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살로니키국제영화제(11월13∼22일)에서 막 돌아와 이 글을 쓴다. 테살로니키영화제는 그리스의 가장 큰 영화 행사로 올해 50회째를 맞았다. 나는 오랜 기간 테살로니키를 찾았고 2003년 12월 첫 번째 썼던 외신기자클럽 칼럼도 테살로니키영화제에 관한 것이었다. 그러나 그리스 영화인에게 더이상 공감할 수 없으므로 앞으로는 한동안 그곳에 가지 않으려 한다.
테살로니키를 방문했던 이유는 매해 나온 그리스영화를 볼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올해 대부분의 영화인이 18편의 장편영화와 6편의 다큐멘터리를 철회하고 영화제를 보이콧하면서 소수의 영화밖에 볼 수 없었다. 볼 영화가 없으니 나와 동료 외신기자들은 일주일 내내 별로 할 일이 없었다. ‘배신자’ 그룹에 속하는 그리스영화 6편 중 흥미로운 영화가 두편 있긴 했지만 메이저급 영화는 아니었다. 올해로 임기 마지막인 영화제 위원장 데스피나 무자키의 지난 5년간을 돌아볼 때 국제경쟁부문과 기타 다른 부문의 영화도 최악이었다.
영화인들은 새 좌파 정부가 새로운 영화법을 제정하도록 압력을 넣기 위해 그리스영화인협회(FoG)라는 저항그룹을 만들었다. 이미 국가 세금으로 운영되는 그리스영화센터를 통해 제작 지원을 받고 있음에도 영화인들은 시장을 활성화하기 위한 세금 혜택과 극장 수익의 일부를 지원하도록 하는 법을 제정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그리스는 인구 1천만명의 작은 나라로 1970년대 이후 이렇다 할, 상업적으로 성공한 영화산업을 가져본 적이 없다. 주로 그리스영화센터의 지원으로 한해 20∼30편의 영화가 만들어지지만, 대체로 자아도취적인 영화 중 두편 정도만이 매해 세계 영화제를 돌고 나머지는 국내 관객에게 철저히 외면당한다. 때로 2003년의 <터치 오브 스파이스>처럼 잘 만들어진 영화가 국내시장에서 성공하기도 하지만 독립적으로 유지 가능한 영화산업이 만들어질 가능성은 거의 없다.
올해 세편의 그리스영화(<송곳니> <스트렐라> <플라토 아카데미>)가 작은 규모지만 국제영화제에서 상영됐다. 그러나 그리스영화인협회가 주장하듯 그리스영화 제작의 황금기를 느끼게 할 수 있는 영화들은 아니었다. 그리스영화인협회는 영화제를 보이콧하는 이유가 테살로니키영화제를 망치려는 것이 아니라고 주장했지만 결국 그런 결과를 가져왔다. 그리스영화인협회는 영화제 직전에 아테네에서 영화를 상영한 뒤 영화제가 끝나고 테살로니키에서 더 많은 영화를 상영할 계획이다. 어떤 경우건 그런 상영은 국제 외신 보도에는 아무 쓸모가 없다.
테살로니키영화제는 국제 언론에 그 영화들을 보여줄 기회를 만들기 위해 노력해왔고, 그리스영화인협회에 영화제 바깥에서라도 그 영화들을 영화제 기간 동안 상영할 것을 부탁했다. 그리스영화인협회는 요구를 거절했다. 정말 슬픈 일은 영화인들의 그런 행동이 새 정부에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못할 것이란 점이다. 새 정부는 받는 것에만 익숙해 자기밖에 모르는 젊은 영화인들을 위해 새 영화법을 제정하는 것 외에도 다급하게 해결할 현안들이 많다.
그리스영화인협회가 테살로니키영화제를 통해 자신들의 주장을 관철하고 싶었다면, 왜 그들은 영화를 철회하고 아테네에 앉아 화만 내고 있을 게 아니라 테살로니키로 와서 영화제 기간 동안 항의 시위를 하지 않았던 것일까? 그랬다면 국제 언론에 보도되는 성과를 거뒀을 텐데 말이다.
감독 한명은 양다리를 걸쳤다. 영화제가 시작하기 전에 자신은 보이콧에 참여하지만 자신의 최근작을 내가 꼭 리뷰해주길 바란다며 DVD를 보냈다. 나는 그에게 답장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