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가 된 영화가 있으면 단체관람한다. 그것도 연례행사에 가깝다. 최근 화제작에 대한 질문을 공식석상에서 받으면 “바빠서 보지 못했습니다”라고 답한다. 한국의 정치인들이 영화를 대하는 태도는 거의 이 범주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협소한 경험과 무관심이 낳은 빈곤한 감수성은, 대개 산업논리로서의 영화에 대한 역설로 이어지기 일쑤. 그들에게 <쥬라기 공원>은 스티븐 스필버그의 영화가 아니라 자동차 150만대였다.
인터뷰어로 나선 영화감독 장항준이 대담을 희망한 이는 진보신당의 노회찬 대표. 평소 영화에 관심이 많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했다. 그 ‘관심’을, 정치인 일반의 영화에 대한 이해에 빗대거나 ‘정치인 중에서는 영화를 좀 아는’ 수준으로 넘겨짚어서는 곤란하다. 두 사람의 대화가 시작된 지 채 5분도 지나지 않아 좌중에는 과거 PC통신 시절의 ‘영퀴방’마냥 영화제목들이 난무하기 시작했으니. 그러니까 이 인터뷰는 영화감독과 정치인의 만남이 아니라, 어느 두 영화광의 만남이라 이름 붙이는 게 옳을 것이다.
장항준: 오늘 노 대표님 뵈러 간다고 하니까 ‘휴대폰 번호 교환해라. 나중에 술자리에 모시게’라는 사람이 절반, ‘괜찮겠어? 좌파 감독으로 찍히는 거 아냐?’라는 사람이 절반이더라고요. 사실 제가 정치에 큰 관심은 없지만 노 대표님께서 영화 좋아하신다는 이야기는 많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살아오셨고, 그 과정에서 좋아하게 된 영화의 변천사 같은 것이 궁금하더라고요. 물론 제 최고의 관심사는 노 대표님과의 차후 술자리입니다만.
노회찬: 저에게는 음주가 중요한 행사입니다. (웃음) 의미있는 행사가 될 것 같으니, 올해가 가기 전에 한번 자리를 만들겠습니다.
장항준: 영광입니다. 그럼 단도직입적으로, 대표님께서는 어떤 영화를 좋아하세요?
노회찬: 기본적으로 영화는 다 좋아합니다. 다큐멘터리는 무조건 좋아하고요. 그리고 코언 형제의 영화를 좋아해서 작품이 개봉되면 무조건 봅니다.
장항준: 뜻밖이네요.
노회찬: 한국 감독 중에서는 김기덕 감독 영화 좋아하고요.
장항준: 센 거 좋아하시는군요.
노회찬: 그렇죠. 에스프레소 계통으로. (웃음) 한때는 이란영화도 많이 봤고 터키영화, 유고영화… 할리우드풍이 아닌 영화들을 좋아했어요. 그리고 문제의식이 있는 영화들. 최근에 봤던 영화 중에서는 <이리나 팜>의 여운이 길게 남더라고요.
장항준: 문제의식있는 작품 중에도 본질을 살짝 덮은 영화들이 있고, 전면에 내세운 영화들이 있잖아요. 저는 고등학생 때 영화쪽으로 진로를 정했는데, 그 이야기를 듣고 음악선생님께서 부르시더라고요. 그리고 일일찻집 티켓을 하나 주시더니 ‘서울대 앞 녹두거리의 어느 다방에 가면 생전 보지도 못한 영화를 하나 만날 수 있을 것이다’라고 하시더라고요. 찾아서 다방에 들어갔더니 커튼 사이로 불빛이 간간이 새어나오고 있었어요. 보니까 24인치 텔레비전 앞에 수십명이 담배를 피우며 영화를 보고 있더라고요. 그게 <전함 포템킨>이었어요.
노회찬: 아, 저도 그 이야기하려고 했었어요. 저도 에이젠슈테인 영화는 구할 수 있는 데까지 다 구해서 봤어요.
장항준: 그때 ‘영화가 이런 것이구나’라는 걸 느꼈어요. 대사없이 자막과 음악만으로 이야기가 진행되는데 그게 가슴 벅찬 무언가를 주더라고요. 그때부터 센 영화들을 찾아보게 되었는데 결국 발견한 제 취향은 에미르 쿠스투리차 감독의 영화였어요. 코미디이면서도 몽환적이고, 냉철하지는 않지만 다시 돌아보게 되는 사회비판이 담겨 있더라고요. 대표님의 취향은 어떻게 변해왔나요?
노회찬: 저희 부모님은 두분 다 피난민이셨고, 저는 그때 부산에서 태어났죠. 피난민촌에서 생활하느라 어려웠는데 그런데도 부모님이 학교 교육보다 문화예술을 중요시하는 분들이셨어요. 지금 생각해도 이해가 안 가는 부분인데, 제가 어릴 때 방 하나에 다섯 가족이 살았단 말이에요. 그런데도 그 와중에 두분이 가끔 부산에서 하던 오페라 공연을 보러 가셨어요. 그리고 저도 초등학생 때 한달에 한번 이상 버스를 타고 시내에 나가서 영화를 봤는데, 그때 채플린 영화를 많이 봤죠. 그 기억 때문에 영화를 좋아하게 된 것 같아요. 고등학생 때는 그해에 개봉한 영화를 모두 본 적도 있어요. 노트에 감독 이름도 적고, 나름 별점도 매기고. (웃음) 그때까지는 정말 마구잡이로 영화를 보다가 그 뒤에 사회문제에 눈을 뜨면서 취향이 달라지게 됐죠.
장항준: 학창 시절에 많이 보고 감동받은 영화들은 대부분 미국영화들이었을 것 같은데요. 대략 어떤 영화들이었나요?
노회찬: 당시에 네번 본 영화가 있는데, 몽고메리 클리프트와 엘리자베스 테일러가 나왔던 <젊은이의 양지>였어요. 그 영화도 사실은 미국사회가 급속히 성장하면서 생겨난 문제들에 관한 이야기였죠.
장항준: 사회적인 관점에서 보더라도 촘촘하게 잘 만든 영화인 것 같아요.
노회찬: 네번 중에 두번은 엘리자베스 테일러 얼굴 보려고 간 것입니다만. (웃음) 그 시절의 마지막을 장식한 작품이 두편인데, <닥터 지바고>와 <대부>였어요. <닥터 지바고>는 중학생 때 누나가 단체관람하는 걸 따라가서 처음 본 이후로 지금까지 다른 판본으로 10번 넘게 봤죠. <대부>가 개봉했을 때는 학생이어서 당연히 볼 수 없었는데 사복 입고 가서 봤고요.
장항준: <대부> 3부작 중에서는 몇 번째가 개인적인 취향에 맞으시던가요?
노회찬: 2편이죠. 1편도 손댈 데 없이 완벽하다고 생각됩니다만 2편에는 서사성이 있잖습니까. 제 취향이 그쪽 계열이기도 하고요.
장항준: 저도 최근에 기고할 일이 있어서 <대부2>를 다시 보게 되었는데요. 저는 2편이 시리즈의 1편인 것 같아서 좋았어요. 다시 보면서 예전에는 별 생각 없이 넘어갔던 장면에서 크게 감명을 받았는데요. 젊은 시절의 비토 콜레오네(로버트 드 니로)가 동네 유지를 죽이러 가는 장면을 보면 바깥 길거리에서는 축제가 열리고 있고, 건물 내부 계단에는 복도 등이 깜빡깜빡 점멸되고 있어요. 그 어둠 속에서 비토가 모습을 드러내는데, 점멸과 함께 모습이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가 나타났다가를 반복하는 대목에서 순간적으로 소름이 돋더라고요.
노회찬: <대부> 시리즈는 전체적으로 그 대비 효과가 좋은 것 같아요. 1편 결혼식 장면도 그렇고, 2편의 그 장면에서도 살인자는 옥상으로 이동하고 있는데 아래에서는 축제가 이어지고. 그 대비들이 매우 자연스럽게 긴장감을 주는 거죠.
장항준: 대표님께서 지금까지 보신 영화 중에 가장 좋았던 영화 세편을 꼽는다면요?
노회찬: 너무 난감한 질문인데.
장항준: 지금 이 순간, 아니면 2009년 버전일 수도 있겠습니다만.
노회찬: <모던 타임즈>를 우선으로 꼽고 싶어요. 그건 앞으로도 변하지 않을 것 같아요. 두 번째는 <워낭소리>. 세 번째는 <로큰롤 인생>이라는 다큐멘터리영화. 다큐멘터리는 스토리를 강제하기가 쉽지 않은데 아주 절묘하게 스토리가 만들어졌고, 메시지 자체도 강렬하더라고요. 근간에 본 영화 중에서는 제일 좋았어요.
장항준: 영화를 그토록 사랑하신 만큼 한번쯤은 영화계로의 진로도 고민해보셨을 법한데요.
노회찬: 고등학생 때는 영화도 많이 봤지만 다른 예술과 문학에도 심취했었어요. 당시에는 소설 월간지가 있었는데, 4개를 정기구독했고 그해에 발표된 단편문학을 모두 읽은 해도 있었어요. 음악회는 입장료가 비싸니까 못 다녔지만 전시회는 공짜니까 국전을 포함해서 전부 다녔고요. 그렇게 영화나 소설을 보고 전시를 찾아다닌 이유는 세상을 알고 싶어서였던 겁니다. 사춘기였고 세상에 대해서 궁금한 게 많았으니까, 독서를 통해서 간접경험을 하고 <대부> 같은 영화를 보면서 ‘마피아가 저런 거구나’ 같은 걸 알게 된 거죠.
장항준: 성장기에 집안이 부유한 편이셨나요?
노회찬: 그렇지는 않습니다. 부모님께서 자식들에게 공부 열심히 하라는 말씀은 안 하셨지만, 악기는 하나씩 할 줄 알아야 한다고 하셨어요. 그래서 저는 첼로를 배웠고요. 제가 중학생 때 전교를 통틀어 첼로를 하는 유일한 학생이었습니다. 제 동생은 부모님의 그 방침을 거부해서 많이 맞았고요. (웃음) 음악보다 축구가 좋다고.
장항준: 당시로서는 상상하기 힘든 교육 방침이네요. 요즘의 하버드나 예일이 원하는 신입생 아닙니까? (웃음) 그럼 영화는 그 많은 취미활동 중 하나였을 뿐이네요.
노회찬: 그렇게 무언가를 많이 했던 건 아니고요. 영화는 제 생활에서 중요한 일부였죠. 못 보고 지나가는 영화도 있잖아요? 못 보더라도 어떤 영화인지는 다 아는, 그런 상태였던 거죠. 당시 우리나라에는 영화잡지가 없어서 일본 <스크린>을 헌책방에서 사다 보곤 했었어요. 일본어는 몰랐지만 한문만 가지고 대충 이해하면서 사진 중심으로.
장항준: 한국의 관객 중에 할리우드 키드가 아니었던 이는 없다고 생각하는데요. 대표님께서 마지막으로 할리우드 키드였던 건 언제였습니까?
노회찬: 아무래도 고등학생 때죠. 그런데 제 세대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어릴 적에 보고도 계속 기억에 남는 것은 <쌀> <갯벌> <마부> 같은 한국영화들이에요. 당시에는 한국영화들이 사회적인 문제를 리얼하게 다루었는데, 이후에 박정희 정권이 들어서면서 많이 바뀌었죠. 고등학교 들어갈 무렵부터 볼 만한 한국영화가 없어지고, 할리우드영화들이 많이 들어오니까 엄청나게 보게 된 거죠.
장항준: 사모님도 대표님과 영화적 취향이 비슷하신가요?
노회찬: 네, 영화 좋아합니다. 처는 80년대 초반에 문화계 근처에서 일을 했었어요. 그래서 안성기, 배창호, 이장호 감독과 매우 친합니다. 얼마 전에 저는 이장호 감독을 처음 만났는데, 제 처 안부를 먼저 묻더군요.
장항준: 80년대에는 비판적인 문화들이 모두 지하로 숨고, 오버그라운드에는 전두환이 육성한 3S가 장악하고 있었는데요. 그래서 저희 세대한테 한국영화는 에로영화였어요. 고등학생 때도 동시상영관을 즐겨 찾았죠. 주로 두 번째 영화를 보기 위해서. (웃음) 혹시 에로영화들도 가끔 보시나요?
노회찬: 제가 도덕성이 높아서가 아니라, <애마부인> 같은 영화는 한번도 안 봤어요. 시간이 나면 더 재미있고 좋은 영화를 보려고 했죠.
장항준: <감각의 제국> 같은 영화는요.
노회찬: 그건 봤어요. 그런데 저는 그 영화도 센세이션을 내세운 작품이지 영화적으로 완성도가 높다고 보지는 않습니다.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영화를 굉장히 좋아해서 거의 다 본 편인데, 그런 영화들이 훨씬 좋죠.
장항준: 굳이 에로가 아니더라도, 흔히 길티 플레저라고 하잖아요. 단지 오락을 위해 즐기는 영화는 없으신가요? 이를테면 화끈한 액션영화를 보고 스트레스를 푼다든가.
노회찬: 저는 예전에 EBS에서 일요일 낮에 해주는 영화들을 좋아했어요. 문제작들을 많이 방영했었는데, 그런 걸 보면 스트레스가 풀리곤 했었어요. 액션을 찾아서 보는 편은 아니에요. 그런데 ‘제이슨 본’ 시리즈는 그런 영화 중에서 제일 나았던 것 같아요. <미션 임파서블>이 촌스러워 보일 정도로요. 촬영기를 보니 새로운 시도도 많이 했더군요. 그리고 무기 안 쓰는 것, 그게 참 마음에 들더라고요. 가재도구 같은 걸 무기삼아 싸우는데 보는 재미도 있고.
장항준: ‘제이슨 본’ 시리즈는 액션장면만 봐도 정통 할리우드 스타일과는 다르죠. 예를 들어 마이클 베이 감독은 자동차 추격신을 찍어도 와이어에 매달아서 차를 공중에서 두 바퀴 돌린 다음 반대 차선으로 떨어트려서 쿵쾅거리게 만들잖아요. 저도 홍콩에서 자동차 액션신을 찍으려고 할리우드 출신 액션 스탭들과 상의한 적이 있어요. 그때 ‘제이슨 본’ 시리즈처럼 리얼로 가고 싶다고 했는데, 그들은 그게 관객에게 별로 재미를 주지 못한다고 생각하더라고요.
노회찬: 튀니지에서 촬영한 신 중에 좁은 골목을 사이에 두고 건너편 집 창문으로 뛰어들어가는 장면. 거기서 카메라맨도 같이 뛰었다는 거 아니에요. 그게 훨씬 훌륭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그렇게 새로운 시도나 발상 같은 것들이 의미있게 생각되더라고요.
장항준: 영화를 대하는 관객의 태도가 멀티플렉스 시대와 함께 참으로 많이 바뀌었다고 생각하는데요. 예전에는 취미란에 ‘독서, 음악감상, 영화감상’이라고 흔히들 썼었는데, 요즘은 영화를 ‘감상’으로 표현하는 사람이 거의 없거든요. 영화 보기 아니면 관람. 이게 영화를 예술로 보느냐 아니냐의 어떤 척도일 수도 있을 텐데, 영화라는 매체에 대한 대표님의 입장은 어떠신지요.
노회찬: 저는 기본적으로 영화는 예술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른 순수예술처럼 소수들만 향유하다가 사회가 민주화되고 경제 수준이 높아짐에 따라 더 많은 사람들이 고급한 예술을 즐기는 방향으로 변해온 거죠. 예술 자체의 콘텐츠가 대중화된 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더 많은 사람들이 피카소를 보고, 더 많은 사람이 베토벤을 듣게 된 것처럼 말이죠.
장항준: 현장에서 느끼는 좌절감은 그보다 좀더 깊은 부분이 있어요. 마치 막장드라마가 시청률을 올리는 것과 비슷한 느낌인데, 예술이냐 아니냐의 고민을 넘어서 좋은 상업영화와 좋지 않은 상업영화로 나뉠 뿐인 것 같다는 느낌이죠.
노회찬: 과거에 영화는 유일한 활동사진이었어요. 그러다 TV가 나왔고, 인터넷이 등장했고, 광고가 발달하면서 이제는 재미없는 영화보다도 훨씬 재미있는 뮤직비디오가 나올 수 있는 시대가 된 거죠. 그만큼 동영상의 세계가 훨씬 확장되었는데, 그럼에도 영화의 영역도 넒어졌잖아요. 마이클 잭슨을 그렇게 많이 들어도 베토벤 역시 전세계적으로 많은 사람들이 듣는 것처럼요. 영화도 그렇게 시장이 확장되면서 예술영화와 재미있는 상업영화가 공존해가는 것이 아닌가 싶어요. 물론 기본적으로 팔려야 하니까, 장사가 되는 이야기에 일단 몰두할 수밖에 없지만 기본적으로 시장이 커지는 것은 좋다고 봐요.
장항준: 기본적으로 좌파는 로맨티시즘에서 출발한다고 하잖아요.
노회찬: 그렇습니다. 특히 혁명가는.
장항준: 그런 관점에서 영화에 대한 대표님의 시각도 현장에서 느끼는 것보다는 좀더 낭만적이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웃음)
노회찬: 그렇죠. 영화라고 하면 일단 좋아하니까요. 정치인의 입장에서는 영화를 출판산업과 비슷한 관점에서 보고 있어요. 우리나라에는 1년에 책 1권도 못 내는 출판사가 90%를 넘습니다. 출판사들도 일단 잘 팔리는 책을 낼 수밖에 없어요. 그나마 양식이 있는 대형 출판사들은 잘 팔리는 책을 내서 번 돈으로 안 팔리지만 있어야 할 책들을 한두권씩 냅니다. 하지만 자금여력이 없는 출판사들은 안 팔리는 책 한권 내고 나면 이후 1년간 책을 못 내는 거죠. 이런 문제는 정책적으로 정부가 개입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단 200권만 찍더라도, 그 책을 찾는 사람이 단 한명이라도 있다면 그 책은 도서관에 꽂혀 있어야 합니다. 그 관점은 영화에 대해서도 똑같아요. 독립영화 중 우수한 시나리오들은 심의해서 영화예술·산업진흥 차원에서 자본을 지원해야 합니다.
장항준: 사실 오늘 대표님 만나러 오면서 어느 정도 생각은 했었어요. 영화를 좋아하신다고 하는데, 보통 좋아하는 정도가 아닐 거라고. 오기 전에 시트콤 <지붕뚫고 하이킥!>의 김병욱 PD와 통화했는데 ‘너보다 영화 더 많이 아실 것 같다’더군요. 진짜 그렇습니다. (웃음)
장항준(1969년생) 서울예술대학 연극과 졸업. 1996년 <박봉곤 가출사건> 시나리오에 참여하며 영화계 데뷔. 2002년 <라이터를 켜라>, 2003년 <불어라 봄바람> 연출. 2008년에는 케이블 채널 OCN의 TV시네마 <전투의 매너> <음란한 사회> 두편의 메가폰을 잡았다. 현재 SBS TV의 영화정보 프로그램 <접속! 무비월드> ‘영화는 수다다’ 코너 진행 중. 2010년 <연극열전> 시리즈 ‘감독열전’의 무대를 준비하고 있다.
노회찬(1956년생) 고려대학교 정치외교학과 졸업. 1987년 인천지역민주노동자연맹(인민노련) 창립. 1989년 인민노련 사건으로 2년6개월간 수감생활을 마친 뒤 90년대에 한국노동정책정보센터 대표, 진보정치연합 대표, <매일노동뉴스> 발행인 등을 역임했다. 2004년 민주노동당 사무총장으로 제17대 비례대표 국회의원으로 당선. 2008년에는 진보신당 창당, 현재 상임대표직을 수행하고 있다.