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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관객을 만나다-로마] 고독보다 스피드 데이트!

같은 시간이 두번 반복된다면 아니 같은 시간을 두번 살 수 있다면? 누아르 같으면서도 스릴러이고 또 심리호러 같은 <라 도피아 오라>(La Doppia Ora)는 올해 베니스영화제에서 이탈리아 평단에는 부정적 평가를 받았고 외신에는 가능성있는 영화라는 평가를 받았다. 아무리 이탈리아 평단이 장르영화에 엄격하다고 하더라도 영화 전문지 <차크>의 이탈리아 관객은 이 영화에 사랑을 아끼지 않는다. 신종플루로 떠들썩한데도 10월 말 영화관은 관객으로 꽉 찼다. 극장을 걸어나오는 스테파냐 두바와 잠시 이야기를 나눴다.

-감기에 걸려 오늘 영화 보기가 힘들었다. =아, 감기 이야기는 하지도 마라. 지난해 내 둘째딸은 겨울 내내 병원에서 살았다. 이번 겨울을 어떻게 넘길지 걱정이 태산이다. 거기다 신종플루까지…. 나는 프리랜서로 아트디렉터를 하고 있다. 지난해 겨울은 허리띠 꽉 조이고 남편의 월급으로 살아야 했다.

-영화관이 관객으로 가득 찼다. 기대 이상이다. =아직 날씨가 그다지 차갑지 않으니 사람들이 마지막 찬스를 놓치지 않으려고 하는 것 아니겠나. 나도 거의 일년 만에 영화관에 와본다. 아이 둘을 키우고 내 일을 하면서 영화를 보러 오기가 쉽지 않다.

-이 영화에 무엇을 기대했나. =나는 누가 좋은 영화라고 해서 영화를 보지 않는다. 감독이나 캐스팅을 보고 선택한다. 평단이나 친구가 좋다고 하더라도 영화를 선택하는 기준이 될 수는 없다. 적어도 나에게는 말이다. 이 영화는 필리포 티미라는 배우가 나의 관심을 끌었다. 그를 잘 알지는 못하지만 최근에 그의 인터뷰를 보았다. 그는 일을 하지 않을 때는 말을 더듬거린다. 인터뷰에서도 말을 더듬거렸다. 그런데 인터뷰 도중 무척 아픈 연기를 했다. 그게 연기라는 걸 나중에 알았다. 정말 아파서 병원에 실려가는 줄 알았다. 감동적이었다. 이 영화를 보는 사람은 그가 평상시 말을 더듬거리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기 힘들 거다.

-필리포 티미는 (올해 칸영화제 경쟁부문에 오른) <빈체레>(Vincere)에서는 무솔리니 역을 맡았었다. =아마도 그럴 것이다. 내가 알기로는 이 배우는 글을 쓰는 사람이었는데 연극배우를 하다가 영화를 시작했다. 매번 연기를 할 때마다 전혀 다른 얼굴로 태어나는 배우다.

-무엇이 인상적이었나. =서두에서부터 후반까지 긴장감이 나를 사로잡았다. 반전의 연속이었다. 한 여자가 커피숍에 앉아 있는데 그녀는 무엇을 숨기고 있을까? 그것을 알기 위해서 그녀를 만나야 하고 만나서 살아보아야 한다. 감독은 이 점을 간파하고 있는 것 같다. 오늘을 산다! 가장 아름다운 말이다. 살다보면 내일을 위해 희생해야 하는 일이 너무 많다. 오늘을 아름답게 살면 내일도 아름다울 것이라고 믿는다.

-이 영화는 이탈리아의 무엇을 보여주려고 한 걸까. =고독한 삶을 살아가는 남자와 고독한 삶을 껴안고 사는 여자의 만남이라는 주제는 이탈리아적이라기 보다는 보편적이라고 생각한다. 어쩌면 여주인공이 외국인이라는 설정이 이탈리아다운 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다문화 사회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잖나.

-당신도 스피드 데이트를 해봤나. =집에서 와인이나 마시며 고독을 씹느니 누군가를 만나는 게 좋다고 생각한다. 방법이야 어찌되었든 외로움을 덜 수 있다면… 짧은 만남이지만 사랑에 빠져 일상의 무거움을 덜 수 있다면 좋겠지.

-이 영화는 조금 호러적인 성격도 있다. =조금은 그렇다. 그나저나 호러영화는 아시아영화가 으뜸이다. 한국영화로는 <장화, 홍련>을 봤다. 아시아 호러영화들은 하얀 옷을 입은 여자가 원혼으로 등장하는 경우가 많더라. 아시아에서 여자만 서럽게 죽는 것도 아닐 텐데 말이다.

-영화의 주인공인 크세니야 라포포르트가 베니스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받았고 미국 제작자들의 리메이크 요청이 쇄도한다더라. =그럴 만도 하다. 구성도 섬세하고 닭살이 돋을 정도로 긴장감이 들게 하는 영화니까. 나오미 왓츠나 클라이브 오언이 주인공을 한다면 딱 들어맞을 영화다. 아무튼 주세페 카포톤디 감독의 첫 영화치고는 정말 잘 만들었다. 그러고 보니 내가 꼭 영화 광고하는 사람 같네. 일년 넘게 영화관을 찾아 인터뷰도 하다 보니 말이 좀 많아졌다. 하지만 영화와 나는 아무 관계가 없음을 꼭 전해달라. (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