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ynopsis 만족스런 직장과 젊음, 미모를 지닌 스물여덟살의 베로니카(사라 미셸 겔러)가 자살을 결심한다. 도무지 살아가는 일의 의미를 발견할 수 없어서다. 치사량의 수면제를 삼킨 그녀는 2주간 혼수상태에 빠졌다가 빌라트라는 정신요양원에서 깨어난다. 원장 블레이크 박사(데이비드 튤리스)는 되살아난 베로니카에게 약물로 회복 불가능한 손상을 입은 심장이 일주일 안에 멈출 거라고 통보한다. 요양소에서 하릴없이 죽음을 기다리게 된 베로니카는, 실연의 상처를 안은 클로에, 공황장애를 앓는 마리 등 다른 환자들과 접촉하며 자신을 되돌아본다.
권태도 사람을 죽일 수 있다. 베로니카는 자기 앞에 놓인 무의미한 길을 굳이 완주할 의욕이 없다. “누군가를 적당히 만나 결혼하고 아이를 낳겠지. 그러나 몇년 지나면 남자가 바람을 피울 거야. 나는 남녀 둘 다 죽여버리겠다고 고함을 치겠지. 그러나 몇년 뒤 같은 일이 다시 터지면 이번엔 모른 척 넘어가겠지. 자식들이 나와 달리 살길 바라겠지만 한편으로는 그 애들도 별수 없다는 사실을 남몰래 기뻐할 거야.” 그녀는 자살의 이유를 납득받기를 기대하지 않는다. 그러나 원작의 표현에 따르면, “거의 모든 감정을 공포로 대체하는” 습성에 물든 오늘날 관객에게 베로니카의 견해는 친숙한 비관이다.
파울로 코엘료의 동명 원작을 각색한 <베로니카, 죽기로 결심하다>는 주인공이 자살을 결행한 날 시작해, 새로운 삶의 충동을 느끼는 순간에 도착할 때까지 잔잔히 흘러가는 영화다. 즉, 자유의지로 선택한 죽음의 시도가 좌절되고, 외부로부터 죽음이 강제될 때 한 인간의 내면에 일어날 법한 변화를 묘사하는 이야기다. 우울한 그림과 음악이 치유의 힘을 발휘하듯, 혼자만의 절망 속에 내내 감금되어 있던 베로니카는 정신병원 빌라트에 온갖 정신적 내상을 입고 흘러들어온 다른 영혼들을 지켜보면서 자신의 상황을 객관화할 기회를 얻는다.
폴란드 우츠영화학교에서 수학하고 데뷔작 <키스 오브 라이프>가 칸영화제 ‘주목할 만한 시선’ 부문에 초청된 바 있는 에밀리 영 감독은, 이야기의 배경을 1997년 슬로베니아의 류블랴나로부터 현재 뉴욕으로 옮겼다. 무드를 앞세우는 감독의 연출은 주로, 베로니카의 피아노 연주를 비롯한 음악의 도움을 받아 영화를 천천히 밀고 나간다. 이 과정에서 클로즈업과 폐소공포를 불러일으키는 카메라 앵글이 애용됐다. 분위기에 치중한 나머지 때로 드라마의 고비를 밋밋하게 흘려보내 영화 스스로 우울증에 감염된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에드워드와 베로니카가 사랑에 빠지는 계기가 허약한 점은 원작 소설로부터 상속한 약점. 그러나 영화적으로 보완되지 못한 점이 역시 아쉽다. 무엇보다 원작자가 본인의 체험을 녹여 개성있게 묘파한 정신병원의 공기, 암울하지만 거기 있는 동안 잃을 게 없다는 사실이 안락함을 자아내는 이중성이 제대로 표현되지 못한 점이 아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