다니는 대량살상 생체무기’로 불렸다. 어느 날 랜트가 자동차 충돌파티를 즐기다가 자동차에 받혀 생을 마감하자, 산 사람들은 저마다 입을 열어 그를 추억하기 시작한다.
<랜트>는 동명 연쇄살인범의 생애를 압축한 전기적 소설이다. 그런데 뭔가 좀 색다르다. 주인공이 한명뿐인데 그 사람이 끝날 때까지 한번도 직접 등장하지 않는다. ‘랜트가 이러저러하게 말했어요’라고 말을 옮기는 수많은 주변 인물의 얘기만 있을 뿐이다. 제3자의 수다로 점철된 랜트의 생애는 상상력의 날개를 얻는다. 기본 줄거리를 압축해보면 그가 어린 시절 동네 아이들의 이를 모아 돈을 벌었고, 검은과부거미 수집가였으며, 커서는 자동차 충돌족으로 생활하며 이리저리 광견병을 옮겼다는 ‘사실’을 알 수 있으나 그 디테일들이 모두 미묘하게 다르다. 이 ‘아 다르고 어 다른’ 이야기들을 퍼즐 조각 맞추듯 하나하나 머릿속에 주워담는 것이 <랜트>를 읽는 규칙이다.
<파이트 클럽>으로 유명세를 얻은 저자 척 팔라닉은 전작에서도 익히 선보였던 블랙유머를 구사하며 글 읽는 재미를 더한다. 다만, 이 거대한 퍼즐에 과연 끝이 있을지는 미지수다. 뚱딴지같은 얘기를 꺼내놓다가 과거로 급격히 점프하는 이 게임의 룰을 끝까지 즐길 수 있는 독자가 얼마나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