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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의 한국영화] 봉준호·홍상수에 대한 굳은 믿음!
씨네21 취재팀 2009-12-31

1위 <마더>

<마더>가 올해의 한국영화 1위다. 봉준호 감독의 전작인 <살인의 추억> <괴물>이 순위권 안에 든 적은 있지만 올해의 영화 1위가 된 건 처음이다. 올해 <마더>가 던진 파장이 그만큼 컸다는 뜻이다. 위험에 빠진 순진하지만 바보스러운 아들, 그 아들을 세상이 내치자 스스로 자식을 살리기 위해 죄의 소용돌이 안으로 뛰어들게 된 어머니. 쉽게 무엇이 진실이라고 말하거나 옳다고 말하기 어려운 상황이 쌓이고, 비밀을 둘러싼 미궁의 탐색전이 거듭되면서 <마더>는 대중영화로서도 큰 점수를 얻는 반면 영화적으로도 흥미로운 이중삼중의 구조를 갖춘 견실한 작품으로 인정받게 됐다. 영화는 김혜자라는 놀라운 배우와 탄탄한 각본과 여러 흥미로운 요소의 매력을 충분히 발산하고 있으며 동시에 풍성한 영화보기의 재미를 만끽할 만한 장치들을 심어주었다.

때문에 <마더>는 다음과 같은 선정근거들을 끌어냈다. “영화 속에서 길을 잃는다는 것은 곧 매혹임을 알려주는 훌륭한 실례. 자꾸만 빠져들게 하는 영화적 미로. 현재까지 봉준호 영화의 정점이라 불러도 틀림없을 듯하다.”(홍성남) <마더>가 우리를 앞서나가며 흥미롭게 이끌었으며 그 매혹에 반해버렸다는 진술이다. 그렇다면 “숱한 반복, 대칭구조를 통해 감정을 쌓아가는데, 결국 캐릭터의 자기동일성을 강하게 부정하는 경지에 이른다. 올해 가장 시네마틱한 흥분을 준다”(김영진),“심리적 원초경과 사회적 만화경이 교차 직조된다”(김소영), “오인의 작동에 의해 예정된 실패를 향해 전진하는 봉준호 영화의 진수”(장병원) 등은 <마더>의 캐릭터와 은밀한 구조가 조화를 이뤄 마침내 영화적인 놀라움을 주었다는 찬사에 가까운 표현이 될 것이다. “계급, 성, 가족, 범죄, 장애인이라는 우리 사회의 온갖 부조리 문제를 기억과 욕망이라는 내면의 심리적 문제로 스펙터클하게 유기화했다. 주제 면에서뿐 아니라 표현 면에서 장면 하나하나는 뛰어난 함축성을 보여준다. 연기와 배경을 관통하는 영화의 짙은 안개 낀 멘털리티에 관객은 부지불식간에 몸서리친다”(이창우)는 데까지 이르면 <마더>가 올해 던져준 감동을 제각각 얼마나 다양하게 받아들였는지 알게 된다. <마더>의 올해의 영화 1위는 봉준호 감독의 영화세계에 대한 많은 이들의 믿음이 한 단계 더 상승했다는 확고하고 굳건한 표식이다.

2위 <잘 알지도 못하면서>

“홍상수는 자기의 틀을 부수면서 나아간다. 감동적이다. 영화를 통해, 그리고 영화 만들기를 통해 영화의 존재론과 윤리를 끊임없이 다시 숙고하게 만든다”(허문영), “<생활의 발견>의 새로운 버전인데 지루하거나 진부하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홍상수 영화는 이제 홍상수 영화라는 레퍼런스 안에서 감상하고 즐기는 고유한 방식을 정착시킨 것 같다”(이현경), “홍상수가 여기서 어떻게 더이상 마음을 움직일 수 있을까, 생각할 때쯤 그는 정말 더 마음을 움직이는 영화를 들고 나타난다. 내겐 너무 싱그러운 바람 같은 영화였고 그 영화를 생각하며 두고두고 용기를 얻는다”(남다은).

<잘 알지도 못하면서>를 강력하게 지지한 이들의 선정 근거를 종합해보면 이런 말이 가능하다. 홍상수 감독의 영화는 본인이 완성했던 놀라운 영화 만들기의 방식과 형식을 뒤로한 채 충격적일 정도로 내밀하고 완고하게 변화를 추구하고 있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가 그 예다. 때로 그것이 어떤 이들에게는 과거의 영화와 겹쳐지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그걸 흠이라 생각하지 않을 만큼 홍상수 영화에는 일정한 여유까지 갖춰져 있다. 그로써 손에 잡히지 않는 바람처럼 아름다운 자연의 존재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우리는 이제 홍상수 감독의 영화가 단지 한편의 영화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영화적 차원’이 됐다는 점을 반드시 받아들여야 할 것 같다.

3위 <파주>

누구는 과대평가받은 영화라고 했고 누구는 과소평가받은 영화라고 했다. “<파주>를 본 관객 수와 <씨네21>에 <파주>의 평문을 쓴 필자 수를 세어보면 별 차이가 안 날 것”이라는 농담 아닌 농담도 들렸다. 이런 반응들은 두 가지를 말해준다. 첫째, <파주>는 기대만큼 관객을 만나지 못했다. 둘째, 적어도 <씨네21>에서 <파주>는 올해의 가장 쟁점적인 영화였다. 관객을 많이 만나지는 못했지만 그것이 이 영화의 장점을 가릴 수 없었다는 뜻이다. 이 영화의 장점이란 바로 여러 가지 방법으로 보고 또 말하고 싶은 욕망을 자극한다는 데 있다.

<질투는 나의 힘> 이후 7년 만에 박찬옥 감독이 선보인 <파주>는 보는 태도에 따라 다양한 결을 지닌 작품이다. 과감하게 시도된 과거와 현재를 오가는 플래시백 구조, 김우형이라는 걸출한 촬영감독이 잡아낸 생생한 화면들, 이선균과 서우라는 기대 만점의 배우들이 어우러져 영화가 전반적으로 미묘한 분위기를 만들어냈다는 것이 매력 포인트로 꼽힌다. “리얼리즘과 신비함이 뒤섞인, 한국영화에서 거의 찾아볼 수 없던 소녀의 성장기. 혹은 굳이 드러내놓지 않은 채 움직이는 욕망 자체의 동력을 더듬게 하는 매혹적인 수수께끼”(김용언), “<파주>는 의식의 서사를 따라가는 영화가 아니라 무의식의 논리를 따라가는 영화다. 비선형적인 극의 흐름을 취하는 데 그치지 않고, 사건의 인과적인 인식방식을 해체한다. 감독은 인간과 세계에 대해 거시적 가치판단을 내리는 것이 아니라 임상적 관찰로 판단을 대신한다”(황진미).

4위 <박쥐>

<박쥐>의 개봉 당시 놀라웠던 것은 <박쥐>가 대중이 부담스러워 할 만한 요소들을 의미심장할 정도로 용기있게 많이 갖추고 있었다는 점이다. <박쥐>는 알려진 것처럼 흡혈귀영화를 만들고 싶다던 박찬욱 감독의 필사의 도전을 성취한 것인데 뚜껑을 열어보니 훨씬 더 강고한 작가적 고집으로 만들어진 것이었다. 전세계 어느 영화에서도 보기 힘든 흡혈귀 이야기가 탄생했다. 인물들은 마치 별천지에서 온 것처럼 도드라졌다. 그들을 지탱하는 영화의 분위기는 때로 뽕짝 같고 때로 고풍스럽다. 자신의 야심에 어울릴 만한 예술가적 자의식으로 박찬욱 감독은 <박쥐>를 만들었다.

마침내 <박쥐>는“박찬욱의 화법은 점점 더 규격화되는 동시에 점점 더 명확해지고 있다. 순수하게 심미적인 관점에서 출발해 수학적 결과를 얻어내는 그 과정은 마치 고전주의 화가를 보는 듯한 기분이 든다”(이지현), “선과 악이 공존하는 모순으로서의 캐릭터, 복잡한 내러티브, 쇼크를 주는 시각 이미지, 배우들의 빛나는 개성, 바로크적인 미술, 죽음 충동을 자극하는 ‘뽕짝’ 음악 등 영화 만들기의 거의 모든 부분에서 발군의 창의력을 보여줬다. ‘새로운’ 작품을 만들어내려는 태도가 스크린에 팽팽한 긴장감을 가져왔다”(한창호), “독창적이고 강렬한 걸작. 이제 기다리는 것은 이 영화의 가치를 입증해줄 세월”(이동진)이라는 확고하고 뜨거운 지지의견을 끌어냈다.

5위 <똥파리>

“한국 인디영화의 탁월한 성취인 동시에 약점까지도 보여준다”(김봉석), “진부하지만 깊고 둔탁한 맛이 있는 이 영화는 사실 올해 최고의 판타지 통속극이다. 영화를 이끌어가는 동력은 주인공들의 선의다. 그러니 어쩌다 태어난 곳이 시궁창인지라 똥파리처럼 살 수밖에 없는 그들을 보면, 빤하지만 눈물이 난다”(송경원). 양익준이라는 걸출한 신인감독과 <똥파리>라는 힘있는 데뷔작이 나타났다. 하지만 그가 들고 나타난 것은 철저하게 기획되고 만들어진 충무로 안에서의 기획영화가 아니다. 그렇다고 작가적 고집으로만 똘똘 뭉친 새로운 세기의 작가군의 출현도 아니다.

그보다 양익준이라는 감독과 그의 장편 데뷔작 <똥파리>는 좀 특별한 자리에서 의미가 있다. 독립영화의 뚝심으로 일어선 히트작이면서도 동시에 충무로에서 얼른 눈독을 들일 만한 주류 감성에 대한 뛰어난 조화가 배어 있는 영화다. 독립영화이면서도 충무로영화에 대한 적응력이 강점으로 꼽힌다. 그래서 <똥파리>는 ‘날 것 같은 에너지가 있다’와 ‘주류적 유연함이 있다’는 양쪽의 가능성을 모두 거머쥔다. 때로 어떤 장면은 말릴 수 없을 만큼 극단적인 에너지를 분출하는데, 또 다른 장면은 어느새 익숙한 구조 안으로 관객을 끌어들인다는 것이다. 힘은 독립영화에 뿌리를 두고 기술은 충무로식으로 걸어온 새로운 이종격투기 선수의 출현이다.

과대평가된 영화 <박쥐>, 과소평가된 영화 <차우>

올해의 과대평가 영화로는 <박쥐>가 뽑혔다. 박찬욱 감독의 영화는 매번 지지와 비판을 몰고 다녔으므로 크게 놀랄 일은 아니다. <박쥐>는 올해의 영화 4위에도 올랐으니까. 고집있는 작품은 늘 영광과 상처를 한꺼번에 새기게 마련이다. <박쥐>를 과대평가된 작품이라고 본 평자들의 의견은 이렇다. “화려한 미술로 봉합된 부실한 내면”(김지미), “상투적인 상징으로 죄책감을 표현한다. 마치 하나님의 이름으로 면죄부를 내리는 신부의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것 같다. 기존 영화에서 위악적인 인물들이 담당했던 자리가 사라졌고 그만큼 감독의 설교는 직접적이 되었다”(이현경). 내면보다 외양에 충실하거나 감독의 영화적 세계관에 동의하지 못하겠다는 뜻인 듯싶다. 과대평가된 영화 2위는 <파주>다.

올해의 과소평가된 영화로 뽑힌 건 <차우>다. 독특하며 재미있는 영화의 출현인데 지나치게 그 재미의 구석을 인정받지 못하고 넘어갔다는 아쉬움의 의견이 주다. “식인 맷돼지가 영화의 맥거핀으로 느껴질 만큼 다른 에피소드들의 잔재미가 좋았다. 초현실적인 장면들의 느낌도, 기존의 어떤 영화에서도 볼 수 없었던 다양한 캐릭터들도 좋았다. 무엇보다 올해 다른 그 어떤 영화보다 재미있다”(송효정), “올해 개봉한 한국영화 가운데 가장 독특하고 색깔있는 영화. 장르영화이면서 빤하지 않은, 파격에 파격을 더한 뚝심있는 연출이 매력적이다”(김종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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