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인공과 사랑에 빠진다 지수 ★★★☆ 영화판을 보고 싶다 지수 ★★★★
놀랍게도, <자학의 시>는 은유적인 제목이 아니다. 여주인공 유키에에게 인생은 그 자체가 자학. 백수건달에 마작과 경마, 파친코에만 열을 올리고, 술에 취해 상을 뒤집어엎는 것 외에는 할 줄 아는 게 없는 남자 이사오와 함께 사는 삶 자체가 유키에 자신을 괴롭히는 일이다. 1985년부터 1990년까지 일본에서 잡지 <주간 보석>에 고다 요시이에가 연재한 4컷만화 중 유키에와 이사오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펴낸 책이 바로 <자학의 시>.
백수건달에 폭력적인(여자는 때리지 않지만 매일같이 상을 뒤엎는다) 남자와 그럼에도 그가 좋아 죽겠다는 여자의 이야기. 초반에는, 이 만화를 보며 대체 웃어야 하는지, 싸우자는 건지 분간하기 힘들다. 유키에와 이사오는 동거 중. 결혼을 하려고 해도 어쩐지 운이 닿지 않아(이사오의 마음이 내켜 구청에 가면 공휴일) 마냥 같이 사는 두 사람인데, 이사오는 마음에 안 드는 일에 사사건건 밥상을 뒤엎는다. 밥이 맛이 없어서 상을 엎고, 달래려고 맥주를 주니 맥주가 미지근해 상을 엎고. 생활은 유키에가 도맡는다. 유키에가 일하는 식당의 주인은 유키에를 좋아하는데 유키에의 마음은 오로지 이사오를 향해 있다. 비가 오면, 유키에는 배달 간다고 하고 우산을 배달 가방에 넣어 이사오가 놀고 있는 파친코로 간다… 는 식이다. 법적인 부부 사이도 아닌데 유키에는 아예 이사오를 떠날 생각을 하지 않는다. 대체 왜일까.
단순히 폭력 남자와 당하는 여자의 이야기에 머물렀다면 <자학의 시>가 일본에서 사랑받지 않았을 것이다. 만화가 고다 요시이에는 두 남녀의 삶을 미화하지 않는다. 그래서 처음 보면 당혹스럽기만 하다. 이사오는 사사건건 상을 뒤엎고 성을 내고, 유키에는 무슨 일을 당해도 “당신이 좋아”라는 식이다. 유키에의 바보처럼 행복한 얼굴에 독자가 대신 화를 내줘야 하는 걸까 하는 심정이 될 즈음 이사오와 유키에의 과거가 드러나기 시작한다. 말을 배우기 전에 몸으로 익힌 가난의 밑바닥, 결코 따뜻한 곁을 내줄 줄 몰랐던 세상의 시선. 4컷만화라고는 하지만 전체가 유기적으로 구성됐기 때문에 마지막까지 꼭 봐야 재미를 충분히 느낄 수 있다.
<자학의 시>는 이 남자가 옳은가 이 여자가 옳은가를 따지는 대신, 그들과 주변 사람들의 일상을 그려보인다. 누구는 외롭고, 누구는 괴롭고. 엄청 서러운 유키에의 마음이 전해지지만 키득거리고 웃음은 나고. 그렇게 그들 모두와 독자가 친숙해질 즈음, 이야기는 결말을 향해 간다. 자학의 삶을 사는 유키에가 패자인가. 유키에는 스스로를 괴롭히며 살고 있는가. 그렇게 단순한 게 아니라고, <자학의 시>는 말한다. 누구나 자신만의 역사 위에 선 현재를 살고 있고, 나름의 방식으로 최선을 다해 행복을 거머쥐려고 한다. 유키에의 독백. “이젠 인생을 두 번 다시 행복이냐 불행이냐 나누지 않을 겁니다. 뭐라고 할까요…? 인생에는 그저 의미가 있을 뿐입니다.” <자학의 시>는 2007년 아베 히로시와 나카타니 미키 주연으로 영화화되었다.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의 나카타니 미키와 묘하게 겹치는 역할이기도 한 유키에 역으로, 나카타니 미키는 2년 연속 일본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