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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히어로물을 한국화한 영화 <홍길동의 후예>
김도훈 2009-11-25

synopsis 홍길동 가문은 아직 죽지 않았다. 고교 음악교사 홍무혁(이범수), 동생인 고교생 찬혁(장기범), 대학교수 아버지 홍만석(박인환), 어머니 명애(김자옥)는 밤이 되면 의적 활동을 벌이는 홍길동 가문의 후예다. 그들은 요즘 정재계를 손에 쥐고 흔드는 건담 오덕후 이정민(김수로)의 비자금을 훔쳐 서민을 돕는 데 여념이 없다. 그러나 이정민과 홍길동 가문을 동시에 파고드는 검사 재필(성동일)이 홍무혁의 연인인 연화(이시영)의 오빠로 밝혀지고, 게다가 무혁을 돕던 정보원이 살해당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무혁은 연화와 결별하고 이정민의 본거지로 직접 파고들기 시작한다.

한국형 슈퍼히어로 영화를 만드려는 시도는 몇번인가 있었다. 이를테면, 류승완의 <아라한 장풍대작전>이나 김수로 주연의 <흡혈형사 나도열>이 새로운 한국형 히어로물을 향한 시도였다 할 법하다. <홍길동의 후예>는 좀더 직접적으로 미국의 히어로물을 한국화하려는 영화다. 장소가 한국이다보니 아닌 밤중에 비둘기맨이나 삵우먼을 만들 수는 없는 일이고, 알고보니 홍길동의 후예가 조선 이후에도 계속 가업을 이어 의적 활동을 해왔다는 이야기는 썩 괜찮은 아이디어다.

<홍길동의 후예>가 좋은 아이디어를 완벽하게 살린 영화라고 하기는 힘들다. 다만 야심없는 오락영화에 장기가 있는 정용기 감독(<원스 어폰 어 타임>)과 각본을 담당한 박정우(<주유소 습격사건> <신라의 달밤> <광복절특사>)는 캐릭터 코미디와 소규모의 액션 시퀀스의 잔재미를 잘 뽑아낸다. 평범한 직업을 가진 사람이 의적으로 활동하며 벌어지는 정체성 코미디는 성동일, 이범수(그리고 의외로 이시영)의 탄탄한 코미디 감각과 잘 어울리고, 액션장면의 아이디어가 그리 풍부한 편은 아니지만 홍무혁과 동생이 납치당하는 연화를 뒤쫓는 근사한 액션 시퀀스는 칭찬할 만하다. 야마카시와 자전거, 자동차 추격전을 한국적인 언덕 동네의 지형과 버무린 그 시퀀스는 설계도 단단하고 속도감도 좋다.

히어로물답지 않게 악역이 좀 약하다. 언제나 발군의 순발력을 보여주던 김수로의 연기는 전형적인 캐릭터 때문인지 유머의 코드가 맞지 않는 탓인지 여기서는 영 힘이 없다. 다만 김수로가 연기하는 악당 이정민 캐릭터는 좀 재미있다. 새 집 지어준다는데 웬 난리냐며 철거촌 재개발을 밀어붙이는 이 사기꾼 사업가는 일장기가 박혀 있는 추리닝을 입고 다닐 뿐만 아니라 사무실에는 떡하니 박정희 사진을 모셔놓고 있다. 북한산 자락에 거주하시는 ‘그분’이 떠오르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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